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산책로에 사람들이 지나가나 보다. 하풍이가 날카롭게 컹컹컹 짖어댄다.하풍이는 우리 집 풍산개로 10년이 조금 지난 노견이다. 사람이 지나가는 걸 어찌 알았냐고? 고양이나 쥐가 지나가는 중이었으면 저런 날카로움은 버리고 조금 낮게 컹컹대다가 금방 그쳤을 테니까. 캄캄한 한 밤중에도 우리 가족이 맘 놓고 잘 자는 것은 집 밖의 상황을 저렇게 목소리로 바로바로 보고하는 하풍이 덕분이다.
호숫가에 살면서 늘 개가 옆에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개는 가족들 개였지 , 내 개는 아니었다. 나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무엇을 키우고 기르는 것을 잘 못 한다. 게으르기도 하고 몸과 손으로 하는 애써 일해도 눈에 안 띄는 노동 일은 소질도 관심도 없고 남들이 애써 노동해서 만들어 놓은 생산물을 째나게 펼쳐놓는 일에 더 관심이 있는 재수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찻자리 세팅, 꽃꽂이.... 내가 좋아하는 일은 한번 빠지면 시공간을 잊고 빠져들어 내 밥 챙겨 먹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몰두한다. 그러니 규칙적인 물 주기와 끼니를 챙겨야 하는 식물이나 동물 키우기는 언감생심, 가끔 양말도 짝짝이로 신어 식구들을 황당하게 만들 때도 있어 내 몸 단장이나 잘하는 게 내 분수에 맞는 일이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게다가 "하려면 제대로"가 평소의 내 생각이다.
우리 집 개들의 주보호자인 남편이 남들처럼 개집도 개 밥그릇도 개 목줄도 스타일리시하게 째나게 키우지 못하고 이웃집 할아버지가 쓰시던 거무튀튀한 개하우스, 쓰다 만 전기밥솥에서 뺀 작은 밥솥을 개 물통으로. 개 키우는 내 로망의 이미지가 아니어서 개 키운단 말은 쉬쉬하고 함구해왔다. 그렇다고 개 키우는 것을 도와주지도 , 개 키우는 방식을 바꾸어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동물을 가족이 아닌 가축으로 키우는 당신은 자격미달여!
이렇게 큰소리친다. 벌써 11년 차 우리 하풍이 만 해도 그렇다. 노환으로 질병으로 우리 곁을 떠났던 개들. 그때마다 떠나보내는 심정이 지랄 같아서 다시는 개 키우지 말자고 약속했던 남편이 귀농사이트에 나온 여섯 마리의 강아지 새끼들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우선 한번 보기나 하겠다고 나섰다.
남편의 한 고집하는 성격을 알기에 어떻게 하든 못 가져오게 방해하려고 따라나섰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펜션이었고 강아지들은 식사시간이었다. 낯선 손님들이 왔는 데도 긴장, 경계 없이 고개박고 먹는 데에만 몰두하는 살찐 강아지들 사이에 단식하는 강아지처럼 마른 놈이 얼른 개집으로 숨었다. 저런저런... 자기 상황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자의식이 있는 이 강아지가 갑자기 맘에 들어 나도 모르게 "얘 데려가자" 하고 데려온 게 바로 저 하풍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데려오면서 내내 그 살찌고 튼튼한 놈들은 제쳐두고 가장 비리비리한 놈을 데려온다고 툴툴 대던 남편이 운전하던 차를 멈추고 뒤로 나가 트렁크를 열더니 깨갱.. 비명소리가 났었다. 혹시 폭행. 소름 끼쳐 혼비백산 소리를 지르니
아!! 출발부터 지금까지 소리 한번 안 지르길래 혹시 못 짖는 놈인 줄 알고!!!!!
이런 우리에게 개는 가축이 아닌 소통해야 할 가족임을 가르쳐 준 게 딸이었다. 개는 훌륭하다는 티브이 프로도 가끔 보게 되었다. 딸의 카톡에 오랫동안 올라 있었던 하풍이 사진이다. 이때가 하풍이의 화양연화였다. 어딜 가나 하풍이 생각에 마음이 가던 딸의 애정을 듬뿍 받던 시절. 하풍이도 귀티가 나고 생기가 펄펄 나던 .. 그러나 딸이 결혼을 하고 딸의 애정은 자기 집 어린 딸에게 가게 되었다. 가축에서 진화는 되었다지만 나이 든 남편과 내 사고는 쉽게 변하지 않았으니.. 가축도 가족도 아닌 그 중간으로 하풍이는 생존 중이었다.
그러던 하풍이가 요즘 들어 날카로워지고 위협적이 되고 신경질 적으로 변해 조금 맘이 편치 못했는데 무심히 흘려보던 티브이 속 펜션의 개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주인의 고민도 나랑 비슷해서 급 몰입이 되었다
티브이 속 11년 차 노견 몬이, 우리 집 하풍이 , 그리고 인간 노인이 된 내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1년 차 노견 몬을 젊은 반려견 사랑이와 한 공간에 두는 건 두 반려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는 통찰ㆍ
늙어서 거둥이 멀쩡하지 못한 노견 몬이를 젊은 반려견 사랑이는 세균덩어리로 생각하며 그래서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게 싫다는생각은 충격적인 생각이면서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ㆍ.우리가 노인 냄새 싫다고 노인 방 들어가기 싫어하듯이ᆢ그리고 무엇보다.
몬이 입장에서는 아프고 불편한 자기 몸을 젊은 사랑이 앞에서 드러내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일뿐더러
더구나 펜션 손님들이 날마다 들락거리는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 문지기 노릇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ㆍ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 못 하는 주인님이짜증나고 갑갑했으리라. 그래서해서는 안될 주인을 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럴수록 배은망덕 죄책감은 더 들고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