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불안의 원조인 독거노인 미래는 맞았나? -
칠순에 자수전시회를 하는 샘을 축하하러 카페에 갔다. 샘은 독신녀(베이비부머 세대 언어)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가.. 묘하게 그분들이 모두 독신이라는 생각에
"너 늙어봐. 자식 없이 남편 없이 혼자 살면은...." 독신을 고집하는 딸들에게
노후의 공포를 협박의 무기로 사용했던 엄마 말씀이 생각났다.
엄마 말이 맞았나?
지방 도청 소재지인 이 도시에서 평생을 살았다. 한옥마을 메인 거리에 있는 카페가 내 출생지다
한번 본 영화 두 번 안 보고 익숙하고 지루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얼리어답터인 내가 평생을 이 구역에서만 살았다니... 그 긴 시간을....
아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탈출 시도를 했으나 돈 때문에 , 능력부족으로 탈출에 실패했다. 써놓은 서울 유명대학 원서를 수업료가 면제되는 국립사범대학 원서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던 건 돈이 없어서였고
그게 못내 아쉬워 40대 다시 서울입성 도전. 남들이 철밥통 직업이라 안전하다는 교사를 버리고 겁 없이 작가라는 꿈을 가지고 재 시도, 이번에는 실력 부족으로 실패했다.. 작가 꿈을 꾸고 2년여 동안 여의도에 들락거려 창작반 작품집까지 내었으나 방영하겠다는 피디님이 없어서.
그러나 어찌 되었든 나는 무모하지만 항해를 해서 내 바닥과 끝장을 보고 내 보트는 찢어져서 엉망이 되었다 "나는 자연에 산다"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산속 할아버지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숨겨놓았던 고무보트를 꺼내놓으시며"이 걸 타고 이북 청진항 고향으로 가보는 게 내 꿈이었다" 말씀하시면서 내놓으시던 고무보트. 바닷물 한 방울 안 묻힌 그 고무보트보다 겁 없이 바다에 도전한 찢기고 구멍 난 내 고무보트가 더 자랑스럽고 절대 후회와 미련이 없다.
비로소 나를 내 한계를 인정하고 이곳 도시 언저리 한옥마을에서 십오 분 떨어진 호숫가에 자리 잡고 찻집주인으로 잘 살아왔다
초임지에서 만난 40년 지기 샘이 정년퇴임 하고도 8년이 지나 칠순이 되셨다.
요가 수업을 같은 곳에서 배우는 바람에 일상을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나보다 노년을 한 발 앞서 가시는
샘이라 내 롤모델이 되곤 한다. 교장으로 은퇴하셨지만 과학선생님 출신이시라 지금도
날씨라든지 바람이라든지 미세먼지 그런 것에 유달리 관심이 많다. 그날 입을 옷이 고민될 때
콜 하면 직방이시다. 오후에는 풀린다니 가볍게 , 비 온다니 좀 따뜻하게....
매사에 감성적인 나와 달리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런 분이
컬러풀한 감성적인 서양 자수를 놓으시더니 칠순 기념 전시회를 여셨다
샘은 결혼을 안 하셨다. 우리가 청춘을 보낸 시기에는 사회 분위기가 결혼이 정답이고
결혼 안 하면 오답을 쓴 아웃사이더로 취급하고 왕따 시켜서
스트레스 팍팍 많이 받게 하는 사회분위기 였다
더구나 양반, 한옥이 상징인 지방도시.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 세대들은 어린 시절
여자 팔자 두룸박이라는 말을 흔하게 들었으며 본부인과 첩이라는 엄마들을 가진 아들 딸이
같은 학교에 다녀도 첨엔 수군거리다가 그냥 당연한 걸로 받아들였으며 앞집
귀남이 아줌마는 딸만 낳는 자신이 죄인이라 남편에게 여자를 얻어 자식을 낳게 까지 했다.
그런데도 또 딸을 낳아 그 딸을 아줌마가 길렀던.... 참..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그렇게 미개한 시절이었다. 동네에 여자가 스스로 돈 버는 여자는 초등학교 교사인 원종덕 선생님 -내
롤 모델이시라 아직까지도 기억한다_ 한 분뿐이셨다. 그러나 마을아줌마들은 법원 차 과장 부인이나
박소아과원장 사모님처럼 이쁘지 않고 작고 못 생겨서 자기 밥을 자기가 벌으로 다닌다고 생각했다
"오~오~오 새드 무비" 이 지역 오후의 팝 음악방송시간에 자주 나왔던 노래다. 팝음악과 신문물도 함께 들어오자 똑똑한 언니들이 등장하더니 독신녀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모가 설마 내 인생에 나쁜 길을 저렇게 목숨 걸고 권유하겠냐 하는 착한 딸인 나와
내 인생인데 내가 행복해야 하는데 부모가 내 맘을 어떻게 알아 하는 반항하는 딸인 나로. 이분되어
갈등을 일으켰고 용기 있게 자발적인 나 홀로 산다 의 독신녀들이 막 생겨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독.. 신.. 녀
이 기성 사회체제에 반항하는 개성 있는 자아의 등장이 불편하고 두려운 기득권 세력이 독신녀라고 유교적 언어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독신녀를 고집스럽고 냉정하고 이기적인.. 온갖 부정적인 캐릭터로 삼았다.
시대를 앞서가는 캐릭터인데... 우리 사회는 불편해했다
나는 결혼했고 교사일을 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살림과 육아는 친정 엄마가 대신해 주다시피 했지만
누구나 겪었던 가부장적인 남편과의 소통불가, 내 앞서가는 욕심에 남들 자식들과 비교하느라 겪었던
지옥 같던 마음의 고통, 가족들에게 닥친 우환과 상처...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힘든 시간이었다. 그때마다 혼자 사는 샘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이제야 솔직하게 고백한다.
독신은 내겐 못 가본 그래서 환상도 남은 길이다
친정엄마가 내게 결혼하라 하시면서 협박했던 말
"너도 늙어봐라 잉.. 자식 없으면 누가 널 들여다볼 것이며 누가 병원 데려가고 누가 장례치르고...."
물론 그 협박 때문에 결혼 한 건 아니었다.
결혼은 내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논리적으로 설명 안 되는 운명이라는 것이 더 많이 개입된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그럼 그 독신녀 언니들이 노후에 엄마말대로 자식이 없어서 남편이 없어서 정말 힘들게 살고 있는가.. 바로 내 주변 분들을 살펴본다.
떨어지는 꽃잎도 꽃꽂이에 속한다는 걸 깨닫게 해 준 , 그리고 세상의 나무들을 가지가
뻗은 방향, 가지 굵기, 가지 개수, 가지모양들을... 관찰하게 만든 꽃꽂이 ㅇㅇ 샘
이 지역의 핫플에 가면 만나게 되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독특한 꽃장식은 모두 이 분 작품 아니면
제자들의 솜씨이다.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쾌유하셔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과 단짝인 도청공무원 은퇴자인 ㅇㅇ 샘.
여행과 식도락가로 패셔니스트로 이 촌발 날리는 지방도시에 진녹색그린색 비틀을 타고 약간 괴기스러운
단발커트 머리를 하고 은빛 나는 운동복에 선글라스 끼고 천천히 걷는 모습은 짐 자무시의 영화 속 뉴욕 풍경을 만들어내는 뉴요커 할머니. 오늘도 나는 이분에게서 이 도시에서 가장 김치 잘 담그는 곳과 트렌디한 여행지를 소개받았고 못 가더라도 잠시 꿈이라도 꾼다
그리고 대학 도서관 사서로 있다가 좀 더 일찍 퇴직하고 먼 먼 경주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손누비장인에게 가서 배워 이 지역 손누비 이수자가 된 최샘.. 이 분 에게 부탁해 제대로 된 배냇저고리를 손주에게 선물할 수 있어 흐뭇했다
그리고 오늘 전시회 주인공 김샘.
다른 건 몰라도 깨끗한 학교 회계관리로 이 지역 교육의 발전에 일조했을 것이다.
모두 지금도 일을 하시며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
결혼하고 결혼 안 하고 가 노후생활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엄마 말이 틀렸다...
노후에 자식이 있든 자식이 없든 모든 노후는
결국 혼자이고 혼자 잘 사는 법을 터득하신 분들이
노후의 달인 이시다
마음은 안 내키나 혹시나 노후를 위해서 결혼 선택 하
는 바보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