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화로운 나날들
내가 우리 옆동네 양지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6학년 때 승만이와 함께 본 [엘 시드]였다. 소피아 로렌과 찰톤 헤스톤이 나오는 시대극이었는데 그땐 소피아 로렌이라는 배우도 몰랐고 오로지 가슴에 화살을 맞은 장군(찰톤 헤스톤이었을 것이다)이 억센 손으로 화살을 뚝 꺾어버리고 다시 출격하던 장면만 생각난다. 연신내에 있던 양지극장은 두 편 동시 상영에 오백 원 받는 3류 극장이었는데 육백 원으로 요금을 올렸다가 손님이 안 오는 바람에 다시 오백 원으로 내렸던 전력이 있는 곳이다. 3류 극장에서는 상영 중간에 쉬는 시간이면 사환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등을 팔곤 했는데 한 번은 동네 친구 민석이와 갔을 때 어떤 애 둘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브라보!" "브라쟈~!"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계속되는 브라보, 브라쟈~에 모두 킥킥거리고 있을 때 민석이가 돌연 "빤쓰!"라고 박자를 맞춰 외치는 바람에 극장 안엔 웃음보가 터졌다. ‘브라보, 브라쟈, 빤스~’의 트라이앵글 라임이 완성된 것이었다. 갑자기 주도권을 빼앗긴 사환 아이들이 화를 내는 바람에 큰 싸움이 벌어질 뻔했는데 마침 같이 있던 동네 건달 형 하나가 말려주는 바람에 우리는 무사히 영화를 보고 나왔다.
당시엔 벽보 형식의 영화 포스터가 흔했다. 우리가 학교 가는 길목에도 어김없이 포스터가 여러 장 붙어 있었는데 '내 이름은 튜니티' '튜니티라 불러다오' 같은 이름 모를(사실은 그 유명한 테렌스 힐 시리즈) 서부영화 포스터만 보다가 어느 날 마주친 [겨울여자] 포스터는 정말 눈이 튀어나오도록 야한 것이었다. 지금 인터넷에서 그 포스터를 찾을 수는 없지만 상체를 모두 벗은 생머리의 장미희가 남자 배우에게 몸을 붙이고 도발적인 포즈로 엎드려 있는 압도적인 분위기의 포스터였다. 더구나 이 작품은 바로 전 해 겨울 개봉관에서의 엄청난 흥행에 힘입어 김세화의 <눈물로 쓴 편지>나 김세화·이영식의 <겨울 이야기> 같은 노래가 담긴 OST 역시 전국적으로 히트한 상황이었다(봄에도 우린 겨울을 말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봄 속에도 남아 있다고...'라는 가사로 이어지는 '겨울 이야기'라는 경쾌한 곡은 대학교 1학년 뚜라미 겨울 소공연 때 85학번 동기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부르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를 너무나 보고 싶은 나머지 양지극장으로 달려갔다. 당시에 미성년자 관람불가는 거의 포르노일 거라는 순진한 기대를 가지고 갔었으나 막상 들어가서 뚜껑을 열어 본 영화는 수위가 매우 약한 멜로드라마 수준이었다.
겨울여자는 [왕십리]나 [갈 수 없는 나라] 등의 소설로 유명한 조해일의 히트작을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이 각색한 작품이었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수위는 실망스러웠지만 내용보다 스타일이 뛰어난 영화였다. 고등학생 때 모종의 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화라는 여대생이 또래의 남학생과 예전 선생님을 차례로 만나면서 사랑에 눈 뜨고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 나는 이 영화는 이후에 쏟아져 나온 호스티스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련된 감각의 드라마였고 당시 19살로 데뷔했던 장미희의 싱그러움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특히 학교 앞 카페 주인으로 나온 송재호가 장미희만 오면 틀어주던 나나 무스끄리의 노래는 겨울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당시엔 멀티 플렉스가 없어서 무슨 영화든 단관 개봉이었는데 이 영화는 1974년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에 이어 60만 관객 동원이라는 신기록을 세웠고 이는 1990년 초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이나 [서편제]가 나오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성인영화'라는 레벨이 붙는 이유는 단지 야하다든가 잔인해서만은 아니었다. 일정한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른들만의 세계라는 건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그것을 영화가 아닌 강철수의 성인만화 '사랑의 낙서' 시리즈를 읽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얘기는 나중에 따로 시간이 나면 또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