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자고 일어난 날 아침
새벽에 일어나 옆자리를 손으로 쓸어 보니 아내가 없다. 어제 일이 있어 서울로 먼저 올라갔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내 없이 혼자 침대를 차지하고 자면 편해서 좋을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나는 새벽에 눈이 떠지면 나가서 일단 책을 조금이라도 읽는 편이다. 그때만큼 고요하게 천천히 책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7시가 좀 넘어 깨어난 아내가 침대 위에 그대로 누워 스마트폰을 켜고 뉴스를 보거나 글을 쓰거나 게임을 하고 있으면 우리가 아침마다 공복에 마시는 야채분말 캐비쵸크를 미지근한 물에 타서 아내에게 가져다준다. 아내가 매일 아침 먹는 혈압약도 한 캡슐 챙겨서 쟁반에 받쳐 같이 가져간다. 그 사이 나도 한 잔 타서 마신다. 이게 지난 7~8년 동안 지속된 우리의 리추얼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잘 잤느냐는 인사와 함께 간밤의 꿈 얘기를 할 때도 있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 이야기를 꺼낼 때도 있다. 아직 글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책쓰기 워크숍 멤버의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가까운 이웃이었다가 멀어진 이의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가끔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나 아내의 어머니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든 정하지 않고 그냥 흘러나오는 대로 한다. 이때 좋은 점은 꾸미거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 거리낌 없이 무장해제되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오늘 아침엔 그럴 수가 없어서 하태완 작가가 몇 달 전 보내준 『우리의 낙원서 만나자』를 펼쳐 귀퉁이를 접은 페이지를 다시 읽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거기에 '인생의 과제'라는 짧은 글이 있다.
우리네 인생 최대의 과제는
세상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가장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 모두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 짧은 글이 위로를 준다. 아내와 나는 이제 미친 듯이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공유한다. 하태완 작가의 글처럼 세상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물론 가장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까지 모두 나눌 수 있는 사이다. 이런 사람을 찾았고 그 사람과 살고 있다는 행운을 조금 길게 인식하고 싶어서 아이패드를 꺼내 캘리그라피로 써보았다. 글씨를 쓰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하고 있느냐고 묻길래 내가 농담처럼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어"라고 대답하니 아내가 "하필 그때 전화해서 미안하다" 며 깔깔깔 웃었다. 오늘 오후 나도 서울로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또 서로를 덤덤하게 조용히 바라볼 것이다. 뭐든 그렇다. 소중한 가치일수록 있을 때보다는 없을 때가 더 간절하다.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앱 'Procreate' 라이브러리에서 아직 마음에 드는 타이포를 찾지 못해 늘 아쉬워했는데 오늘은 좀 굵은 글씨로 써보고 싶어서 '고스호크'라는 체를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