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 너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이야기 1.
좀 열심히 해 봐.
열심히 살라는 말이 넘쳐난다.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저걸 못한 사람은 뒤쳐지는 게 돼버린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성공했다는, 무엇을 이루었다는 사람들의 신화에는 으레 '나도 저들처럼 무엇에 저토록 필사적이었던 적이 있었나'하는 자기반성이 따라온다. 'E'를 이루기 위해서는 A와 B와 C와 D가 필요하다는 공식이 여기저기 다양한 변주곡을 펼친다.
한때 나는 시속 80km도 꽤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100km, 120km의 속도로 빠르게 사라지는 차들의 잔상에 한눈이 팔려 운전대를 잡은 손에 식은땀이 흐른다. 나도 그들처럼 엑셀을 더 밟아볼까 하는데 내 차에 남은 연료가 견딜 것 같지 않다. 양 옆에서 계속 사라지고 있는 차들이 열심히 라이트를 번쩍거리는 통에 눈이 멀기 일보 직전이다. 뭐야? 더 달릴 수 있잖아? 빨리 좀 따라잡아봐 하고 재촉하는 라이트. 나는 시속 50km에서 80km로 오기까지도 매우 고민했던 사람이다.
네 페이스를 유지해
숨이 차오른다.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토기가 올라오는 것도 같다. 이미 앞서간 사람들은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 누구누구는 벌써 '결승점'에 들어선 지 오래래. 하는 소리가 이명처럼 귀에 꽂힌다. 내 앞에 선 사람들과 내 뒤에 선 사람들이 몇 명일지 가늠도 안된다. 아니지. 앞선 사람들은 몇 명일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숨이 차오른다고 느낀 때부터도 벌써 3명이 나를 지나쳤으니까.
갑자기 환호 소리가 들린다. 중간중간 계속 가! 페이스를 유지해! 힘내! 열심히 달려! 하는 소리들이 끼어있다. 높은 무대 위에 서 있을 때는 물결처럼 밀려왔을 박수소리들이 지금은 그저 한여름 매미 떼의 울음처럼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어느새 물안개처럼 환호 소리가 흐려진다. 출발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포기해볼까? 고민이 된다. 시야에 잡히는 것은 오직 밟고 서있는 까만 길이다.
열심이지 않아도 돼.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심장을 계속해서 뛰게 만든다.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액셀을 밟게 만들고, 다리가 저릿저릿해 오지만 어떻게든 달리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열정은 막연한 걱정에 서서히 잠식당한다. 지금 달리지 않으면 뒤에서 거대한 쓰나미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불안함. 해가 쨍쨍한데도 어디서 먹구름이 내 위로 곧 비를 쏟을 거라는 선(先)공포. 열심히 하라고 해서 좀 해보려 했는데, 쉬는 것도 마다하고 계속 장작을 팬 나무꾼의 결과물만이 남았다. 이건 아닌데.
그러니 이 세상에는 열심히 해보라는 말만큼이나 열심이지 않아도 돼. 필사적이지 않아도 돼. 잘 되지 않아도 괜찮아. 실수도, 실패도 전부 좋아. 하는 말도 많았으면 좋겠다.
나랑 같은 속도로 달리는 누군가가 내 옆에 나란히 달리면서 '내가 이렇게 달려봤더니 괜찮더라, 좋았더라, 더 빨리 달리지 않아도 돼, 아니 좀 느려져도 괜찮은 거 같아'라고 말했으면. 그 말에 힘을 얻고 천천히 달리다가, 걷다가, 느려져도 보았을 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내게 맞는 속도로 달리는 것이 이렇게나 상쾌하고 기분 좋은 일임을, 조금 느려진다고 해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곧, 조만간, 얼마 내로 알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