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복음의 길을 만났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만난 매산등 성지순례길의 시간

by 글빛 지니
ChatGPT Image 2026년 3월 7일 오후 06_24_07.png "순천 매산등 성지순례길을 걸으며 선교사들의 헌신과 이 땅에 남겨진 복음의 시간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올해 기자로서 순천 출입을 하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매산등 성지순례길’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순천에 기독교 역사박물관이 있다는 것도,
이 도시가 호남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최근에야 알게 된 이야기였다.


마침 순천에 사는 동생이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같이 한번 가볼까?”


생각난 김에 떠난 길이었다.


그날의 날씨는 꽤 추웠다.
바람이 매서워 걷기 전부터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하지만 해설사분의 배려 덕분에
순례길을 돌아보는 시간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photo_2026-03-07_18-22-28.jpg 성지순례길을 걷기 전, 방문자센터에서 순천 매산등 선교마을의 역사와 순례길 전체 이야기를 듣는 시간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씨를 고려해
먼저 방문자센터에서 순천의 기독교 역사와
성지순례길의 전체 흐름을 설명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 설명을 듣고 길을 걷기 시작하니
이 길이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순천 매산등 성지순례길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려 했던 선교사들의 시간,
그리고 그들이 남긴 삶의 흔적들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교사들은 교회만 세운 것이 아니었다.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당시 이 땅에 없던 근대 의료와 교육을 함께 전했다.

IMG_9686.JPG 근대 교육과 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선교사 건물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일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속에서,
삶으로 전해졌다.


해설을 들으며
또 하나 마음에 오래 남은 생각이 있었다.


자기 나라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들이
문명적으로는 뒤처져 있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이었다.


낯선 땅, 낯선 언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그들이었다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선교사들이 남겨 놓은 건물과 학교, 병원들을 보며
또 한 번 놀라기도 했다.


백 년이 훨씬 지난 시간이 흘렀는데도
지금 우리가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정교하고 단단하게 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긴 것은 단지 신앙의 흔적만이 아니었다.
이 땅에 문명과 교육, 의료의 씨앗을 함께 남겼다.


그 시간을 떠올리다 보니
지금의 대한민국이 더 새롭게 느껴졌다.


한때는 복음을 받는 나라였던 우리가
이제는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


그 변화의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한 감사가 올라왔다.

photo_2026-03-07_18-22-50.jpg 순천의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순천시 기독교역사박물관

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도
설명은 이어졌다.


순천의 기독교 역사와
이곳에 머물렀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시던지
그분들이 이 도시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됐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도시의 역사를
이토록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photo_2026-03-07_18-22-37.jpg 순천에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시간

같이 걸었던 동생들도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순천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되게 의미 있는 곳이네.”


그 한마디가
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늘 익숙한 도시 속에서도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을
다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날은 날씨가 많이 추웠다.


하지만 길을 걷는 동안
마음은 이상하게도 따뜻해졌다.


선교사들이 심은 나무들,
오래된 건물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이야기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감사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계절이라
길의 풍경을 다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꽃이 활짝 피는 봄날,

이 길을 한 번 더 걸어봐야겠다고.


그때는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이 길을 다시 만나고 싶다.


복음의 시간을 기록하는 글빛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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