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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17. 2024

네 번째 수술

그사이 유월의 장미는 피고 또 지고

그리운 샘과 K 언니가 빅투알리엔 마켓에서 사 온 작약과 한나 할머니가 정원에서 들고 오신 장미.


지난주에 네 번째 수술을 하고 2주가 지났다. 수술한 부위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감염의 우려 때문에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을 때 릿속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산을 또 어떻게.. 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수술 후 통증은 극심했는데 시간보다 무서운 건 없는지 매일 조금씩 나아졌다 퇴보했다를 반복하고 있다. 1주일 전부터 완화병동으로 와 있다.


그사이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다. 한국에서는 가족들과 호주에서는 친구 현숙이가, 그리고 다시 부산에서 그리운 샘과 K언니가 다녀가셨다. 또 오시려는 분들이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어 방문객들을 더 받을 수 없었다. 조카의 엄마 6촌 언니, 부산의 Y언니와 친구 M과 후배 M. 사람을 만나는데도 엄청난 기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 뮌헨에서도 많은 분들이 병문안을 오고 싶어 하셨는데 일일이 만날 수가 없었다.


의사들의 소견을 참고하자면 지금의 내 상태는 별로 좋지 못하다.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소화가 잘 안 된다. 건더기 있는 건 잘 못 먹고, 먹으면 자주 체하고 올린다. 조카가 끓여준 미역국 국물에 미음 반 숟갈을 넣어 마시고 있다. 먹고 싶은 건 당연히 없고, 물만 마셔도 더부룩하다. 수술 전에는 며칠 의식이 희미해져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외과 병동 발코니 환기통에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 두 그루. 매일 저 나무 두 그루를 보며 버텼다.


드디어 손님들은 떠났다. 금은 상황이 호전되면 한국의 친구들에게 한두 명씩 전화를 걸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것 말고 중요한 일은 없어 보인다. 매일 남편과 아이와 언니와 가끔은 조카와 정다운 얘기들을 나눈다. 고마웠다는 말, 미안했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우리가 지상을 떠날 때 이보다 소중한 말이 있을까. 


아이에 대한 걱정도 많이 내려놓았다. 잘 해낼 것이다. 내 아이를 믿는다. 다시 만나면 건강하 오래오래 곁에 있어줘야지. 아이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자기 일 열심히 하기

그것으로 슬픔을 달래기

용돈 아껴 쓰기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장례식은 뮌헨에서 할 것이다. 나는 뮌헨의 마리니까. 아이를 위해 볕이 잘 드는 곳에 작은 묘지도 하나 마련할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리처럼 엄마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땐 아이가 작은 머리를 기댈 수 있게. 열 살이 아니라 열네 살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한국의 가족과 언니들과 친구들의 이름은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은 가슴에 깊이 담고 떠날 테니까. 뮌헨에도 계신다. 마지막까지 내 회복을 믿어 의심치 않고 물심양면으로 지원과 기도를 아끼지 않으신 한국슈퍼 사장님과 J언니 친구 M. 음식을 해주던 나의 조카. 병원에서 먹고 자며 내 곁을 24시간 지켜준 사랑하는 나의 언니. 마지막까지 눈물 지으면서도 웃음으로 나를 위로하던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의 딸 알리시아. 꽃보다 예쁜 나의 애기. 


그리운 샘과 K언니가 나 대신 로젠 가르텐에서 찍어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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