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페예프와 라흐마니노프의 사월

뮌헨의 클래식 공연 3

by 뮌헨의 마리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올봄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클래식 공연 복이 터졌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심정으로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봄답지 않게 스산하던 4월 중순에 뮌헨 이자르 필하모니와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Alexander Malofeev의 협연을 들었다. 연주를 듣기 전까지는 스물두 살의 이 젊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를 나는 몰랐다. 내가 아는 건 조성진과 임윤찬뿐. 2015년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자 그의 연주를 듣기도 전에 클래식 마니아였던 독일 시부모님께 자랑스레 말한 적이 있다. 한국에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나올 것 같다고. 들어볼 게 뭐 있나, 쇼팽 콩쿠르가 인정했다는데.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조성진의 음반을 선물한 것도 같은데 지금까지 피드백을 듣지는 못했다. 임윤찬은? 그의 반클라이븐 콩쿠르 연주를 먼저 듣고 팬이 된 케이스. 그분들께 또 말했을까? 아니.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조성진에 이어 임윤찬이라니! 은근한 자부심과 함께 언젠가 그가 클래식계를 접수할 날이 것만 같은 예감 때문에. 아니라도 상관없지만.


다시 말로페예프로 돌아가자. 2001년 생으로 러시아 출신인 말로페예프는 천재적인 연주 실력으로 '제2의 키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음악을 시작한 건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2014년 열세 살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영 아티스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이후 '러시아의 피아노 신동'으로 등극했다. 어린 나이에도 테크닉과 성숙한 표현, 맑은 음색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국에는 작년 2022년 9월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10월 예술의 전당에서 협연을 했다. 당시 협연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과 3번.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코프스키 등 다른 러시아 작곡가들과 함께 그의 음악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어릴 때부터 그는 부모가 들려주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듣고 자랐다. 일명 그의 우상. 이런 '피아노 천재'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의 조국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으로 20개가 넘는 연주회가 취소되었을 때도 참혹한 전쟁으로 고통받을 이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자신의 음악이 전쟁을 끝내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바라던 이 젊은 피아니스트는 러시아를 떠나 올봄부터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


내가 그의 공연을 가기로 결심한 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때문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있나. 이 곡이 어떤 곡인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 1위에 당당히 등극한 곡이자 첫 소절만 들어도 누구나 안다는 전설의 곡이 아닌가. (뒷소절은 잘 모르겠더라만. 참, 아르헤리치 공연 때 세 곡 중 가운데 하나만 연주하길래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말로페예프 때도 그랬다. 멋도 모르고 아르헤리치의 연세가 너무 많아 배려한 줄 알았지 뭔가. 내년 2024년 뮌헨의 공연 일정을 보니 키신과 아르헤리치 공연이 있었다. 우연히 2018년 키신이 한국에서 공연할 때 표가 단 2분 만에 매진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뮌헨의 독주회 때 키신의 연주에 감동을 못 받은 나는 막귀인가. 사람들이 열광할 땐 이유가 있을 텐데.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 한 번 들어볼 생각이다.)



정장이 아닌 검은 셔츠 차림의 말로페예프.



말로페예프의 연주는 힘차고 박력이 있었다(특히 앙코르 두 곡을 칠 때 더더욱! 안타깝게도 곡명은 모른다). 그의 연주에서는 젊은 피가 느껴졌다. 라흐마니노프 2번을 직접 듣는 건 처음이라 기대가 컸는데,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이 따르는 . 뭐랄까, 그의 연주 자체는 좋았는데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쓰나미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의 질주 같은 말이다. 클알못이라 감동을 받은 걸까. 그럴 리가.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을 때 읽은 이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와는 상관이 없다. 음식도 마찬가지. 감동을 느끼는데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다. 예술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고 난 후 나머지는 관객의 몫. 임윤찬을 통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에 먼저 입문했기에 언젠가 그의 2번도 직접 들어보고 싶다. 그때는 말로페예프의 연주와 비교도 가능하게 될지.


이자르 필하모니의 첫 곡과 마지막 곡은 글라주노프 Glasunow의 <Der Fühling(봄)>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Sergej Prokofjew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들으면서도 좋은지는 잘 몰랐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케스트라가 너무 멋을 부린다고 할지 현란하다고 할지. 아마도 지휘자의 태도 때문이지 싶다. 아르헤리치와 협연했던 옥스퍼드 오케스트라와 비교했을 때 그랬다는 말이다. 무대에 선 사람이 혼자 폼 다 잡으면 보는 사람이 할 게 없다. 관객들도 보고 듣고 느낄 여지가 어야지. 다른 관객들도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모르나 옥스퍼드 오케스트라 때 보냈던 열렬한 박수나 앙코르는 없었다. 진정한 멋은 남이 보면 멋진데 정작 본인은 사실을 모를 때다. 주위에서 멋진 사람을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이유일지도.


그날의 좌석 운은 좋았다. 무려 11열 9석. 바로 앞에서 보는 듯한 기분까지는 괜찮았는데 너무 왼쪽이라 공연 때 피아니스트의 등만 보이는 단점은 있었다. 5월의 조성진 공연은 무대에서 중간쯤이니 조성진의 옆모습이라도 볼 수 있으려나. 휴게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며 로비에서 우연히 조성진 공연 안내 전광판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 말로페예프 공연 이후 시누이 바바라와 카타리나 어머니댁을 다녀오며 차 안에서 클래식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바바라가 자기도 그날 뮌헨에서 말로페예프 공연을 봤다는 게 아닌가. 친구 딸이 그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단원이라나. 세상 참 좁다. 혹시나 해서 그날 앙코르곡이 뭐였냐고 물으니 한 곡은 스크라빈이랬나 뭐랬나. 아차, 듣는 즉시 메모를 했어야 했는데. 문제다. 갈수록 기억력이 받쳐주질 않는다. 어쨌거나 말로페예프의 라흐마니노프라면 언제든 다시 들을 용의가 있다. 말로페예프의 라흐마니노프와 함께 사월이 가고 있다. 어느새 사월의 마지막 날이다.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면 뭐 하나. 오라 오월이여, 나는 준비가 되어 있다.



뮌헨의 이자르 필하모니 공연장(위). 2022.10.27 말로페예프의 예술의 전당 공연 포스터(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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