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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웨이 Jan 07. 2023

 불안하면 보험들면 되고 .

- 지금 설레는 물건만 남겨라-

언니 집에 다녀온 후 집안 정리 중이다. 날마다 전문 직업인의 손길이 닿는 오성급 호텔의 정갈하고 빈틈없는 청결을 바라는 건 아니고  정갈한 팬션 정도의 빈공간 만이라도.. 쾌적한 수면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러나 나는 오늘도 진즉에 버렸어야할 카키색 패딩을 살이 쪄서 몸에 끼이는데도 입고 나왓다ㆍ둥근 알 선글라스만 끼면  나와 같은 해 태어난  홍콩 영화 속 장국영의 날카로운 감성 아우라가 나서  잠시라도 할머니필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  뿐인가 ᆢ아직도 망가진 몸 생각않고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 최고의 몸과 마음의 절정 이던 뉴욕여행 사진 액자를 벽에서 떼어내지 못해  공간의 여백을 만들지 못한다..노후생활의 달인 되기는...

 노후자금 모으기 못지않게 어렵다



정리 정돈하면 일본인 곤도마리에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처음은 옷 개기, 수납방식  등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생활의 팁을 적은 책에서 출발했었다. 나도 이분이 쓴 한국어판 번역책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계속 업그레이드하여  정리정돈에 혼까지 싣고 더 깊어져서 넷플릭스에서 계속 새 버전으로 업데이트, 미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다. 한국에서는 카피하여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가  한동안 화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위 사진은 곤도마리에가 공간정리하기 전에 행하는 의식이미지이다. 물건마다 영혼, 또는 기가 깃든다고 생각하며 공간과 교감하려고 자신의 내면을 여는 동작. 나도 흉내 내 본다

 

내 몸이 머무는 공간, 침향 하나 피우고 곤도마리에 흉내를 내어 내 공간에 무릎 꿇고 앉는다,. 눈을 감고   놋종지를 두드린다. 쨍..... 공간에 퍼져나가는 소리.  이 공간에서  이십여 년.. 공간 정리 정돈하면서 이런 의식은 처음인데 눈을 감고 공간을 느끼니 익숙했던 공간이 낯설다. 평소에 존재도 없었던 벽 한쪽에  걸어 놓았던 청태전의 구수한 차향도 느껴진다.  상상한다. 언니 방처럼 군더더기 없는 공간을...



내 공간의 물건들을 옷, 책, 서류, 잡동사니로   분류했다

그리고 옷부터 몽땅 다 꺼내놓았다.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옷의 주인이다-

가 내 평소 옷정리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꽤 자주 내 옷을 새 주인에게 떠나보냈는데도 꺼내놓고 보니  

큰 옷 산이 두 개나 된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물론 마음이 전혀 미동도 않는 옷은 바로 퇴출. 아웃.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그러나 한때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내 옷들은 그 옷에 내 마음이 내 몸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내자아가 내 인생이 사라지는 것 같아  버린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나간 설렜던 옷이니 버리고  

요즘 나를 설레게 하는 옷들은 북유럽 옷들이다.  몸무게가 늘어난 내몸이 편해 하는 헐렁헐렁한 핏 옷과  단순함. 북유럽 깊은 호수색처럼 신비로운 묘한 색감.. 내가 절제와 금욕의 아우라를 가지며 신성스럽다 생각하는 수도원 수사님들의 의복색을 닮은 진진청색블루 블라우스, 진진청녹색 남방,

 묘한섬유로 만든 편한 아이보리색 운동복과 일상복의 중간 , 가격도 거품 없는 그런 옷들.그런 옷들만 남기라는 것이다. 정리는 착착 쉽다. 살이 빠지면..... 언젠가 살 빠지면 입겠다는 옷을 다 꺼내서 버리면...

깔끔하고 옷장이 텅 빈다.

앞으로 더 이상 구매하지 않으면...


그러나 마지막 특별한 옷 두 벌이 내 발목을 잡는다. 둘 다 설렜던 옷이고 지금도 설레는 옷이다.


개인적으로 난  가벼운 캐시미어 영국풍 모 코트가 내 취향이다. 그거 하나면 오케이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학생들도 명품 패딩에 주눅 든다는 뉴스가 뜨고. 몽클.., 캐나다..., 패딩들 , 그게 도대체 머라고  골동품도 아닌 것이 진품 찾기 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도배하게 만드나.. 호기심에 그 브랜드 스토리들을 읽다가 듀베티카라는 신진패딩브랜드에 필이 꽂혔었다. 그러다 게릴라 분위기 나는 카키색에 우주복처럼 이어진 모자가 맘에 드는 패딩을 파격적인 할인가격에   -지금  생각하면 작은 사이즈 때문 아니었을까..-구입해서 잘 입었는데

나중에 모자는 너무 과해서 떼어냈다. 그런데 이 패딩만 입고 둥근 선글라스만. 끼면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난

잔나비띠 장국영이 생각나고 폐부까지 찌르는 날카롭고 예민한 감성이 울컥 일어나는 듯한 옷.

젊고 감성이 아직도 살아있는 왕년에 시절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또 한 벌은  숙우회 茶복이다. 이 茶복의 느낌은 언어보다 이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찻잔 들고 명상할 때 입는 옷이다.

어쩌다 좋은 인연으로 이 茶복을 입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고 내 후반기 삶을 찻잔 들고 글 쓰게 하는 옷이다


패딩옷은 왕년의 한 때를 상징한다.

옷을 볼 때 마다 과거 생각이 나서 괴롭다

현재 모습이 부족하고 추하다는 생각을 ..비교하게 한다.


숙우회옷은 날마다 왕년이다. 찻잔 들고 하는 명상이란 지금 내 마음이 바로 여기 찻잔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므로 과거도 미래도 없고 현재만 있다

앞머리 듬성듬성 빠지고 배도 나오기 시작하고 구부정한 허리,  골절이 두려워 미끄러운 길을 두려워

하며 걷는  할미필 모습이 지금 나의 유일한 왕년에...이다


집을 옷을 정리 정돈한다는 것은  날마다 지금이 나의 왕년이 되게 만든다.

패딩옷은 버리고 숙우회 옷은 잘 다려서 벽에 걸어두고 옷 정리를 끝냈다


며칠 전 본 티브이 인터뷰가 생각난다. 시력을 거의 잃었음에도 시력을 잃기 전은 버리고

늘 비교할 것이 없는 현재를 살아가시는 난타기획자 송승환 님

노후생활의 달인.닮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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