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정한 바다
그곳의 바다는 언제나 품이 넓었다. 동해의 매력일까. 물빛은 감탄이 나올 만큼 맑았으며, 늘 고요했다. 저녁이 되면 시장에서 사 온 것들로 음식을 만들거나 근처 어시장에서 삶은 문어 같은 걸 포장해 술을 마셨다. 아침엔 해변을 따라서 오래 걸어 느긋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에 갔다. 바닷가 마을은 늘 다정했다. 담벼락은 나지막하고, 마당엔 물고기들이 꾸덕꾸덕 말라갔다. 지붕은 자주 페인트칠을 하는 듯 선명했다. 그래서 동네에 사람이 드문드문 있어도 쓸쓸하지 않았다. 읍내엔 주말이면 관광버스로 들어찼다. 평일엔 한적해서 어디를 가든 반겨주었다. 작은 미용실 원장님과 친구가 되었다. 이모가 있었다면 이런 분일까. 동네 맛집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함께 밤 산책을 했다.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람에 대한 욕심이 덜어졌다. 결이 맞지 않으면 어느 순간 멀어질 거라고. 기다란 길을 나란히 걸었고, 이야기는 아주 조금씩 스며들었다.
어느 여름, 외딴 도시에 한 달 정도 살 집을 구했다. 작은 캐리어에 옷 몇 벌과 책 두어 권, 노트북을 챙겨 도망가듯 주문진으로 갔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래 걸어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책은 펼쳐보지 않았고, 휴대폰도 잘 들여다보지 않았다. 하루하루 풍경만 성실하게 넘겼다. 매일 걸었고, 가끔 친구들이 와줬다. 온전히 외롭지 않았지만, 책의 모서리에 앉아 있는 듯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주문진이란 도시는 익숙해져 있었다. 집 다음 많이 머무른 곳이었다. 힘이 들 때면 그곳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오래된 친구처럼 마음을 둘 곳이 있다는 의미였다. 정말 힘들면 가야지,라고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나의 다정한 도시, 주문진. 아직은 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럴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도시를 이따금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