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집에 다녀온 후 집안 정리 중이다. 날마다 전문 직업인의 손길이 닿는 오성급 호텔의 정갈하고 빈틈없는 청결을 바라는 건 아니고 정갈한팬션 정도의 빈공간 만이라도.. 쾌적한 수면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러나 나는 오늘도 진즉에 버렸어야할 카키색 패딩을 살이 쪄서 몸에 끼이는데도 입고 나왓다ㆍ둥근 알 선글라스만 끼면 나와 같은 해 태어난 홍콩 영화 속 장국영의 날카로운 감성 아우라가 나서 잠시라도할머니필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 뿐인가 ᆢ아직도 망가진 몸 생각않고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 최고의 몸과 마음의 절정 이던 뉴욕여행 사진 액자를 벽에서 떼어내지 못해 공간의 여백을 만들지 못한다..노후생활의 달인 되기는...
노후자금 모으기 못지않게 어렵다
정리 정돈하면 일본인 곤도마리에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처음은 옷 개기, 수납방식 등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생활의 팁을 적은 책에서 출발했었다. 나도 이분이 쓴 한국어판 번역책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계속 업그레이드하여 정리정돈에 혼까지 싣고 더 깊어져서 넷플릭스에서 계속 새 버전으로 업데이트, 미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다. 한국에서는 카피하여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가 한동안 화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위 사진은 곤도마리에가 공간정리하기 전에 행하는 의식이미지이다. 물건마다 영혼, 또는 기가 깃든다고 생각하며 공간과 교감하려고 자신의 내면을 여는 동작. 나도 흉내 내 본다
내 몸이 머무는 공간, 침향 하나 피우고 곤도마리에 흉내를 내어 내 공간에 무릎 꿇고 앉는다,. 눈을 감고 놋종지를 두드린다. 쨍..... 공간에 퍼져나가는 소리. 이 공간에서 이십여 년.. 공간 정리 정돈하면서 이런 의식은 처음인데 눈을 감고 공간을 느끼니 익숙했던 공간이 낯설다. 평소에 존재도 없었던 벽 한쪽에 걸어 놓았던 청태전의 구수한 차향도 느껴진다. 상상한다. 언니 방처럼 군더더기 없는 공간을...
내 공간의 물건들을 옷, 책, 서류, 잡동사니로 분류했다
그리고 옷부터 몽땅 다 꺼내놓았다.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옷의 주인이다-
가 내 평소 옷정리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꽤 자주 내 옷을 새 주인에게 떠나보냈는데도 꺼내놓고 보니
큰 옷 산이 두 개나 된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물론 마음이 전혀 미동도 않는 옷은 바로 퇴출. 아웃.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그러나 한때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내 옷들은 그 옷에 내 마음이 내 몸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내자아가 내 인생이 사라지는 것 같아 버린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나간 설렜던 옷이니 버리고
요즘 나를 설레게 하는 옷들은 북유럽 옷들이다. 몸무게가 늘어난 내몸이 편해 하는 헐렁헐렁한 핏 옷과 단순함. 북유럽 깊은 호수색처럼 신비로운 묘한 색감.. 내가 절제와 금욕의 아우라를 가지며 신성스럽다 생각하는 수도원 수사님들의 의복색을 닮은 진진청색블루 블라우스, 진진청녹색 남방,
묘한섬유로 만든 편한 아이보리색 운동복과 일상복의 중간 , 가격도 거품 없는 그런 옷들.그런 옷들만 남기라는 것이다. 정리는 착착 쉽다. 살이 빠지면..... 언젠가 살 빠지면 입겠다는 옷을 다 꺼내서 버리면...
깔끔하고 옷장이 텅 빈다.
앞으로 더 이상 구매하지 않으면...
그러나 마지막 특별한 옷 두 벌이 내 발목을 잡는다. 둘 다 설렜던 옷이고 지금도 설레는 옷이다.
개인적으로 난 가벼운 캐시미어 영국풍 모 코트가 내 취향이다. 그거 하나면 오케이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학생들도 명품 패딩에 주눅 든다는 뉴스가 뜨고. 몽클.., 캐나다..., 패딩들 , 그게 도대체 머라고 골동품도 아닌 것이 진품 찾기 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도배하게 만드나.. 호기심에 그 브랜드 스토리들을 읽다가 듀베티카라는 신진패딩브랜드에 필이 꽂혔었다. 그러다 게릴라 분위기 나는 카키색에 우주복처럼 이어진 모자가 맘에 드는 패딩을 파격적인 할인가격에 -지금 생각하면 작은 사이즈 때문 아니었을까..-구입해서 잘 입었는데
나중에 모자는 너무 과해서 떼어냈다. 그런데 이 패딩만 입고 둥근 선글라스만. 끼면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난
잔나비띠 장국영이 생각나고 폐부까지 찌르는 날카롭고 예민한 감성이 울컥 일어나는 듯한 옷.
젊고 감성이 아직도 살아있는 왕년에 시절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또 한 벌은 숙우회 茶복이다. 이 茶복의 느낌은 언어보다 이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찻잔 들고 명상할 때 입는 옷이다.
어쩌다 좋은 인연으로 이 茶복을 입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고 내 후반기 삶을 찻잔 들고 글 쓰게 하는 옷이다
패딩옷은 왕년의 한 때를 상징한다.
옷을 볼 때 마다 과거 생각이 나서 괴롭다
현재 모습이 부족하고 추하다는 생각을 ..비교하게 한다.
숙우회옷은 날마다 왕년이다. 찻잔 들고 하는 명상이란 지금 내 마음이 바로 여기 찻잔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므로 과거도 미래도 없고 현재만 있다
앞머리 듬성듬성 빠지고 배도 나오기 시작하고 구부정한 허리, 골절이 두려워 미끄러운 길을 두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