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오빠와의 상담
오늘 아침,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지냈던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오랜 취미이자 특기인 타로상담을 위해서였다.
상담료만 준다면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지냈던 오빠라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약속했던 시간, 카페에서 만나 어색한 침묵의 시간도 잠시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상담료는 선불."
보통 상담료는 후불로 받지만 돈 떼먹고 도망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오빠한테서는 무조건 선불로 받는다. 테이블 위로 오만 원이 놓이고 난 오만 원어치 상담을 할 마음의 문을 열었다.
마주 보고 밥 먹는 것도 싫어했던 사이였던지라 정말 딱 사무적인 태도로 대했다.
새해운세.
오빠가 나에게 원했던 건 새해운세였다. 이미 점집에서 새해운세를 보고 왔다고 했기에 '이 인간이 날 간 보러 왔나?' 싶었다. 그래도 오만 원이나 받았는데 그저 읽히는 대로 해석만 하면 끝이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10분 이상 대화해본 적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빠라는 인간과 3시간을 넘게 대화할 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처음 한 시간은 올해의 계획에 대해 듣고 거기에 맞게 운이 들어오는 달을 해석해 줬다.
감정 빼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카드를 읽어줬고, 하면 할수록 오빠의 내적 고민과 열등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 자기만의 세상에서 불의에 맞서며 피 터지게 살고 있었다.
올해의 키워드 '쉬어가기'
내 해석을 다 듣고 난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소름 돋는다. 점집에서도 올해는 쉬어가는 해라고 하더라."
뭐 하나 좋을 것 없는 해였다. 정말 딱 쉬어가야 할 것 같은 카드들만 나왔다.
실질 상담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오빠와 나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생각하는 방식은 달랐다.
겪었던 내용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다.
나는 줄곧 오빠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자라는 이유로 나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늘 불만과 불평 투성이었고 부모님과 트러블이 생겼다.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도 부모님 탓을 해댔고 그걸 합당하다고 여기는 게 끔찍이도 싫었다.
그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에게도 10대 시절이 불행하고 상처로 가득했듯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난 어린 시절의 나를 받아들이고 주체적인 성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고, 오빠는 어린 시절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30대 후반인 지금도 자신의 모든 불행을 다 부모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안쓰럽다는 생각보단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고객님인데... 만원 어치는 새해운세 상담료고 사만 원어치는 심리상담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 가정이든 불행의 씨앗은 존재한다.
다른 부모의 자식으로 살아보지 않은 이상 비교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우린 꽤나 심리적으로 불행했다.
불행의 측면으로 보자면,
남아선호사상+가부장적+억압+통제+명령+비난 = 아버지
남아선호사상+방관+무관심+공감능력 결여+비난 = 어머니
우리의 가정환경은 이랬다.
오빠는 말했다.
"니는 몰랐을 수도 있는데 아빠는 나를 자기 마음대로 휘둘렀다. 공부 못한다고 위인전 베껴 쓰라 하고 젓가락질 잘해야 한다고 콩 옮기는 연습 하라 하고 못하면 때리고..."
몰랐을까? 내가?
감히 여자가 밥상머리에서 웃는다고 뺨 맞았다. 여자라서 그렇다고 무시받을까 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교과목 우수상도 받고 체육도 1등 했다. 젓가락질 못하면 밥 뺏기니까 안 시켜도 쌀알로 젓가락질 연습했다. 나는 눈치 보며 그 모든 걸 남몰래했다. 결국 우린 각자가 같은 시간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살았다.
그렇다고 우린 부모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지금 시대에서야 그게 잘못된 양육태도라는 걸 알지만, 그때는 그게 정답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본인들이 겪은 대로 우릴 양육한 거고 그게 그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들도 상처가 딱지처럼 내려앉아 그게 본래의 살처럼 느끼는 안쓰러운 분들이다.
우리가 부모에게 상처 줄 권한은 없다.
이미 지나온 시간, 바뀔 수 없는 것들, 지울 수 없는 무수한 상처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걸 내 아이에게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모른다. 다음 세대에 또 다른 양육방식이 생겨 지금의 양육방식이 잘못된 걸 수도 있고.
2시간 동안, 이상에 가까운 이야기만 늘어놨다.
내 안에 상처로 가득한 어린아이를 인정하고, 이젠 성인이 된 자신을 독립된 주체로서 돌봐야 한다는 이야기. 우리가 부모님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 우리의 부모이기 이전에 각자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이야기.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르고 삶의 방향이 다르다는 이야기. 그 세대가 추구했던 양육방식과 지금의 양육방식이 다르고 다음 세대의 양육방식이 다를 거란 이야기.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좋은 부분만 가져오면 된다고 갈무리했다.
분명 부모님에게도 좋은 점은 있다.
성실+책임감+경제적 능력 = 아버지
재테크+집중력+이해타산 = 어머니
나는 그중 책임감과 집중력을 가져왔다.
오빠는 성실과 이해타산을 가져왔다.
그 외는 각자 또 만들면 된다.
과거에 묶여있는 오빠와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같은 근본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우린 각자가 가진 가치관에 따라 달리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도 가끔은 '우리 부모님이 조금 더 현명한 부모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부모님은 본인이 정답이라고 생각한 삶을 살았고 우린 그 정답 속에서 오답을 발견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오답을 반복하기 않기 위해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야 한다.
비록 다음 세대에서 또 다른 오답을 발견해낼지도 모르겠지만.
그림자도 밟기 싫었던 오빠와의 만남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우린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저 다른 답으로 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만 원이 아니라 십만 원을 줬어야 했네."
라며 오빠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만큼 나와의 상담이 효과가 좋았다는 뜻이겠지.
사실 나도 부모님이 편하진 않다.
나와는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지신 분들이고 그걸 억지로 욱여넣으려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건 부모님 생각이고 난 아냐.'라는 권법을 쓴다.
그들의 정답이 나에겐 오답일 수 있으니 비난하기보다는 내가 생각한 정답을 위해 노력하면 되는 일이다.
오빠에게도 말했다.
오빠만의 정답을 찾으라고.
부모님의 정답이 아무리 오답이라고 화내봤자 답은 바뀌지 않는다고.
여러분들은 자신의 정답을 찾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본인의 근본을 탓하고 있나요.
땅이 탄탄하지 않으면 다른 땅으로 옮겨가면 됩니다.
그걸 우린 새로운 보금자리라고 말하죠.
그래서 결혼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라고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