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복음의 길을 만났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만난 매산등 성지순례길의 시간
by
글빛 지니
Mar 7. 2026
"순천 매산등 성지순례길을 걸으며 선교사들의 헌신과 이 땅에 남겨진 복음의 시간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올해 기자로서 순천 출입을 하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매산등 성지순례길’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순천에 기독교 역사박물관이 있다는 것도,
이 도시가 호남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최근에야 알게 된 이야기였다.
마침 순천에 사는 동생이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같이 한번 가볼까?”
생각난 김에 떠난 길이었다.
그날의 날씨는 꽤 추웠다.
바람이 매서워 걷기 전부터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하지만 해설사분의 배려 덕분에
순례길을 돌아보는 시간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성지순례길을 걷기 전, 방문자센터에서 순천 매산등 선교마을의 역사와 순례길 전체 이야기를 듣는 시간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씨를 고려해
먼저 방문자센터에서 순천의 기독교 역사와
성지순례길의 전체 흐름을 설명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 설명을 듣고 길을 걷기 시작하니
이 길이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순천 매산등 성지순례길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려 했던 선교사들의 시간,
그리고 그들이 남긴 삶의 흔적들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교사들은 교회만 세운 것이 아니었다.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당시 이 땅에 없던 근대 의료와 교육을 함께 전했다.
근대 교육과 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선교사 건물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일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속에서,
삶으로 전해졌다.
해설을 들으며
또 하나 마음에 오래 남은 생각이 있었다.
자기 나라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들이
문명적으로는 뒤처져 있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이었다.
낯선 땅, 낯선 언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그들이었다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선교사들이 남겨 놓은 건물과 학교, 병원들을 보며
또 한 번 놀라기도 했다.
백 년이 훨씬 지난 시간이 흘렀는데도
지금 우리가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정교하고 단단하게 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긴 것은 단지 신앙의 흔적만이 아니었다.
이 땅에 문명과 교육, 의료의 씨앗을 함께 남겼다.
그 시간을 떠올리다 보니
지금의 대한민국이 더 새롭게 느껴졌다.
한때는 복음을 받는 나라였던 우리가
이제는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
그 변화의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한 감사가 올라왔다.
순천의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순천시 기독교역사박물관
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도
설명은 이어졌다.
순천의 기독교 역사와
이곳에 머물렀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시던지
그분들이 이 도시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됐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도시의 역사를
이토록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순천에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시간
같이 걸었던 동생들도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순천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되게 의미 있는 곳이네.”
그 한마디가
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늘 익숙한 도시 속에서도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을
다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날은 날씨가 많이 추웠다.
하지만 길을 걷는 동안
마음은 이상하게도 따뜻해졌다.
선교사들이 심은 나무들,
오래된 건물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이야기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감사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계절이라
길의 풍경을 다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꽃이 활짝 피는 봄날,
이 길을 한 번 더 걸어봐야겠다고.
그때는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이 길을 다시 만나고 싶다.
복음의 시간을 기록하는 글빛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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