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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Sep 16. 2024

인투 더 파이어


인투 더 파이어


넷플릭스 2부작 다큐멘터리.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롭고, 통렬하다. 어쩌면 모든 사소한 일들이 우연으로 엮이면서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전모는 마치 하나의 '우주'를 생성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규모는 작지만, 파편으로 흩어진 인물과 사건들이 보이지 않는 중력에 이끌려 모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모인 인물과 사건은 스스로 응집하며 열을 발산하고, 불과 빛 에너지를 방출한다.


전체 사건의 스모킹 건을 당긴 사람은 '캐시'다. 그는 어느 날 공문서 하나를 우편으로 받는다. 거기에는 오래 전 비밀 서약으로 입양 보낸 딸이 실종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캐시는 다른 자녀 없이 남편과 둘이 오붓하게 살아가는데, 그에게는 10대 이미 딸을 출산하고, 그  딸이 9개월 때 입양을 보낸 사실이 있었다. 이렇게 캐시의 과거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점차 수 많은 이야기를 폭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사람 가운데 멋진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있다는 오동진 평론가의 글을 보자마자 곧바로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다. 


평범한 가정으로 입양된 줄 알았던 캐시의 딸(안드레아)은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의 양부 데니스 보먼에게 살해당한다. 이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무려 35년의 세월이 흘렀고, 결정적 제보자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유전계보학'이라는 과학 기술이 핵심으로 작용했다.


데니스 보먼은 여러 건의 성폭행과 살인을 저지른 연쇄 성범죄자인데, 그가 1970년대와 80년대 남긴 유전자 흔적은 그때의 기술로는 분석할 수 없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최근에야 유전자 분석을 정밀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가운데 '유전계보학'의 정보를 통해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고, 범인이 남긴 유전자 흔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인물(용의자)은 모두 43명이었다.


경찰은 이들 모두를 조사할 계획이었지만, 매우 운 좋게 형사들이 모인 회의에서 범죄가 벌이진 두 장소에 같이 있던 남성이 딱 한 사람, 데니스 보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경찰은 데니스 보먼을 범인으로 확정한다.


피해자의 가족 입장에서 보면, 범인인 데니스 보먼은 싸이코패스이며, 사악하고, 악랄한 성범죄자, 살인자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데니스 보먼은 합당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우리가 범죄자 데니스 보먼에 대해 조금 더 알아야 할 건, 그가 어릴 때부터 부모 특히 엄마에게 매우 심하게 학대당하며 자랐다는 점이다. 흔히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영화에서도 범죄자-대부분 남성이다-의 과거를 보면, 더 할 수 없이 불행하고, 끔찍한 일을 겪으면서 정신적, 정서적 트라우마가 쌓여 있음을 보게 되는데, 모든 싸이코패스나 연쇄살인마가 그런 건 아니지만, 데니스 보먼도 어릴 때부터 부모의 학대로 이미 그의 정신적, 정서적 상태가 매우 불안정했던 걸로 보인다.


그렇다고 데니스 보먼에게 일말의 동정을 할 이유는 없지만, 아이는 가정(부모)도 키우지만, 사회가 키운다는 말이 맞다는 말이다. 자기 자식이라고 끼고 도는 부모도 문제고,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는 더 말할 것도 없는데, 사회가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균형을 갖도록 적절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캐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입양 보낸 딸(안드레아)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곧바로 페이스북에 딸의 실종에 관한 페이지를 만들어 알리고, 안드레아를 아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했으며, 그들의 증언을 모아 안드레아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안드레아를 아는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안드레아가 자발적으로 가출했다고 하지만, 이후 어디에서도 안드레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이후 안드레아의 양부모 데니스 보먼이 과거 성폭행 범죄로 감옥에 갔다 나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또 데니스 보먼에게 납치되어 하마터면 성폭행 당하고 살해되었을 수도 있던 메타를 만나면서, 캐시는 안드레아가 양아버지 데니스 보먼에게 살해당했다고 확신한다.


더 놀라운 건, 경찰이 데니스 보먼에 대해 끈질기게 추적하며 증거를 모으고, 사람들이 전혀 모르던 별개의 사건 용의자로 데니스 보먼을 체포하기 전까지, 줄기차게 죽은 안드레아의 시신이 데니스 보먼의 뒷마당에 묻혀 있으며, 그 위치까지 정확하게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어떤 논리로도 설명하기 어려운데, 캐시의 주장이 처음부터 무리였으며, 그가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캐시는 몇 가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접근했고, 자신의 추론을 데니스 보먼에게 공격적으로 공개했다. 캐시는 데니스 보먼에게 직접 전화를 하건, 편지를 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서, 데니스 보먼이 자신의 딸이자 데니스 보먼의 양녀 안드레아를 살해해서 뒷마당에 묻었다고 주장했다.


이건 자칫 명예훼손과 스토킹 범죄로 기소될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캐시는 끝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데니스 보먼은 결국 스스로 경찰을 찾아가 캐시의 주장이 부당하며, 그가 괴롭히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때 경찰은 데니스 보먼이 마신 물컵을 회수해 그의 유전자를 확인하고, 그가 과거 저지른 범죄에서 남긴 유전자와 대조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실을 밝힌다. 데니스 보먼은 자기도 모르게 유전자로 자백한 것이다.


결국 안드레아의 시신은 캐시가 말한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 데니스 보먼의 집 뒷마당, 드럼통으로 묻은 땅이 흔적을 남긴 바로 그 자리였다. 기막힌 현실이지만,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아주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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