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준다는 것

by 지뉴

K를 다시 만난 건 무려 칠 년 만이었다. 특별한 소식이 있을 때면 간간이 톡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 K. 그랬던 K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안부를 주고받는 와중에 불현듯 만남을 제안해 온 것이다.

'나 일월에 서울 올라갈 예정인데 얼굴 한 번 볼래? 보고 싶다.'

예전에는 '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듣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건만, 어찌 된 게 세월이 갈수록 이 네 글자도 점점 내 곁에서 멀어져 가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여자 사람 친구에게서 들은 이 네 글자에 심장이 쿵, 하는 느낌을 받게 된 이유는.

'그래 꼭 봐. 나도 너 보고 싶다'


K와 약속 장소를 정하며 설레는 감정이 한차례 더 밀려들었다.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기에. 물론, '서울역'이 주는 느낌은 드라마 속 정겨운 간이역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여행자들로 가득한 공간에 부유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떠올리자 청춘의 모험심, 열정이 품고 있는 기운이 느껴져 가슴 한편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함께 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설렘이란 감정에마저 복리(複利)가 붙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역에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것이 아닌, 누군가와 역에서 만날 약속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내 생일에 SNS로 선물을 보내온 K에게 답례를 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밥과 커피를 사겠다고 제안했다.

'서울역 삼층 OO음식점 앞에서 볼까? 거기 음식 맛있을 것 같아.'

때마침 K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미식가와는 거리가 먼 나는, '수르스트뢰밍(노르웨이의 삭힌 생선요리로 악취가 매우 강함)'처럼 특별한 도전 의식을 필요로 하는 음식이 아니고서는, 함께 먹는 이가 좋으면 무엇이든 기꺼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기차역은 요일의 영향을 비껴가는 것인지, 평일 저녁임에도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기차를 타느라 바삐 스쳐갔던 서울역 내부는, 그간 수없이 오갔으면서도 막상 특정 가게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친구가 만나자고 제안한 곳은, 도심으로 말하자면 뒷골목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오분 여를 헤매다 마침내 친구와 칠 년 만에 상봉했을 때, 추위에 움츠리고 있던 얼굴의 온근육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서로의 얼굴을 발견하자마자 우리는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야! 반갑다!!"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에서 그 순간 친구의 모습만이 시야 가득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긴 세월에도 닳지 않고 살아남은 우정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인가 보다. 단 몇 글자의 인사만으로도 그간 친구와 함께 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했다.


굳이 할 말을 찾아내느라 애쓰지 않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쉽사리 틈이 생기지 않았다. 그동안 살아낸 하루하루들, 아이들 커가는 모습, 중년으로서 감지되는 신체적 변화에 대한 소소한 한탄, 밥벌이를 하고 사는 삶에 관해서 우리는 얘기를 나누었다. 은행만 배 불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과도 같은 '빚'의 굴레에 우리 자신을 내던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어찌 보면, 긍정적 얘기보다 답답하고 우울한 이야기들이 더 많았음에도 그것을 나누는 우리 사이에는 줄곧 밝은 에너지가 함께 했다. 공감과 동지 의식을 나누었기 때문일까. 그 순간만큼은 각자의 슬픔과 좌절이 웃음과 응원으로 승화되는 듯했다. 살면서 '친구'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인연들 중 결국 내 곁에 남아 나를 살리는 인연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부피를 걷어내고 고운 체 안에 남은 보드라운 입자들처럼, 중년을 함께 통과하고 있는 나의 고운 친구는, 일상에 부대끼며 거칠어진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존재이며, 그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두 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건 '기억'에 관한 것이었다. 십 대의 우리는 주로 현재와 미래를 얘기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현재와 과거를 서로 나눈다. 미래는 간간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뿐이다.

'네가 나를 기억해 주니 너무 좋더라.'

아쉽게 헤어진 후 친구에게서 날아든 문자였다. 고등학교 시절, 소설을 썼던 친구를 나는 기억해 냈다. 공책에 연필로 끄적인 연애 소설을, 내게 비밀 상자의 문을 열듯 슬며시 보여주던 친구의 모습을. 친구는 지난 세월 그런 자신을 잊고 지낸 모양이었다. 막상 나는 당시에 소설 쓰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의 나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고, 친구는 소설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세월이 흘러가는 길이란 참 신기하고도 요상한 것으로 가득하다.


친구의 글을 접하고선 오래전 보았던 애니메이션 '코코'가 생각났다. 그 작품을 보며 한동안 누군가를 기억해 준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고 생각했었다. 이승에서 나의 존재를 기억해 주는 이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는다면, 혼령조차 저승에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설정에 무척이나 감정 이입이 되었다.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 주었던 순간들을 함께 기억해 주는 이가 없다면, 인생의 귀한 순간들도 결국엔 참된 의미를 지닐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내게는 소망이 있다. 소중한 이들을 오래오래 기억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쁜 기억들은 체에 걸러 내 버리고, '추억'이라는 고운 입자로 남아 있을 것들을 정성스레 저장해 함께 꺼내어 볼 수 있는, 그런 인연이 되어주고 싶다는 바람.

나는 나의 소중한 벗을 추억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새해 잘 열어가고 계시는지요?

우리 가족은 김치양의 백 아홉 번째 계란, 거실에서 내다본 일출과 함께 새해를 시작했어요. 둘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니 어째 좀 닮은 것 같네요. ㅎㅎ

글벗들의 힘차고 건강한 병오년을 기원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상의 틈에서 누리는 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