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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Oct 08. 2019

스페인에서는 스페인의 시간을 따라야지

유럽으로 떠난 마닐씨 #48


 차와 시리얼,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동네 산책을 나섰다. 하루종일 일정이라고는 세비아 대성당 방문 밖에는 없으니,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기로 한다. 숙소가 있는 동네는 시내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주거지역이다. 0층이라 표기하는 접지층에는 과일가게, 정육점, 옷가게 따위가 있고, 그 위로 세 개 층 정도의 공동주택이 올라가 있다.


 한바퀴 돌며 가게를 구경했다. 인도까지 점령한 과일들이 반짝반짝 신선하다. 동네 마트에 들어가니 낡은 선반 위에 식재료들이 올려져 있다. 정육 코너에 가서 구이용 돼지고기 필렛(fillet)을 샀다. 세 장 샀는데 1유로를 간신히 넘기는 가격이다. 기름기가 많지 않아 느끼하지 않게 먹기 좋다. 돼지고기 가격만큼 값이 나가는 컵라면도 하나 집어들고 계산하고 나왔다.


 11시 즈음에 숙소에 들어가니 그제서야 집주인이 깨어나 커피를 내리고 있다. 밤새 주인과 붙어 있던 고양이도 같이 나와 꼬리를 세우고 집안을 순회한다. 인사를 건네고 고기 필렛 두 장을 후라이팬에 구웠다. 지글지글 제법 맛있는 냄새가 난다.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 한 병과 사과 한 알도 꺼냈다. 모닝커피를 마시는 집주인 옆에 앉아 돼지고기를 써는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스페인은 보통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에 하루를 시작하고, 점심은 두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먹는다고 한다. 저녁은 그보다 더 늦게 먹고. 주인은 보통 오후에 유치원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 때문에 늦게 일어나는 편이다. 아침은 일곱 시쯤, 점심은 열두 시쯤, 저녁은 일곱 시쯤 먹는 한국의 문화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성당을 예약한 시간이 다 되어 정리하고 숙소를 나섰다. 세비아 대성당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고, 고딕 양식으로는 가장 큰 성당이다. 직접 방문해서 표를 끊으려면 긴 줄을 기다려야 하고, 중간에 새치기가 많아 무한정 기다려야 한다. 전 날 성당에 갔다가 긴 줄에 질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 바로 예약을 해버렸다. 미리 표를 사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수수료 포함 10유로에 표를 샀는데, 성당과 종탑, 그리고 근처의 살바도르 성당을 함께 볼 수 있는 기본 티켓이다.


 전시실 하나를 지나고 좁고 낮은 석재 통로를 지나니 갑자기 성당이 눈 앞을 가득 체우며 나타난다. 기둥 둘레가 다른 성당의 두 배는 되어 보인다. 우람한 기둥 위로 끝없이 높은 천정이 있다. 사방으로는 기둥과 벽 사이에 십자가와 성물이 있고, 가운데에는 파이프오르간과 미사를 올리는 공간이 있다. 공간의 위계는 천장의 장식으로 가늠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가운데 공간 천정에는 화려하게 돌로 양각한 볼트이고, 그 주변으로는 민무늬이다.


 이런 오래된 성당들은 으레 묘지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성당 한켠에는 죽은 후에도 세계를 떠돌다 간신히 정착한 콜럼버스의 묘가 있다. 금속으로 만든 네 사람이 관을 들고 있다. 조각상의 옷소매 하나까지 금속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살아서 세계를 떠돌던 탐험가는 죽어서도 타의에 의해 이곳저곳을 떠돌다 간신히 이 곳에서 평안을 찾았다고 한다.


 성당 종탑인 히랄다 탑은 이슬람교 양식으로 지어진 탑이다. 긴 줄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네모난 탑 모양에 맞춰 코너마다 참이 있고, 벽면을 따라 경사로가 조성되어 있다. 사방으로 창이 뚫려 도시를 모든 방향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가운데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종, 기계장치 등이 층마다 전시되어 있다. 널찍한 창이 가로로 좁아지는 것으로 정상에 거의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강한 바람이 안면을 강타했다. 드디어 탑 꼭대기로 나온 것이다. 머리 위로 종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고, 사방으로 뚫려 있어 난간마다 관광객들이 매달려 사진을 찍고 있다.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려 난간 앞에 서서 셔터를 눌러댔다. 광장의 사람, 도로의 자동차, 테라스의 차양이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성당의 지붕 구조도 보인다. 볼트 보양이 지붕 위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구조와 건물의 형태가 일치하던 시대의 건축이다.


 탑을 내려와 성당을 마저 한 바퀴 돈 후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은 오렌지 나무가 열 맞춰 심어져 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살바도르 성당이 있다. 엘 살바도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성당과 함께 종교화, 조각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느긋하게 돌아보고 다시 천천히 동네를 걸어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세비아에 도착한 날 먹은 스테이크 맛을 잊지 못해 소고기를 다시 한번 샀다. 이번 가니쉬는 버섯볶음이다. 각종 버섯을 미리 잘라둔 것을 샀다. 맥주와 함께 고기를 썰어 먹으니 천국에 온 것 같다. 400그람의 소고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늘의 가계부
동네마트 : 컵라면, 돼지고기 필렛 2.50유로
세비아 대성당 : 입장료 10.00유로
DIA(마트) : 초콜릿 패스츄리 1.00유로
Mercadona(마트) : 소고기, 맥주, 야채 10.91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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