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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19. 2023

월간 공군에 책 소개 칼럼을 씁니다

윤영미 아나운서의 『놀고, 보고, 가고』

제가 두 달에 한 번씩 《월간 공군》이라는 매체에 책 소개하는 칼럼을 쓰고 있는데요, 이번 달엔 윤영미 아나운서의 윤영미의 『놀고, 보고, 가고』를 소개했습니다. 월간 공군은 매달 13,500부 인쇄하는 정기간행물이며 1950년이 창간되어 70년 이상된 역사 깊은 기관지입니다. 국내 기관지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네요. 암튼 원고료까지 받아가며 좋은 책을 공군과 그 가족들에게 소개하는 저는 행운아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닮은 아나운서의 책

윤영미의 『놀고, 보고, 가고』     


흔히 아나운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제가 아는 아나운서 중엔 말보다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윤영미 아나운서입니다. 아는 작가님의 북토크 현장에서 진행자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 윤 아나운서는 너무 밝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바로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는데 담벼락에 올라오는 글들이 너무 좋은 겁니다. 유명인이 쓴 글 특유의 잰 체하거나 고상한 척하는 기색 없이 생활에서 느낀 점들을 빠르게 쓰는데도 읽을 때마다 늘 감탄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낸 네 번째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윤영미 아나운서의 『놀 수 있을 때 놀고 볼 수 있 때 보고 갈 수 있을 때 가고』는 유명인이 낸 책이라 잘 팔린 게 아니라 잘 팔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잘 썼는데 마침 유명인이라 더 잘 팔린 것이라 해야겠죠. 제목이 지나치게 깁니다, ‘놀 수 있을 때 놀고 볼 수 있 때 보고 갈 수 있을 때 가고’라니, 스물한 자나 됩니다. 그러나 제목이 왜 이 모양이야 하고 읽어나가다 보면 금방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여행을 가고 싶어도  자꾸 뒤로 미루며 삽니다. 결혼하면, 대학 가면, 아이들 크면, 적금 타면, 바쁜 일 끝나면, 명절 지니면, 봄이 오면, 건강해지면. 이것만 끝나면...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이를 먹고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갑니다. 윤 아나운서도 그랬습니다. 방송국에 입사해 열심히 일하다 보니 빨리 결혼하라고 주위에서 하도 성화를 해서 얼른 결혼을 했고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일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 아들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결정하는 바람에 학비를 벌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했습니다. 목사님인 남편은 착하고 스윗하긴 하지만 돈 버는 능력은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미친 듯이 일만 하던 윤영미 아나운서가 진면목을 드러낸 건 제주도에 마련한 ‘무모한 집’부터였습니다. 4년 전 명절에 시댁에 안 가고 혼자 여행을 떠난다고 선언하고는 정말 그렇게 해버린 것입니다(떠나도 되냐? 가 아니라 통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난생처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쁨을 알게 된 윤 아나운서는 제주도에서 자신만의 아지트를 마련할 결심을 하고 집을 한 채 빌립니다. 산 게 아니라 7년 연세 계약을 하고 빌린 집에 가구를 들이고 조명, 수납장, 냉장고까지 다 바꾸는 대대적 수리를 하는 걸 보고 주위 사람들은 걱정을 했습니다. 미쳤냐는 것이죠. 하지만 하고 싶은 건 안 하는 것보다는 손해를 보더라도 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은 윤영미 아나운서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 이름도 무모한 집이 된 것입니다.

       

무모한 집은 제주도에 있지만 윤영미 아나운서는 여전히 서울의 홈쇼핑에 나가고 각종 행사의 사회도 보고 영미투어 등 사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삽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인데 마주치면 늘 활력이 넘치는 건 그리스인 조르바를 닮은 낙천성 때문입니다. 지금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고 나중에 하고 싶은 걸 위해서는 사업도 열심히 해야 하니 가만히 앉아 걱정할 틈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영미라는 흔한 이름도 원망하거나 숨기지 않고 오히려 영미투어, 영미상회 등으로 발전시킵니다. 물론 은행에 대출 연장하러 갔다 오며 길에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떳떳한 삶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식당에서 밥을 누가 살 거냐, 로 잔머리를 쓰는 대신 밥값은 언제나 윤영미가 내고 같이 밥 먹기 싫은 사람과는 아예 약속을 잡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버립니다. 나이 들어도 꼰대로는 살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인 거죠. 제가 이 책을 사서 처음 펼쳐 읽은 부분이 ‘꼰대란 무엇인가’라는 꼭지입니다.

        

돌아가며 건배사 하기/위하여! 계속 외치기/행사장에서 인사말 길게 하기/남이 써준 축사 읽기/‘바쁘신 가운데..' 같은 빤한 말 자꾸 하기/단톡방에 꽃 사진 올리기/색소폰 배워 아무 데서나 시키지도 않는데 불기/노래방 가서 '칠갑산' 같은 노래 길게 하기/사진 동호회에서 몇 번 출사 나가 사진전 하기/약속 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기/명절에 식상한 온라인 카드, 인사말 보내기/등산복 아무 데서나 입기/옛날의 용사 이야기 반복하기/어린 사람들에게 반말하기......(중략) 맨날 가는 곳만 가기/목덜미 넓게 입고 바지 길게 입기/남의 얘기 안 듣기/“결론은 뭐야?” 하며 닦달하기/항상 결론은 내가 정하기/마지막으로 자기는 절대 꼰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기.

     

어떠세요? 이 책에서는 이 부분만 읽어도 본전은 한다는 생각이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공감되는 또 다른 의견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넘칩니다. 게다가 '산다는 것은 곧 말썽'이라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을 비롯해서 『혼불』의 최명희 작가,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 출연한 영화배우 앤디 맥다월, 문정희 시인, 천상병 시인, 아인슈타인 등이 남긴 명언들이 곳곳에 인용됩니다. 문화적으로 충만한 아나운서가 쓴 책 한 권으로 동서고금의 통찰들을 맛볼 수 있는 거죠. 그는 책 말미에 누가 제일 행복할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할까, 학벌 좋은 사람이나 출세한 사람이 행복할까. 윤영미 아나운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 천성대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잘 노는 사람이 가장 잘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죠. 읽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건강하게 돌아보게 되는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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