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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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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Oct 12. 2022

멀미 포비아 2

별 이상한 풍조.

 구경거리가 많다는 건 알겠는데 터닝 포인트가 된다는 점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 놀러 가는데, 뭐라도 보고 느낀 점이 있기는 하겠다.

 그러나 그걸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돈도 없을뿐더러 몸도 안 따라 준단 말이다.

 우리 모두 '군대 가야 철든다'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군대 갔다 온 개차반들을 얼마나 많이 보고 살았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얼마 지나서는 힐링 열풍. 그 뒤로는 공감 열풍.

 공감 능력은 개인차가 있기 마련인데,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사회에서 매장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별 이상한 풍조가 들어와서는 우리네 할머니들께서 손주들 걱정되는 마음에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데 취직해서 시집 장가 잘 가거라.' 하는 격려조차 입에 담는 게 금기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공감 능력이 결여되었는가. 수시로 점검하게 된다.

 받아들이는 우리가 예민해진 건 아닐까. 이런 주장도 언급하기 어렵다. '천하의 죽일 놈이 될까 봐서.'


 어떻든 나는 유럽 여행은 가보질 않아 자기 발전과의 상관관계는 모르겠으되, VJ특공대를 보면서 이색적인 체험을 간접적으로 했고, 인간극장을 보면서 산골 생활의 고단함도 느껴 봤다.

 그러니까 집에서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생각과 경험의 폭을 확장해 나갔다는 것이다.

 골든 타임과도 같은 대학 시절을 그렇게 허비하고도 지금의 나는 부족한 것 없이 잘살고 있다. 단지 주변인들에게 허송세월 보낸다고 질타만 모질게 받았을 뿐이다.

 여행을 안 가서 얻은 페널티는 그게 다였다(그때 걔들은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지방으로 취업을 하면서 자취를 시작한 지 어언 5년이다.

 직장에서 알게 된 옆자리 이모 씨는 여행 마니아다. 그는 같은 부서 김모 양과 사귀는 사이인 데다, 둘 다 여행을 좋아해서 SNS에 이국적인 풍경의 사진이 가득하다.

 최근에는 장기 휴가를 써 '제주도 한 달 살기 챌린지'를 하고 오기도 했다.


 "야, 최동수 너는 왜 여행을 안 가는 겨?"

 "형, 나는 멀미가 심해서 어딜 못가."

 "야, 임마. 비행기 타면 되잖여."

 "비행기는 안 타 봐서 모르겠는데 내가 운전하는 거 아니면 다 똑같더라."

 "뭐여, 다 그걸 견디고 가는 거여. 칸쿤 가봐 끝내준다."

 "거긴 또 어디야? 거기 가면 뭐가 좋은데?"

 "멕시코에 있어. 너 같이 애인 없는 사람들 가기 딱 좋다. 밤에 클럽에서 새로운 인연이랑 쪼인하기도 좋고. 그러고 보니 너 왜 여친 안 사귀는 겨?"

 "그래, 여친 없어서 안 갈련다. 형이나 많이 가셔."

 "혼자도 괜찮아. 혼자 가면 사색하기에 딱 좋거든. 그리고 이런 책도 좀 읽어. 너 너무 꼰대가텨."

 그는 아이 한 명이 엎어져 있는 파스텔 톤의 책을 집어 들고 있다.


(3화에 계속)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businesses, places, events and incidents are either th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used in a fictitious manner. Any resemblance to actual persons, living or dead, or actual events is pu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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