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키딩> 리뷰
너무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게 되면 오히려 말이 아껴질 때가 있다. 나의 빈약한 표현력과 어휘력으로는 이것의 좋음을 표현하기 부족해서. 마치 풀어버리는 순간 그 가치가 흐려질 것만 같은 마음이랄까. 내게 <키딩>은 그런 드라마다. 처음 <키딩>을 본 건 2020년이었다. 처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때부터 빠져들었다. 너무 좋아서 두 번 세 번 다시 볼 정도였지만, 왜 좋은지 풀어낸 적은 없었다. 그저 드라마에 나오는 애정하는 대사들과 장면들을 간직했을 뿐.
그리고 얼마 전, 문득 이 드라마가 다시 생각나 네 번째 관람을 했다. 이제는 이 드라마에 대한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어졌다. 내가 <키딩>을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키딩>은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제프 피클스’ (짐 캐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 세계적으로 리메이크될 만큼 히트 친 프로그램이고, 모든 미국의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컸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프로그램의 진행자 ‘제프 피클스’는 모든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국민 MC다. 그의 존재는 때때로 종교적인 인물처럼 추앙받기까지 한다. 제프가 이야기하는 인형극장의 세계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우며, 도덕적이다.
그러나 ‘피클스 아저씨’가 아닌 현실의 ‘제프 피키릴로’는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고, 아내와는 이혼 위기를 겪고 있으며, 남은 아들과의 관계는 위태롭다. 그가 사는 현실은 동화 같은 프로그램과 달리 위태롭고, 불완전하며, 파괴적이다. 제프는 이제 이 두 개의 삶을 하나로 합치고 싶어 한다. 프로그램에서 ‘죽음’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어차피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환상적인 동화가 아니라, 빌어먹을 잔혹 동화니까.
Nothing is permanent, not even trees.
Everything changes
내가 생각하는 이 드라마의 주제는 ‘흘러감’이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주변의 관계도, 환경도, 그리고 나 자신마저도.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 배우가 외쳤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가 갑작스레 떠오르는데… 사랑도 변한다.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도 끊임없이 변한다. 때로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비극이 찾아오기도 한다.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고 싶지만, 내 손에는 한 줌 붙들어지는 것들이 없을 때. 마음이 괴로워진다.
<키딩>에서도 많은 것들이 계속해서 변한다. 제프도 과거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언제나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을 잃었고, 이로 인해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으며, 언제나 돌아갈 수 있었던 ‘집’도 이제 그의 것이 아니게 됐다. 집안의 단단한 기둥이었던 아버지 역시 뇌졸증으로 인해 치매에 걸리며 더 이상 이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받아들이기 힘든 이 변화 앞에서, <키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거슬러 거슬러, 문제가 발생했던 그 지점까지 올라갈 수만 있다면.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이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변화가 내게 힘들고 버거워 차라리 판타지 같은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
살아남은 제프의 아들 윌은 책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미션을 수행한다. 어쩌면 바보같이 보이는 윌의 행동 이면에는, 내가 안전벨트를 풀러 쌍둥이 형제가 죽게 됐다는 죄책감이 들어있다. 매사 아빠에게 반항하지만 결국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길 바라는 어린아이 일 뿐이다.
제프 역시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시계를 한 시간 전으로 되돌려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속에는 자신에게 거는 주문도 담겨 있다.
과연 시간을 되돌린다면,
지금 내가 겪는 이 불행을 막을 수 있을까?
끔찍한 변화를 막아설 수 있을까?
Light? Light is in love with the dark.
하지만 우리는 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키딩>은 시간을 되돌리려는 인물들의 노력을 통해 변화와 아픔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이별과 죽음, 그리고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허상으로 가득 찬, 일그러진 피클 인형 마을이 되어버릴 것이다. 거슬러 거슬러 나를 아프게 한 그 변화의 근원을 마주해야 변화한 ‘지금’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때로 망가지고, 슬퍼하고, 어둠 속을 걸어가야 하는 건 필연적이다. 우리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그 고통의 이름을 알 필요가 있다.
Divorce is the best
변화 그 자체가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죽은 아들 필의 심장과 눈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변화에 굴복해 많은 것을 상실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무너진 과거의 잔해들을 꼭 안아주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자. 때로는 그게 최선이니까.
나는 <키딩>에서 치매에 걸린 제프의 부모님이 요양원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이었던 1960년대로 ‘시간이 되돌려진’ 요양원에서는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곳에는 젊은 시절 자녀를 두고 홀로 행복을 찾아 떠났던 제프의 엄마도 있다. 그녀는 여전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야속하게 느껴지지만, 후에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다시 만난 제프의 아빠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던 버스가 결국 도착하고, 그들은 그곳에 올라탄다. 텅 비어버린 정류장을 보며, 우리가 물리적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깨진 도자기를 다시 붙이는 킨츠키 예술처럼. 우리는 과거의 조각들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키딩 시리즈를 보면서 많이 울고 웃었다. 내가 키딩을 그렇게 좋아했던 건 드라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에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키딩>의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아서, 어딘가 아픈 구석이 있어서. 그래서 더 마음이 갔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을 나는 사랑한다. 어둡고 불온전한 이 인형극은 우리 내면 속에 남아있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