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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by 백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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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멋진 영화. 오랜만에 훌륭한 영화를 봤다. 그것도 개봉하는 날. 별 네 개 반.

사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데이비드 메켄지는 그리 유명한 감독은 아니다. 이 영화는 그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테일러 쉐리단은 바로 전작이 '시카리오'였다. 현재 헐리우드에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사람의 작품이다.

훌륭한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뛰어난 배우들의 조합은 의외로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어서, 이렇게 멋진 영화가 나오기 드문 것이다.

이 영화에 관해서는 이미 이동진 평론가가 진행하는 '무비썸'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참고해도 되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점도 비슷했다.


이 영화의 제목은 한국에서 'Lost in Dust'이지만 원래 제목은 'Hell or High Water'다. 한국 개봉 제목도 잘 지었고, 원래 제목도 좋다. 한국 개봉 제목은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의 가사 일부다.

영화음악 역시 훌륭하다. 미국 남부 텍사스와 어울리는 컨트리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나는 이 영화를 메가박스의 M2관에서 봤는데, 메가박스의 다른 곳보다 사운드 디자인이 훌륭한 곳이어서 음악의 감동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어떤 곳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동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넓은 화면과 훌륭한 사운드가 있는 곳에서 보면, 같은 영화라도 느낌이 달라진다.


영화의 무대는 미국 남부 텍사스다. 황량하게 보이는 드넓은 땅과 하늘, 바람과 구름, 사막처럼 보이는 황무지 등이 텍사스 외진 지역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 역시 황량하고 쓸쓸하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는 영화가 비극적이고 슬플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전에 어떤 정보도 없이 영화를 봤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첫 장면의 황량함은 곧이어 복면을 쓴 두 남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긴장이 고조된다. 텍사스의 지역은행을 터는 두 명의 은행강도. 그리고 그들이 가져간 돈은 몇 군데의 은행에서 고작 7천 달러 정도의 잔돈.

은행에서도, FBI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좀도둑 같은 이들의 범행은 그러나 지역 보안관 마커스 해밀턴이 뒤를 쫓기 시작하면서 추격전으로 바뀐다. 두 명의 범인은 형제였고, 범죄의 증거는 완벽하게 처리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인다.


이 영화는 남부 텍사스를 무대로, 이제는 사라진 '은행강도'라는 고전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카우보이 형제의 이야기지만, 영화의 본질은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형제가 은행을 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석유자본과 그 앞잡이 은행의 농간 때문이었다. 형제가 살고 있는 농장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석유자본은 은행을 앞세워 그 농장을 헐값에 매입하려 한다.

은행에서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대출받았고, 그 돈을 갚지 못하면 농장은 은행의 손을 거쳐 석유자본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두 명의 은행강도가 '나쁜놈'인줄 알았던 관객은 뒤로 가면서 형제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가난한 형제가 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이 유일하게 은행을 터는 일이라는 것을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형제가 행동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형식적으로는 은행강도 형제와 그 뒤를 쫓는 보안관의 이야기다. 영화는 우울하고 쓸쓸하면서도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는 장면들도 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장면도 나온다.


서서히 몰락하고 있는 미국의 중산층의 피폐한 삶과 미국의 좋았던 시기로 알려진 '서부개척시기'를 맞물려 놓고, 가난으로 내몰린 카우보이가 총을 들고 은행을 터는 이야기를 그린 것은 미국 역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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