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침의 과학적 기전 #ICMART
오는 9월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ICMART 2024! 학술대회가 개최되기 전, ICMART 2024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력하시는 한의사 분들, 또 학술 연구 발표를 예정하고 계신 한의사분들의 특집 인터뷰를 준비해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과 교수로 계신 이승훈 교수님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침의 과학적 접근'을 주제로 한 저서들을 출판하시기도 했습니다. 이승훈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침의 과학화와 세계화 이야기, 페럿과 유니콘이 대신 전해드립니다!
[약력]
경희대 한의과대학 침구과 교수
대한한의학회 홍보이사
대한침구의학회 홍보이사
[학력]
경희대대학원 한의학과 박사
경희대대학원 한의학과 석사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학사
[저서]
2019.01) 침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활용 (2019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
2021.01) 침의 과학적 접근의 이해 (2021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
들어가며
Q: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침구학을 담당하고 있는 이승훈이라고 합니다. 임상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로서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척추관절센터에서 진료를 하면서 연구와 교육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Q: 교수님의 일과와 일주일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A: 진료와 연구, 교육 그리고 다양한 회의들의 연속입니다. 보통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으로 출근해서 척추관절이나 신경병증성통증 질환 진료를 합니다. 진료가 없는 시간에는 맡고 있는 다양한 연구들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제 임상이나 연구 관련된 내용을 토대로 한의사분들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강의를 합니다. 가끔 일반인이나 외국분들을 위한 강의도 있고요. 그밖에 학회나 단체에서 맡고 있는 역할들이 있어 해당 회의나 업무도 같이 합니다.
학부 및 진로
Q: 교수님께서는 한의대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너무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네요. 기억해 보면 한의대는 저에게 약간 동경이 깃든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과학고를 다니면서 고등학생이지만 다양한 과학 관련 활동을 미리 해봤던 것 같아요. 어려운 수학이나 과학 수업도 들어보고, 팀을 짜서 연구 활동도 하고 소논문도 써보고. 그런데 그럴수록 오히려 정형화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변에 미리 선행학습을 많이 해서 제가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친구들도 있었는데 뭔가 새로운 분야에서는 제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와중에 저희 누님이 예전부터 한의대를 가고 싶어하셔서 저도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거든요. 또 당시에는 드라마 <허준>으로 한의대 열풍이 있던 시기이기도 했죠. 그래서 ‘한의대를 가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한의대에 진학했습니다.
Q: 과학고에 다니셨다면 입학한 후에 한의학적 관점을 배울 때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은 괜찮으셨나요?
A: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한의학적 관점을 배우고 음양오행이나 전통한의학 이론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어요. 제가 학부생이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전통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예과 때부터 전통 한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공부를 했어요. 주역이나 명리학도 배워보고 상한론, 사암침 등을 음양오행, 표본중과 개합추 이론으로 설명하는 임상 강의들도 많이 들었어요. 오히려 당시에는 한의학을 과학화해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거부감이 들었던 거 같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부생 때는 ‘한의학은 전통 한의학의 모습이야 말로 가장 한의학답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학부 때 어떤 학생이셨나요?
A: 학생 때는 막연히 학교 내에서는 제대로 된 한의학 공부를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방학이나 수업 이외 시간에 여러 외부 선생님이나 단체들에서 한의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요즘도 활동을 하나 모르겠는데, 동의보감 연구회도 하고, 품(전국 한의과대학 연합학술동아리)에 가서 스터디도 하고, 복치의학회 강의도 열심히 들었던 것 같아요. 따로 외부 선생님들께 상한론, 의학입문, 사암침, 동씨침 등도 배웠었고요. 아마 훨씬 많을 텐데 잘 기억은 안 나네요. 그때 들었던 강의들이 모두 다 좋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의 한의학적 관점을 세우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다만 학생이다 보니 어떤 강의가 좋은지 몰라서 이것저것 시행착오가 많았던 것 같고요. 뭔가를 하고 싶고 한의학을 잘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서 약간의 고민과 방황이 있었던 거 같네요. 너무 공부 얘기만 한 거 같은데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공연 동아리 활동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학부생 때 정말 즐겁게 학교를 다녔었어요.
Q: 지금 교수님께서는 침구과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신데요, 어떻게 해서 전공을 선택하게 되셨고, 교수의 길을 선택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학생 때는 어떤 전공이 나에게 맞을지 생각보다 잘 알 수가 없더라고요.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만으로는 결정하기 어려웠어요. 아마 당시에는 성적이 병원 인턴 들어갈 정도는 돼서 우선 전문의는 따보자라는 생각으로 경희대 한방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병원에서 다양한 과를 접해봤는데 당시 침구과 선배님들이 참 액티브하고 과가 활발하게 뭔가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침구과라면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침으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져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구요. 오히려 침구과를 선택한 후에, 여러 임상과 연구를 접하면서 너무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침구학을 더 열심히 연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수의 길을 선택한 것도 처음부터 교수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제가 학교를 다니고 병원에 막 들어왔을 때는 지금처럼 임상 연구가 활발한 시기가 아니었어요. 저는 오히려 임상에 관심이 많았고, 과에 정말 다양한 입원 환자들이 있어서 제가 공부했던 한약이나 침법들을 써보고 양방 협진에서 이뤄지는 진단과 처치들도 배우면서 지냈어요. 그러던 중 2009년인가 침구과 이재동 교수님께서 요통 임상진료지침 연구를 하고 계셨는데 우연하게 레지던트지만 그 연구를 도와드리게 됐어요. 그때 EBM(근거중심의학)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EBM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바로 ‘이것이 지금 현재 한의학에 절실히 필요하구나!’라고 확신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한의학 공부를 하다보면 항상 모호한 영역이 있다고 느꼈는데 EBM은 그렇지 않았어요. 당시의 생각이지만요. 그래서 EBM에 대한 다양한 서적이나 논문을 읽어보고 외부 강의도 들으러 갔었네요. 그러면서 임상진료지침도 공부하면서 의국 스터디 주제도 임상진료지침 시리즈로 바꿨던 생각이 나네요. 아마 당시 타과에서도 궁금했었는지 이례적으로 저희 스터디를 들으러 왔었고요. 그러다보니 임상진료지침의 근거가 되는 체계적문헌고찰(SR)도 공부하게 되고, 또 그 근거가 되는 임상연구도 공부하게 되고. 이렇게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시작했어요. 그래서 조금 더 임상 연구를 배워보고 싶었는데, 운 좋게 공중보건의사를 한국한의학연구원으로 가게 됐어요. 한의학연구원 침구경락연구그룹에서 정말 훌륭하고 좋은 연구자분들을 알게 되고 다양한 임상연구 경험을 쌓게 됐어요. 당시 다양한 국내외 임상연구 관련 학회에 참가하며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요. 특히 2012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개최됐던 Society for Clinical Trials 학회에서 ‘EBM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David L Sackett를 만났던 것이 기억나네요. EBM을 처음 주창하고 매우 유명했던 분이었는데 세션 끝나고 따로 질문하면서 저를 소개하며 격려의 말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군복무를 마칠 때가 되서 이제는 임상과 연구를 접목시켜 보고 싶었고 다시 펠로우로 경희의료원 침구과에서 일하게 됐네요. 그게 2014년 이니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2012년 5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개최된 Society for Clinical Trials 학회에서 근거중심의 아버지로 알려진 David L Sackett와 함께
침의 과학적 접근
Q: 교수님께서는 침의 과학적 접근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EBM과는 조금 다른 영역인 것 같은데, 어떻게 침의 기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환자들에게 침 치료를 하다 보면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 들이 참 많았어요. 예를 들어, 아시혈처럼 침을 아픈 곳에 맞으면 통증이 줄어드는데 기혈이 통한다는 설명 말고 좀더 납득이 가는이유가 뭔지, 언제 환측에 또 언제 건측에 침치료를 해야 하는지, 약물은 반감기가 있어서 복용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침도 과연 몇 시간마다 몇 분정도 맞아야 하는지. 이외에도 수도 없는 궁금증이 많은데, 전통 이론 말고 흔히 말하는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 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전통적인 이론으로 설명도 필요한데 내가 재현성있게 환자한테 침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이 치료가 어떤 기전으로 인체 내에서 작용하는 지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저는 기초 실험을 하는 연구자는 아니지만 임상의로서 기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좀더 자세한 이유는 제가 출판한 <침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 활용>의 서문에 적어뒀었네요. 아마 그 서문을 쓰는데 거의 3개월 정도 걸렸던 걸 보면 굉장히 고심해서 내가 왜 임상의로서 침의 과학적 기전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한의사들이 이를 알아야 하는지 생각했던 거 같네요. 어제도 미국한의사들을 대상으로 ‘침의 과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한 통증 질환 임상 활용’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강의를 했는데 호응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미국 주류 사회에 한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침에 대한 전통 이론과 더불어 과학적 설명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100명이 가까운 분들이 열정적으로 강의를 들으시고 질문도 하셨네요.
Q: 그럼 침의 과학적 기전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저는 ‘침의 과학적 기전’을 단순한 지식이 아닌 실제 임상 진료에 활용하면서 이에 대한 활용 방안에 대한 다양한 강의와 출판 활동을 해왔습니다. 우선 과학적 기전을 얘기하기 전에 침 치료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크게 2가지, ‘임상 근거’와 ‘작용 기전’을 알아야 합니다.
‘임상 근거’는 흔히 말하는 EBM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치료가 플라세보에 비에 어떤 고유의 효능(efficacy)이 있으며, 다른 치료에 비해서 얼마나 안전하고 효과(effectiveness)가 있는지를 임상 시험을 통해서 근거(evidence)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작용 기전’은 이 치료법이 인체 내에서 어떠한 신경해부생리학적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것인지를 다루는 것이고요. 침의 작용 기전을 과거에는 전통동아시아의학 관점에서 주로 설명을 해왔다면, 최근 들어서는 신경해부생리학적 관점으로도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이죠. 한의사가 한국보건의료체계에서 침에 대한 전문가로서 계속 인정받고 활동하려면, 침에 대한 임상 근거와 작용 기전 및 이에 대한 전통동아시아의학적 관점 및 신경생리학적 관점 모두를 잘 알아야 합니다.
침이나 뜸, 부항 등의 한의비약물요법을 일종의 외부에서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자극(물리적, 전기, 온도, 압력 등)이라는 관점에서 그 자극의 작용 기전을 크게 3가지 형태에서 바라볼 수 있어요. 자극이 국소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local effect), 분절적으로 어떻게 효과가 나는지(segmental effect), 혹은 전신적으로 어떻게 효과가 나는지(general effect)를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침법들도 이 범주 안에서 어디에 작용하는지를 생각하여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침 자극의 인체 내 작용을 국소, 분절, 전신으로 나누어 도식화한 그림(출처:이승훈 교수)
Q: 그렇다면 ‘침의 과학적 기전’이라는 주제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느끼신 걸정적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침구과 대학원에 다닐 때, 논문을 발제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각 질환에서 침의 효과를 발표하는 수업이었는데, 제가 맡았던 논문은 전침으로 불임을 치료한 독일의 연구 논문이었습니다. 당시에 불임에 침 치료가 효과가 있는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하면, 대부분 전통 경락 학설을 기반으로 설명했죠. 저도 그동안 전통적인 한의학적 관점에서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해 왔지만, 서구 유럽 국가에서는 침 치료의 기전을 어떻게 설명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도 단순히 통증질환이 아닌 불임이라는 질환을 영어로 쓴 논문에서 말이죠. 그래서 논문을 읽어보았더니, 침을 맞으면 HPO axis(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 축)의 시작이되는 시상하부를 자극해서 궁상핵에서 베타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이것이 호르몬의 파동성을 유지시켜 불임을 치료한다고 적혀있더라고요. 당시 가설이긴 했지만, 저는 침의 효과를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침 치료에 대한 확신이 더 생기게 됐어요. 이후에 제가 궁금했었던 부분들이 신경생리학적으로, 해부학, 근육학적으로 설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각들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최신 연구까지 포함한 침의 과학적 기전에 대한 서적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의 침의 기전 연구들이 미세 환경에 대한 연구들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지식을 임상에 바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여러 논문들과 연구들을 찾으면서 침의 신경생리학적 작용 기전을 바탕으로 언제 침을 건측, 환측에 치료를 해야 하는지 차이를 알게 됐어요. 결국 침의 과학적 작용 기전을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임상에서 침을 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필수적이라고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침의 작용 기전을 알아야 이를 바탕으로 그 효과를 높일 방향으로 침을 개발 할 수 있겠더라고요.
Q: 이런 이유로 책을 출판하신 것으로 아는데 <침의 과학적 접근의 이해>, <침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 활용> 서적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침의 과학적 접근의 이해>는 <Western medical acupuncture 2판>을 번역한 책으로 침의 과학적 기전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개론서’입니다. 침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통동아시아의학관점이 아닌 신경해부생리학적 관점에서 국소, 분절, 전신 자극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침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 활용>은 <Medical acupuncture 2판>을 번역한 책으로 여러 명의 저자들이 침의 과학적 관점에 대해 역사부터 임상활용까지 다양한 내용을 망라하여 기술한 ‘참고서’에 가깝습니다. 각각 2021년과 2019년에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세종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 굳이 책 읽는 순서를 정한다면 초심자의 경우 <침의 과학적 접근의 이해>를 읽고 체계를 다진 뒤 <침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 활용>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만, 두가지 책은 모두 구체적인 임상서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 질환에 국한되어 구체적인 치료 방법을 제시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침의 작용 기전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전통동아시아의학 관점의 활용법을 바라보면 좀더 객관적이고 재현성 있게 침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한의학은 전통경락학설, 의과학적 맥락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스럽기도 한데요, 올바른 치료의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사실 굉장히 어려운 주제죠. 처음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무엇이 더 맞고 틀렸는지를 알고 공부하기는 어려우니까요. 학생 때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접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전통동아시아의학 관점이면 정확하게 그 세부 이론이 어떻게 기원됐는지와 임상적 의미를 알아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요. 신경해부생리학 관점도 진리가 아니라 변화될 수 있는 지식이라는 걸 이해하고 배워야 합니다. 특히 국소 취혈은 상대적으로 과학적인 기전이 많이 밝혀져 있지만, 원위 취혈 특히 경혈특이성에 대한 내용은 아직 전통동아시아의학 관점에서 설명되는 내용을 과학적으로 많이 설명하지 못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많은 교수님과 전문가분들이 이런 균형적인 관점에서 임상 진료를 하시고 설명을 해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학부생 때는 다른 과목들도 완벽하게 공부한다기보다 커리큘럼의 다양한 내용을 학습하는 것이 중요해요. 예과, 본과, 임상실습, 더 나아가 실제로 임상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그동안 배웠던 지식들이 구슬이 꿰어지듯 연결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을 충분히 학습하면서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요. 현재 공부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하되, 지금 배우는 것 또한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골격계 초음파
Q: 교수님께서는 예전부터 초음파 기기에 관심을 두고 임상에서 활용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만큼 초음파가 상용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 일찍이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제가 전공의 시절인 2000년도 중반에 경희대 한방병원 침구과에 초음파진단기기가 있었습니다. 결과지가 프린팅되서 나오는 예전 기계였는데 아직 침구과 창고에 보관되어 있더라고요. 당시 이재동 교수님께서 임상과 연구에 초음파진단기기를 활용하셨는데, 외래 보조 전공의들이 어깨나 무릎 관절 초음파를 스캔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초음파 관련 의국 내 스터디도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펠로우로 다시 병원에 들어오게 되고 2010년 중반에 새로운 초음파 진단기기를 도입하면서 진료나 교육에 활용을 해오고 있습니다.
Q: 현재 하고 계신 초음파 강의나 진료를 소개해 주세요!
A: 우선 경희대 침구과에서 시범적으로 본과 4학년을 대상으로 초음파 유도하 침술에 관련된 OSCE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사전 동영상을 듣고 오면 그것을 바탕으로 실제 초음파 유도하 침술을 체크리스트에 따라 시행해 보는 강의를 합니다. 유투브 전과자 경희대편에서도 일부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음파 유도하 침술에 관련된 전공 선택 강의도 하고 있고요. 한의사들 대상으로는 대한한의학회나 한방척추관절학회, 한방내과학회 같은 학회에서도 초음파 유도하 침술 혹은 한의 치료를 위한 초음파 활용과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초음파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척추관절센터에서 진료를 하고 있어서 주로 다양한 근골격계 환자분들 진단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초음파를 활용하기도 하고, 호침, 약침, 침도침, 매선 등을 초음파유도하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2024년 8월 경희의료원 침구과 진료실에서 유투브 전과자 경희대 한의대 편에서 함께 출연한 비투비 이창섭님과 함께
Q: 학생들 중에서도 초음파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을까요?
A: 초음파는 인체 내부를 살펴 보다 정확한 한의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진단 및 치료 보조 도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초음파를 활용한 한의 의료 기술은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다만, 임상에서 실제로 활용하는 초음파 진단이나 유도하치료를 학부생 때 완벽하게 습득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초음파를 임상에 활용하는 것은 이미 임상 과목에 대한 지식까지 습득한 상황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초음파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진짜 많이 써보는 것이 중요하고요. 우선 학생 때는 초음파로 확인할 수 있는 인체 내 부위를 먼저 명확하게 공부해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초음파 스캔한 부위의 해부학적 지식이 없다면 초음파 영상은 그저 흑백 사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표면해부학과 더불어 근골격계 연부 조직 해부학을 충분히 많이 공부하시길 추천합니다. 근육이 침 치료나 추나요법의 주요 치료 타겟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런 치료를 잘하기 위해서는 근육학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초음파를 한의진료에 활용하면서 말초신경해부학 또한 매우 중요해졌어요. 초음파의 해상도가 좋아지면서 좀더 세부적인 신경을 관찰할 수 있게 되고, 한의 치료를 통해 특정 경혈 아래 있는 특정 신경을 보다 정밀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됨으로서 말초 신경의 주행 경로와 그 주변의 구조물 또한 잘 공부해 보시길 바랍니다.
Q: 초음파 강의를 하실 때 염두에 두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A: 저희 연구팀에서 올해 1월에 초음파 유도하 침술과 관련하여 약 1,000명의 한의사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시행했습니다. 초음파 교육과 관련된 질문에서 현재 한의사 분들은 초음파 관련한 교육을 외부 강의에서 많이 들었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물론 그런 강의도 너무 좋았지만, 앞으로는 학부에서 초음파 강의들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평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대학에서부터 좀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요즘은 대학 내 초음파 강의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초음파를 활용하는 것이 신기해서 한번 써보는 강의가 아닌, 기존의 한의 의료 행위에서 초음파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교육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설문에서 초음파유도하 한의시술의 명확한 프로토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한의사들의 초음파 활용 합법화가 판결난 것이 아주 오래되지 않아서, 현재는 통일된 한의시술 프로토콜이 개발되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저또한 임상 교수로서 모든 질환에 무작정 초음파유도하침술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상황에 적합하게 시술하는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이를 강의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2024년 4월 한방척추관절학회에서 ‘한의원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근골격계 다빈도부위 초음파 활용 강의’ 라이브 스캔 현장
연구 활동
Q: 교수님께서 하고 계신 연구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우선 다양한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난치성이라고 알려진 신경병증성 통증에 대한 한의 치료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한의학연구원에 있을 때 시작했던 전침치료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효과 연구는 단일기관 및 다기관 연구를 거쳐 2018년에 Diabetes Care(IF=14.8)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와 함께 정부 과제를 수주하여 ‘난치성 신경병증성 통증에 대한 전침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하는 과제의 연구책임자로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하고 체계적문헌고찰 및 한의복합치료를 적용한 대상포진후신경병증성 통증 임상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료기기 개발 및 활용에도 관심이 있어서 ‘3D 센서 기반 동작 분석 신의료기술 개발 연구’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초음파 영상 자동 인식 및 술기 보조 시스템 개발 연구’를 의료기기 업체와 의공학과 등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임상적으로 근골격계 질환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증’과 ‘기능’ 2가지 입니다. 3D depth 카메라를 활용한 연구는 그중 ‘기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런 3D 카메라를 통해서는 기존에 눈으로 관찰하기 어려웠던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오십견 환자가 팔을 드는 동작과 회전근개 손상 환자가 팔을 드는 동작에 차이점이 존재할 거예요. 단순히 2차원적인 ROM 뿐 아니라 팔을 외전하는 과정에서의 3차원 평면에서의 움직임, 각속도, 타관절 간의 상호 움직임 등이죠. 이것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하고, 그 기기를 통해 질환별 환자의 동작을 정확히 측정한 다음, 그 데이터를 해당 질환에 따라 학습시킨다면 엑스레이나 MRI를 활용하기 이전에 스크리닝용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진단용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를 개발 할 수 있습니다. 한의사들에게 필요한 기술이지요. 현재 이런 기기 개발에 참여하며 임상 파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S사의 초음파진단기기에 장착한 ‘nerve tracking’ 기능을 한의 의료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도 의공학과와 공동으로 시작했습니다. 기존 기술은 주로 의과용으로 nerve block을 위한 특정 신경에 국한되어 개발되었는데, 저는 좀더 한의 의료에 맞는 초음파유도하침술의 보조 기술로서 개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침도침술에 적합한 형태로 요추부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기술이 잘 개발되어 머지않아 한의사 분들이 사용하는 초음파진단기기에 해당 소프트웨어 의료기기가 장착되어 진료에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Q: 교수님께서는 연구와 임상 두 분야에서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A: 제가 연구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임상을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근거중심의학을 공부하고 임상연구를 하는 것도 단순히 지식을 쌓고 임상 근거를 만드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나의 진료실에서 임상 효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기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체계적문헌고찰에서 개별 연구의 편향(bias)을 평가하거나 임상 연구에서 내적타당도(internal validation)를 높이기 위해 엄밀한 연구 설계를 하는 과정 모두 결국은 내가 시행하는 의료 행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환자에게 적절한 한의 치료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과학적 기전에 관해서 관심을 두고 이유도 실제 환자 치료를 할 때 환자나 질환에 맞게 더 정밀한 침 치료의 매개변수(parameter)를 조절하는 능력을 얻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이런 모든 연구가 다 임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임상에서 환자를 보면서 쌓이는 임상적 경험들이 실질적인 연구 질문을 만들거나 연구 설계를 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즉, 매일매일 진료실에 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바를 연구에 적용하여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정말 임상에 필요한 것을 채우는 연구를 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임상을 하다보면 아이디어가 많이 생기고 하고 싶은 연구 주제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제가 다 할 수 없고, 또 제 전공이 아닌 분야 즉 공학적인 부분들도 많아서 요즘은 타과나 타전공자들과 협력 연구를 많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학부생들과도 연구를 같이 하려고 학부생 연구자들도 모집해서 일부 연구를 같이 진행 중입니다.
Q: 한의계의 발전을 위해서 앞으로 어떤 분야의 연구가 이루어지면 좋을까요?
A: 지금까지 한의계에서는 임상 근거를 밝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현대의료기기 및 공학기술과 한의의료행위가 결합되어 새로운 한의진단 및 치료기술이 개발 및 검증되는 연구도 많아져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의학도 주변 학문과의 융합을 통해서 계속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ICT 기술이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한의 진단 및 치료 같은 것이죠. 이제는 공학을 비롯하여 다른 분야와의 다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한의사나 한방병원 교수 혼자서가 아니라 타 분야의 연구진들과 협업해야 합니다. 한의계 내 기초와 임상 교수와의 협업 뿐 아니라 앞으로는 공학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도 많아질 거라고 봅니다. 한의학을 폄훼하는 일부 집단에서는 한의사를 단순히 가마타고 침통 들고 다니는 사람으로 묘사하던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죠. 이미 한의사들이 진료실에서 초음파를 활용하는 모습이 당연하게 됐듯이 기존 한의의료기술 또한 더욱 발전되어 국내외 보건의료체계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의료인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ICMART 2024
Q: ICMART 2024에서 맡고 계신 업무를 소개해 주세요!
A: 저는 집행위원회에 소속되어 전반적인 운영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이나 연자 섭외 등의 업무를 하고 있어요. 특히 대한한의학회 홍보이사로서 ICMART의 홍보 업무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ICMART 2024는 외국 의사들에게 발전하는 한국의 침구 치료 기술, 연구를 소개하고 한의학의 우수한 장점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ICMART 2024에 참가하는 한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A: ICMART 2024는 국제 학회인 만큼, 학교에서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국가의 침구 치료 기술이나 연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예요. 그리고 세계적인 임상이나 연구 트렌드를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논문의 경우 출판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있지만, 학회에서는 On Going 한 주제들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또한 자신이 관심 있었던 분야의 저자가 있다면 그 저자의 강의를 직접 들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Keynote Speaker들이 하시는 강연을 꼭 들어보시면 좋겠어요. 특히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인 Nature나 Neuron 등에 전침이 vagal reflex를 통해 전신 염증을 조절하는 기전을 밝힌 Qiufu Ma 교수나 <침의 과학적 접근의 이해>의 원저자 중 하나인 영국 의학침술협회 Mike Cummings의 키노트 강의를 추천합니다.
2023년 9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ICMART 2023에서 <Medical acupuncture>의 원저자 중 한명인 Mike cummings와 함께
Q: 학생들이 학회에서 초록을 제출하거나 포스터 발표를 하면서 어떤 것들을 얻어갈 수 있을까요?
A: 학회에서 포스터를 발표하면 본인이 참여한 연구를 다른 사람한테 설명할 수 있어요. 발표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나의 포스터에 관해 물어보고 내가 설명해 주기도 하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예요. 저도 2012년에 처음으로 미국 포틀랜드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포스터로 학회에서 발표했는데, 그때 포스터 상을 받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수상을 한번 노려보면 좋겠습니다. 출판된 논문이 있다면 포스터에 QR 코드를 넣어서 접속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아요. 본인이 ID카드를 만들어서 전해주거나 SNS를 알려주는 방법도 있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연구자 간의 네트워킹도 할 수 있으니, 자신의 연구에 대한 설명을 잘 준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외학회의 경우에는 학회에서 새로운 연구 영역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 뿐 아니라 그 도시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 또한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보통 학회 프로그램이 이르면 오전 7시30분부터 시작되는데, 열심히 학회에 참여하다가 저녁에는 학회에 같이 온 분들이나 학회에서 만난 연구자들과 함께 개최된 도시도 둘러보면 더 많은 기억이 날 겁니다.
2024년 4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된 세계골관절염학회(OARSI)에 참가한 사진(좌)
함께 참가한 침구과 이수지 교수와 김요환 전공의와 무지크페라인(Musikfreunde)에서(우)
대만드 공통 질문
Q: 인생의 그래프를 그린다면 가장 뿌듯했던 Up & 포기하고 싶었던 Down의 순간은 언제였고, 그때의 극복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A: 처음의 경험들이 소중했던 것 같아요. 논문을 처음으로 학술지에 기고했을 때, 처음으로 SCI급 학술지에 기고했을 때, 처음으로 책이 출판되었을 때. 이런 경험들이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최근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2022년 한국보건복지인재원(KOHI)에서 진행됐던 ‘인공지능 전문가 양성과정’에서 팀 프로젝트 최우수상을 받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2000년도 후반부터 EBM과 다양한 임상 연구 방법론을 배우고 수행하면서 그 연구 성과로 경희대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어요. 그때 열심히 공부했던 걸로 한 10년 써먹었던 거죠. 근데 막상 교수가 되어 보니 앞으로 다음 스텝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의료인공지능 분야가 막 대두되고 있던 것을 보고 이 영역을 제 전공과 접목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021년부터 약 1년 넘게 KOHI에서 주최한 의료인공지능 기본과정과 전문가과정을 들으면서 의료인공지능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오랜만에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면서 너무 즐거웠고, 마치 10 여년 전에 EBM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접하면서 ‘바로 이것이야!’라고 느끼며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나 다양한 세미나에서 열정적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의학, 산업공학, 컴퓨터공학, 의료정보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 100명을 선발해서 교육을 받았는데 다른 한의사 분도 2분 더 계셨어요. 의료인공지능의 기본부터 파이썬 활용법, 인공지능 모델 개발 과정까지 배우면서 마지막 5개월은 팀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저희 팀이 MIMIC-IV 데이터셋을 활용해서 만든 ‘응급실 내원환자 입퇴원 및 입원 병실 분류 모델 개발’이 생체신호•EMR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당시 제가 발표를 했었는데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의료인공지능 관련 정부 과제들에 선정되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주체 ‘인공지능 전문가 양성과정’ 팀 프로젝트 최우수상 수상 사진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졸업하고 병원에서나 학교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스스로는 열심히 잘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올 수 있어요. 자기 스스로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그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거죠. 저도 펠로우 때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당시에는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제 위치에서 생각을 주로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오면 잘 받아들이고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꼭 이야기 하고 싶어요.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잘하고 있는 거예요. 다만, 그것이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거더라고요. 이미 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면 분명 그런 일들은 나중에 구슬이 꿰어지듯 나의 커리어에 맞는 스토리가 될 거예요. 준비된 자에게는 분명히 반드시 기회가 오니까, 좌절하지 말고 겸손하게 열심히 임하는 태도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Q: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한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더라고요.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가 나한테 도움이 될지는 모르죠. 그래서 좋은 멘토를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내가 어떤 것에 가장 가치를 두는 사람인가?’를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학부생 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렇게 이야기 해주신 분이 있었어요. “승훈아, 너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이 많은게 중요해? 유명해지고 명망을 얻는 것이 중요해? 아니면 가족들과 즐기면서 사는 것이 중요해?”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돈 30%, 명예 30% 식으로 하면 안 되냐고 하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나중에 수정될 수도 있지만 우선 한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정진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어.”라는 말을 하셨어요. 그때부터는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하고, 무엇을 해야 가치 있다고 느낄까?’를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끊임없는 고민 끝에 저는 제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지 알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진지하게 많은 고민을 했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자신 있게 저의 진로나 미래를 선택할 수 있고 또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았던 거 같아요. 내가 중요하게 두는 가치에 대한 고민을 미리 해두면, 어려운 순간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선택을 계속 믿고 나아갈 수 있어요. 그래서 진로에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는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가?’를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알아가라고 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장/단기 목표가 궁금합니다! 앞으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A: 예전부터 설정해 두었던 목표가 있는데요, ‘임상과 연구를 아우르는 과학적인 한의학을 선도하여 한의계뿐만 아니라 의학의 흐름을 주도하고, 인류 건강에 기여하는 한의대 교수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러한 장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전통 한의학의 옥석을 가리고 다른 학문과의 융합을 통해서 ‘현대사회에 필요한 한의학’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단순히 연구적인 측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화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새로운 의료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그다음 단계고요.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보건의료 체계에서 제가 만든 의료 기술과 한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마지막 단계입니다.
Q: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분이 있을까요?
A: 제네바 WHO에서 근무하고 계신 안상영 박사님을 추천합니다. 예전에 대만드에서도 인터뷰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벌써 WHO에서 근무하신지 7년이 넘으셨기 때문에 지금 찾아뵈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경험과 세계보건의료체계에서 한의학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대구한의대 양재하 교수님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직 대만드에 소개되지 않은 것 같은데 기초 연구자로서 중독에 대한 침 치료 기전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시고 좋은 논문들을 많이 쓰셔서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배움의 본질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임상과 연구 두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교수님의 앞날을 앞으로도 더욱 기대하겠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승훈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D
Interviewer. 페럿, 유니콘
Editor. 페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