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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19. 2023

난다 시학 교 두 번째 시간

고명재·유진목 시인을 만났습니다

 

난다에서 열리는 시 수업, 지난주 토요일엔 고명재 시인과 유진목 시인을 신촌에서 만났습니다. 고명재 시인은 【사랑의 시학: 팝콘처럼 시간 터뜨리기】라는 제목으로 멋진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시간은 물처럼 흐르지만 시인의 시간은 비가역적이라서 과거에서 현재로 가지 않고 문득문득 시간의 법칙을 가볍게 파괴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시에서는 부동산 얘기나 자기 계발 얘기가 들어올 틈이 없다는 고 시인의 얘기가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자고로 시인들은 ‘쓸데없는’ 것에 열중하는 사람들이란 얘기죠. 이를 고 시인은 ‘기능 주체가 아니라 사랑 주체로 살기로 했다’는 철학자 김진영의 말을 들어 설명하고 롤랑 바르트의 글 「사랑의 단상」을 읽고 강연을 들으러 온 분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신기한 건 “제가 준비한 게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좀 빠르게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얘기한 다음엔 정말 1.2배속 버튼을 누른 것처럼 말이 빨라지면서도 할 말을 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러 글을 읽어 주었는데 특히 이성복, 유체프 카프스키, 에밀리 정민 윤, 김행숙의 시와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앤 카슨의 ‘방수구두’ 얘기도 잊을 수 없었고요.      


유진목 시인은 【나는 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강연 전에 고명재 시인이 가져온 ‘핸드아웃’ 얘기를 하며 자기는 2000학번이라 ‘프린트’라고 했는데 이제는 핸드아웃이라고 하더라, 라는 말로 아이스 브레이킹을 했습니다(제 아내 윤혜자는 그 말을 듣고 “우리 때는 유인물이라고 했지.”라고 해서 저를 웃겼습니다). 고명재 시인과 달리 종이 한 장 손에 쥐지 않고 스툴에 오도카니 앉아 어린 시절의 얘기부터 시작하는 유진목 시인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빨려 들어가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불량한 언니가 와서 꼬시는 바람에 문예반에 간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며 웃더군요. 유진목 시인의 상상력을 한 마디로 줄여 말하면 ‘갑자기 타인 되는 것’입니다. 유 시인은 내 생각, 내 깨달음에 대해 쓰는 글은 관심이 없다면서, 이건 취향의 문제인데 이 취향을 추천한다고 했습니다. 타자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상상하년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답니다. 공간이 바뀌면 시 한 편이 나오지만 소설을 그게 안 된답니다. 적어도 4~5개의 사건이 필요해야 소설의 플롯이 나오니까요.

시집 『연애의 책』의 연애 이야기가 거의 다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걸 알고 요조 작가가 ‘사기당한 기분이다. 심각하다’라고 길에서 소감을 말하고 조깅을 마저 한 얘기를 들을 땐 심각한 표정으로 달리기 하는 요조가 떠올라서 많이 웃었습니다. 사랑이든 범죄든 관심 가는 일이 있으면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에 한 번씩은 타고 넘어야 할 작두라는 거죠. 왜냐하면 나는 항상 현재와 함께 매 순간 사라져 버리니까요. 그것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진목 시인은 ‘예술은 완성이 아니라 가능성’이라 믿는 사람입니다.


강의가 끝난 뒤 아내는 유진목 시인의 시집을 사 오라고 제게 명령을 했고 저는 헌책을 23,600원어치 알리딘에서 팔아 유진목 시인의 시집 두 권을 23,000원에 샀습니다. 시인들을 만나보니 쓸데없는 일에 관심이 많고 돈이 되는 일(실질적인 이익)엔 관심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돈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하긴 한데 돈, 돈 한다고 돈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아예 포기하는 자세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쏜살 같이 일주일이 흘러 오늘은 안희연 시인과 박연준 시인의 강연을 듣는 날입니다. 저는 박연준 시인의 팬이라 더 신나는 토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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