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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Sep 11. 2019

구글지도의 평지를 믿지 마세요

유럽으로 떠난 마닐씨 #35


 허리가 안 좋은데 리옹에서 하루 남았다고 너무 무리한 듯 싶다. 아침에 깨니 허리가 전 날보다도 무겁다. 호스트가 준비해준 베이글에 커피를 마시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니스에서는 꼼짝없이 쉬어야 하나 싶다.



 휴양도시 니스. 자연스레 날씨가 좋을 것을 기대했는데, 이 무슨 조화인지 내내 비가 올 예보다. 3일 있을 예정이지만 마지막 날은 아침에 출발하니 이틀이 남는 셈이다. 이튿날에 모나코를 갈까, 니스 시내나 둘러볼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숙소로 가는 길에 결론을 내려 버렸다.


 니스 역에서 열차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원래대로였으면 역 바로 앞에서 탈 수 있는 버스가 있는데, 무슨 일인지 정류장이 폐쇄돼 있었다. 짐을 끌고 밀며 다음 정류장까지 갔는데, 버스 시간을 찾으니 20분 가까이 기다려야 버스가 온다는 것이다. 광역버스도 아니고 시내버스의 배차 간격이 참 너무하다. 걸어가도 20분 걸리길래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서도 ‘대부분 평지’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구글지도를 맹신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5분쯤 지도를 따라 걸어가자 마주친 것은 높디높은 계단이었다. 세 번쯤 다시 지도를 확인해도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30인치 사이즈에 30키로에 육박하는 캐리어를 아픈 허리로 들고 올라가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옆을 보니 경사지가 보인다. 한참을 돌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계단보다는 낫겠지. 한참을 돌고 돌아 높은 계단만큼의 긴 경사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경사지는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올라가는 내내 경사로를 따라 캐리어를 밀며 올라갔다.


 숙소에 거의 다 도착해서 안심하려는 무렵, 또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길이 나타났다. 모든 계단이 지도에 나올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이건 좀 해도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려니 차도인데, 심지어 몹시 꺾여 있어 맞은편 차량이 나를 못 본다면 그대로 사망이다.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경사를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숙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여행을 오기 전 나에게 호스텔이란, 미국에서 머물렀던 싸고 좁고 불편한 숙소였다. 돈이 없는 학생이었으니, 1박에 20달러에 못 미치는 제일 저렴한 숙소만 골라서 다녔었다. 이걸 염두에 두고 물가가 비싼 스위스를 제외한 웬만한 도시는 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는데, 가끔 이런 맹점이 생기는 것이다. 호스텔은 대부분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어 역에 가깝고 오가기가 편하다. 심지어 유럽의 호스텔은 기대보다 시설이 훨씬 좋았다. 내내 캐리어를 펼쳐놓고 다닐 편안함은 아니지만, 위치가 주는 이점은 분명했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개인방을 가지는 만큼 짐을 펼쳐놓고 편안하게 있기는 좋았으나, 대부분 주거지역에 있어 시내와는 거리가 있고, 가끔은 기대치도 않은 언덕 위에 있는 숙소를 예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캐리어를 끌고 허리를 붙잡으며 숙소로 올라가면서, 차라리 호스텔을 잡을 걸, 그냥 버스를 20분 기다릴 걸, 하며 백번쯤 후회했다.


 숙소에 가는 데 에너지를 모두 쏟고 나니 더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다. 게다가 밖에서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하루 일정을 포기하고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저녁은 간단히 숙소 옆 슈퍼에서 재료를 사다가 토마토 파스타를 해 먹었다. 모나코는 포기하고, 다음 날도 쉬엄쉬엄 시내 구경만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상 니스와 모나코에서의 관광을 모두 포기한 것이다.


 애증의 니스 숙소는 누워서 쉬기 아주 적합한 숙소였다. 와이파이가 여태까지의 숙소 중에 가장 잘 터졌고, 침대에 누워서 볼 수 있는 각도에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텔레비전으로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시청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허리 요양을 위한 완벽의 조건이다. 저녁을 간단히 먹으며 캡틴 마블 브리 라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유니콘 스토어’를 시청했다. 유니콘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스토리와 주인공, 결말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신비화되거나 부자연스럽게 포장되기 일쑤인 여성캐릭터를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주체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배부르고 누워있으니 잠은 잘 왔다. 휴양지에 왔으면 휴양을 해야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더 무리하다가는 허리가 아픈 기간이 더 길어질 것만 같다.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기가 힘드니 여행의 재미도 흥미도 설렘도 사라진 듯 하다. 빨리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도시를 누비고 싶다.


*오늘의 가계부
Boulangerie Bas : 샌드위치, 키슈 4.25유로
리옹역 : 주스 2.20유로
니스 교통 1회권 1.50유로
숙소 근처 슈퍼 : 치즈, 파스타 소스, 과자, 맥주 11.5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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