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연우 Sep 18. 2024

차를 산 날, 남의 집 불낼뻔한 사연

신고식을 치르다 

여자혼자 인천 가서 중고차 구입한 날 글의 다음 편이다. 

혼자 인천에 가서 중고차를 계약했다. 

처음 내 차를 모는 거라 긴장되어 바로 집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금요일 오후라 도로가 이미 막히기 시작했다.


우회전해야 할 곳을 놓치자 예상 도착 시각이 훌쩍 늘었다. 

'에라 모르겠다 인천까지 온 김에 바다구경이나 하고 가자'라고 생각하고 

근처 공원을 찍고 달리기 시작했다.


인천의 어떤 유명한 공원이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으로 내 차를 주차하고, 기쁜 마음에 사진을 찍어보았다. 


공원을 거닐며 '이왕 온 김에 에어비앤비에서 하룻밤 자고 가자'는 생각이 들어,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그러다 영종도 쪽에 나름 바다가 보이는 에어비앤비들이 

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중 한 곳을 예약했는데,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오피스텔 건물의 지하에 주차하고, 스스로 감격스러워서 찍은 사진이다. 

에어비앤비에 들어섰다. 영종도 바닷가 근처에 있는 오션뷰 오피스텔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묵은 방은 14층정도였다.

원룸형 오피스텔이지만, 창밖으로 펼쳐진 오션뷰 덕에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오션뷰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야외테라스도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었다.

테라스에서는 배가 돌아다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밤에는 불꽃을 터트리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모든 게 너무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저녁을 먹고 오션뷰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멍 때리면서 

맥주 한 캔을 할 생각에 행복했다. 

그 일이 이 주방에서 발생하기 전까지는.

문제는 따뜻한 차 한잔이 마시고 싶어 물을 끓이려 한 내 행동에서 시작됐다. 

주방 밑 서랍을 열어보니 주전자처럼 생긴 물건이 있었다. 

별생각 없이 그걸 주전자라 믿었다. 

밑에 받침대가 없어서 진짜 주전자 인지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받침대는 옆에 놓여 있었다)


그 주전자를 인덕션 위에 올려놓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시 테라스에서 오션뷰를 즐기고 있던 중, 

이상한 냄새와 연기가 느껴졌다.  

주방을 돌아보니, 인덕션 위의 주전자가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전기커피포트는 정신없는 상황이라 찍지 못했다. AI이미지로 대체한다.


놀라서 물을 부어 불은 껐지만, 문제는 연기였다.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며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오피스텔 천장에 달린 연기감지기가 깜빡이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현관문과 모든 창문을 열어 연기를 빼내고 있었고

인덕션 위에 녹아 붙은 전기포트 잔해를 떼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때 험악한 표정의 경비 아저씨가 나타났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화재경보기가 울려서 올라왔다고 했다.

나는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아저씨는 이미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여기 에어비앤비가 많다며 이런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한바탕 짜증을 내셨다. 

어느 에어비앤비냐고 물었지만 내가 망설이며 대답하지 않자, 

이미 다 알고 있다며 밑으로 내려가셨다.


곧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며 사과했고, 주전자는 내가 변상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덕션에 녹아 붙은 주전자의 자국이었는데, 내가 책임지고 다 닦아놓겠다고 했다.


혼자 열심히 네이버를 검색하던 중 치약이 효과적이라는 말을 보고, 

치약으로 닦아보고 녹여도 봤지만, 잘 지워지지 않았다.



위에서 두 번째 동그라미가 화재사건이 있던 곳인데, 열심히 닦았는데도 아직 저렇게 묻어있었다. 


안 되겠어서 엄마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부모님한테 중고차 살 거라고 말도 안 했는데, 

전화한 김에 이야기했다. 


엄마는 차를 왜 사냐며 결혼 자금을 모아야 하지 않느냐고 잔소리부터 했다.

“엄마, 내가 돈 천만 원 있고 없고 가 내 결혼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진 않아,”라고 했더니, 

엄마도 스스로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아빠는 서울에 사는데 차가 왜 필요하냐며 잔소리를 이어갔다.


나는 화제를 돌려 인덕션 사건을 설명했다. 

그러자 "전기포트를 인덕션에 올려놓을 생각을 어떻게 했냐"며 

엄마와 아빠의 폭풍 잔소리가 몇 분간 이어졌다. 

잔소리 후에는 인덕션을 어떻게 원상 복구할지 가족회의가 전화기 너머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엄마가 다이소에 가면 스크래퍼라는 게 파는데 

이걸로 인덕션에 묻는 전기포트 녹은 자국을 벗겨보라고 했다. 


근처에 가까운 거리에 다이소가 있었고, 

사진을 찍어 이게 맞냐고 확인한 후 구입을 했다. 

스크래퍼로 열심히 문질렀고, 오 정말 벗겨졌다. 

더 열심히 문질렀다. 

본래 있던 인덕션보다 더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다. 

의 동그라미는 본래 인덕션의 모습이고 

아래에 있는 동그라미가 사건이 있었던 인덕션이다. 

깨끗해진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시원하게 청소된 거 같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드디어 테라스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야경 속 오션뷰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여유롭게 테라스를 즐기려던 계획은 무산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해결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엄마는 똑똑하다는 생각도 함께.


그리고 다음엔 무언가를 불 위에 올려놓기 전에 

제대로 확인하고 행동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침에 일어나 편의점에서 사둔 미역국 세트와 김치를 꺼내서 식사를 했다.

영종도 근처의 카페에 가서 푸르른 뷰를 보며 책을 읽고 집에 돌아왔다.


중고차 구입한 날 신고식 제대로 치른 날이었던 거 같다. 

물론 그 후로도 자잘한 사건들이 일어나 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말이다. 

초보운전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여자 혼자 인천가서 중고차 구입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