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바야흐로 여행을 강요하는 시대다.
어려서부터 멀미가 심했던 나는 현장학습이나 수학여행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대부분 여행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아름다운 광경이겠지만, 나는 쿰쿰한 토 냄새가 떠오른다.
어찌나 끔찍했던지 그 냄새가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선생님 우리 동수는 멀미가 심한데 앞자리에 좀 앉혀주세요. 그리고 이거 약소하지만."
엄마가 유치원 차 인솔 교사에게 흰 봉투를 슬쩍 내밀며 말했다. 엄마는 신학기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당부했다(선물도 빼먹지 않고).
그럼에도 나는 매일 같이 멀미를 반복했다. 토사물을 개어 올릴 때마다 눈물이 났고, 횡격막이 아팠다.
어찌어찌 의무교육 과정을 마치고 더는 고통이 따르지 않으리라 믿었다. MT 같은 건 안 가면 그만이었다.
다만, 학기가 종료되면 방학이 된다. 대학의 방학은 더 길기 마련인데 언제부터인가 그놈의 유럽여행이 유행이 되었다(유행! 유행! 유행!).
불과 얼마 전까지는 골프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늘씬한 남녀들이 초미니스커트와 고급 골프웨어를 입고 전국의 컨트리클럽을 가득 메웠다.
최근에 라운딩을 나갔을 때 대폭 시들해진 게 체감되었다.
"어째 좀 썰렁하네."
친구 성훈이 대답했다.
"이제 테니스가 유행이라더라. 인스타에 골프 사진으로 다 채웠으니, 테니스장으로 몰려가는 거겠지."
대학교의 방학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 취급을 받았다.
사회적으로도 대학생이라면 적어도 유럽여행 정도는 다녀와야 인정해 줬다. 그건 대학생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성인식이었다. 꼭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연령대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유럽 사진을 찍어서 싸이월드 사진첩에 인증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도처에서 유렵 타령을 하는 덕택에 나는 타 본 적도 없는 '그놈의 유레일 패스 노선'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 그리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에펠탑 근처의 유명한 걸인에게 일종의 친근감마저 느꼈다(진짜 부랑자일까? 구걸 마케팅일까?).
개강총회 술자리에서 내가 물었다.
"그런데 왜 꼭 유럽여행이야?"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니까!"
취기가 올라서 광대가 붉어진 태진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왜 꼭 유럽여행 도중에 생기냔 말이야."
"선진화된 문물을 보고! 아름다운 자연도 보고! 색다른 음식도 먹다 보면! 그러다 보면 문득 깨닫게 돼! 임마."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businesses, places, events and incidents are either th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used in a fictitious manner. Any resemblance to actual persons, living or dead, or actual events is pu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