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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27. 2016

<식량의 종말> 위기가 닥쳐봐야 정신 차릴까

역시 자본이, 강대국이 못됐다


얼마전 놀라운 트윗이 돌았다. 영수증 사진이다. 리트윗 4000회에 육박하는 트윗의 내용은, 매실 농사 지은 할머니 이야기. 10kg 짜리 다섯 박스를 공판장에 내놓고 수령한 금액이 300원이다. 나는 이 트윗을 보기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올 초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에게 들었다. 그는 어떻게 해도 고난 뿐인 농민을 돕는 방식을 고민한다.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되면 뭔가 돕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 그러나 농업 문제는 글로벌하게 심각하다. 어디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어쩌다보니 이 책 <식량의 종말> (The End of Food 사이트) 을 동료들과 함께 읽게 됐다.   2008년 책이지만, 큰 그림은 물론 디테일도 보여준다. 


강대국 농민은 특혜, 개발도상국 농민은 죽어난다


우리 농민들은 어떻게든 농산물 시장 지켜달라고 싸운다. 시위대에 참여했다가 물대포 직사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사태도 발생한다. 그들은 정부를 상대로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나라도 그랬다. 나는 미국의 2005년 기준 곡물 보조금이 26조원에 달하는지 처음 알았다. 수십 조원을 지원받는 무역 초강대국의 그 농민들을 상대로 경쟁력 있는 농민이 가능한가?


루스벨트 대통령은 식품 영역에서 자유시장을 고수하는 건 국가적 자살행위라 생각했단다. 농부들은 늘 과잉생산 경향을 보였고, 잉여 농산물이 넘쳤다. 지난 반세기 무역분쟁의 배경은 과잉생산. WTO라는 초국가 원조기구 아래, 미국 유럽 농산물 과잉 생산국가들은 실제 이 잉여물을 만들고 실어나르는 국제 식품회사와 함께 개발도상국에 판매할 권한을 따내기 위해 계략을 짜고 협상을 했다. 개발도상국의 농업 보조금은 금지시키면서 자기들은 보조금 혜택을 유지했다

미국의 식품 기업들은 '세계의 시장'인 중국에서 희망을 찾고자 했다. 그런데 중국은 역시 전략적 강대국. 3천만명이 굶어죽은 기아를 겪으면서도 값싼 미국 농산물을 들여오는 시장개방은 거부했다. 식량 자급을 위해 산아제한 정책을 도입하고 농업을 지원했다. (전세계가 구글, 아마존 세상인데 문을 걸어잠그고 바이두, 알리바바, 화웨이를 키워낸 중국이 새삼 다시 보인다) 중국의 2억 농가는 작은 규모지만, 한해 여러 작물을 심고 가축을 기른다. 경지당 산출량이 미국의 3/4 수준. 전세계 경작 가능지의 7%만 중국에 있지만, 전세계 옥수수와 밀의 1/5 이상, 쌀 1/3, 채소 2/5, 닭고기 1/5, 돼지고기는 절반을 생산한다. 미국 농업의 신흥시장이 되기는 커녕, 미국의 든든한 해외시장이던 한국 등 수출국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 1998년 금융위기때 IMF는 160조원 구제금융 약속했다가 한국 등 아시아 6개국이 미국 곡물 추가구입을 약속 않으면 지원 못한다고 발표했단다. 치사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중국은 모든 이슈의 핵이다. 중국인들이 미국인만큼 고기를 먹어도 지구는 망한다. 2006년 기준 전세계 곡물 20억 톤 중 1/3 이상이 동물 먹이로 쓰였다. 2070년 인구는 95억으로 정점. 육류 수요는 현재의 2~3배 전망. 그 모든 고기 생산에 쓰일 곡류를 어디서 얻을 것인가. 쇠고기 1톤당 20톤 사료 필요하다. 


과잉생산에도 불구, 기아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선 해마다 1천 만명이 영양결핍으로 죽는다..고 당시 저자는 기록한다. 굶주림과 궁핍, 질병은 중세 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이 책 발간 당시 9억명이 영양실조로 집계됐다. 사실 며칠 전 스타벅스가 남는 음식 몽땅 기부한다는 소식을 봤는데, 미국인 7명 중 1명이 굶주리고 있고, 극빈층이 수천만 명이란데 새삼 놀랐다. Starbucks will start donating 100% of its unused food to those in need

 

저비용 대량생산 중심 세계 식량경제는 대형화되고 고도로 자본화한 주체 아니면 따라갈 수 없다. 수억 명 가난한 농민들은 이러한 체제에 편입되기 어렵다. 

90년대초 브라질 커피 농사가 흉작이었다. 커피값이 인상되자 케냐가 흥했다. 아라비카 커피콩으로 한 해 2500억을 벌었다. 그러자 네슬레 등 자본은 케냐 아라비카 커피원두 보다 60% 저렴한 베트남 로부스타 커피를 택했다. 이 커피는 향이 나빴다. 자본은 나쁜 커피콩에 헤이즐 향을 더해서 문제를 해결했고, 베트남을 초저가 생산기지로 바꿨다. 97~2002년 커피값이 80% 폭락했다. 소비자가는 고작 27%만 하락했고, 2001년 스타벅스와 네슬레 이윤은 각각 41%, 20% 증가했다. 커피 생산자는 소외됐다. 상품가격 하락으로 개발도상국은 채무의 덫에 빠졌다. 커피노동자 5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아프리카 아시아 녹색혁명에는 화학비료, 살충제 회사들이 깊숙이 개입했다. 식량안정이 아니라 미국 농자재 신규시장이 됐고, 20년 간 아프리카 농부들은 단지 수확량을 '유지'하는데 질소비료 사용을 두 배로 늘려야했다. 토양 유기물은 고갈됐다. 


식품의 반란 


책 발간 당시 기준이겠지만, 매년 미국인 넷 중 한 명인 7600만명이 식중독에 걸린다. 대부분 복통 설사지만, 32만명은 입원하고. 이들중 5000~9000명이 사망한다고. 테러나 자연재해를 예방하는데 돈을 퍼부으면서 이게 뭔가. 인류를 위협하는 건 알카에다나 허리케인이 아닌 '동물계 병원균'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게 다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양계장은 바이러스 배양실이 됐고, 소는 퇴비 더미에 감금되어 사육된다. 찌끄러기 고기들을 어떻게 긁어모았길래 110g 버거 패티 1개에 소 55마리 DNA가 검출된다. 전세계 항생제 절반을 가축에 쓰고 있다. 지난 10년 간 햄버거 소송만으로 3조원이 배상됐다고 한다. 


땅을 계속 생명을 키우는데 쓰지 않고, 환금작물 재배 사이에 방치하면 땅의 질소는 질산염으로 바뀐다고 한다. 주변 환경으로 흘러가는데, 뭐든 닥치는대로 비옥하게 한다. 서양톱풀이 수로를 막고 녹조를 키우게 되고, 물고기가 죽어나간다. 이렇게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죽음지대'가 2003년 기준 세계 150곳. 질소는 산소와 결합해 아산화질소가 되기도 하는데 스모그를 유발하고 오존층을 파괴한다고. 이산화탄소보다 300배 강력한 온실가스라는 설명이 나온다. 인간이 만드는 아산화질소 70%가 농업에서 온다. 곡물재배,고기사육에 따라 증가하고 있다고. 


제초제 얘기는.. 에휴.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제초제 아트라진은 양서류를 멸종시킨다. 심장 및 폐울혈, 근육경련, 망막변성..암과도 관련이 있다고. 독일군이 1920년대 신경가스 실험한 유기인산 화합물도 쓰이는데 사용을 중단하면 캘리포니아 농산물 산업은 한해 13조 손해라나..  


유전자 변형 식품(GMO)도 여전히 불안하다. 전세계 옥수수 1/4 이상 , 콩 1/2 이상이 GMO 식품.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업계 로비로 인해 GMO 표시가 없어서 애초에 부작용을 알릴 통로가 차단됐다는 지적이다. 건강이나 환경에 관련된 잠재적 여파도 예측 못하고 있다. 


식량의 미래


농업 경쟁력이나 비료가격 증가나 농경지 감소, 살충제 유출 등의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에너지, 기후, 물이라는 세 가지 이슈가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다. 2030년까지 관개농지의 물은 20%가 더 필요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중국 동부는 기준치보다 한해 6억 톤 이상 강물을 끌어다쓰는 바람에 지하수면이 9km 낮아졌다고 한다. 지표면도 가라앉는데 베이징 고도는 7m 낮아졌다고. 100억 인구를 자연 비료 방식으로 먹이려면 현재 농지의 2~3배가 필요하다. 

깨어있는 소비자? 언제나 답은 이렇지만 값싼 식품 대신 비싸게 사먹으라는건 설득이 쉽지 않다. 고기도 덜 먹으라고 해야 한다. 육류 소비를 1/8로 줄여야 곡물생산이 정상화된다는 연구도 있다는데, 이런 이유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단'으로 채식주의자가 된 K님이 떠올랐다. 나는 고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 자라나는 청소년을 핑계로 거의 날마다 고기 반찬인데ㅠ 스테이크 보다는 야채와 같이 먹는 방식의 조리법 정도가ㅠㅠ


개혁은 위기나 재앙에서 올거란 전망이 무섭다. 조류독감, 인도나 중국의 대흉작, 북아프리카 관개 시스템의 붕괴 등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 와중에 바람직한 대안 사례가 쿠바라는 것은 아이러니. 고립되면서 탈산업화 밖에 길이 없었다. 지역 식품 소비에 주력했고, 협동조합 형태로 노동력을 할당, 1/4이 식품 산업에 기여한다. 트랙터 대신 황소를 키우고, 화학비료나 살충제 대신 친환경 통합농업 방식이라니..이게 다 독재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체 농업 정책은 어디로 가야 하는걸까. 학교나 군대 등에서는 정크푸드를 쓰지 말라고, 지역 식품시스템 구축에 기여하라고 압박한다거나. 농업 정책에 대해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굶주림은 언제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도전이었다는 말이 별로 위안은 되지 않지만, 현실적이다. 


reference>  


이 책을 동료들과 함께 읽게 된 건, Noah가 이 리뷰를 발견했기 때문ㅎ 마침 내 친구 딸기의 글이었다! 

한가지 더. 맨 위의 사진은 카길 차이나! 에서 퍼왔다. 대단한 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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