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
지금부터 10년 전, 유럽의 몇 나라를 여행할 때였다. 파리에서 이틀을 묵고 아침에 베르샤유에 들러 넓은 궁전-프랑스에서 왜 혁명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을 둘러보고 남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드골 공항의 허츠 렌터카에서 벤츠 해치백을 빌려 내가 운전하고 다녔는데, 패키지나 단체 여행으로는 갈 수 없는 곳만 다녔다. 베르사유를 벗어나 남쪽으로 달리자 드넓은 평원이 이어졌고, 도로 옆으로 잘 가꾼 밭이 푸르게 펼쳐졌다. 도로를 달리는 차도 많지 않고, 도로를 따라오는 전신주도 예술적 감각으로 디자인 된 것이어서 우리(가족)는 프랑스가 예술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는 나라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저녁 전까지 마르세유를 지나 예약해 둔 캠핑장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오를레앙까지 지평선 같은 완만한 언덕을 보며 달리다 주도로에서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었다. 길은 편도 1차선으로, 우리나라의 시골 국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도를 보며 남쪽을 향해 국도를 달리다 점심을 먹으려고 길 옆에 식당이 보이면 멈추기로 했다.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들어서자 오래된 건물이 보였고, 몇 채의 집이 드문 드문 길 옆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 가게인듯 해서 들어갔다.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낡은 느낌은 없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묵직한 목조 건물의 흔적과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는 햄과 소시지를 보니 이 가게가 꽤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음을 느꼈는데, 건물 한쪽에 건물의 나이가 200년이 훨씬 넘었다는 표식이 있었다. 문화재급 건물인 셈이다. 우리는 기념으로 소시지를 산 다음,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지만, 식당 안에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밥을 먹으로 왔으리라.
우리가 들어가자 그들은 조금 신기한 눈으로 우리 가족을 바라봤다. 이 근처는 관광지도 없고, 관광객은 더더욱 없는 곳이어서 검은 머리를 한 동양인을 드물게 봐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송아지 갈비살과 병아리콩 스프를 주문했다. 음식은 약간 짠 편이었고, 조금 느끼했다. 그래도 프랑스의 시골사람들이 먹는 평범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밥을 먹고, 레스토랑에서 나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평탄했던 도로가 어느새 가파른 내리막길로 바뀌었다. 우리가 왔던 길은 평탄했지만 높은 지형이었고, 남쪽으로 내리막 산길이 좁고 가파르게 이어진 것이다. 지나는 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조금 당황했고,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 내려가니 산 아래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고, 그곳에서 잠깐 쉬며 산 아래 풍경을 바라보고, 우리가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작은 도시까지 가려면 한 시간 이상 산길을 따라 내려가야 했는데, 자동차에는 연료가 많지 않았다.
산길을 내려가면 주유소가 나올 거라는 기대와 믿음으로 조심하며 산길을 내려갔다. 가을이 깊어가는 프랑스 산골은 숲이 우거지지 않았지만 구불거리는 도로와 키작은 관목이 산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 연료가 없다는 경고등이 켜지자 마음이 초조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산 아래까지라도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도로는 더 좁아지고, 거의 외길로 바뀌었다. 이정표도, 집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달리면서,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가파른 경사와 구불거리는 도로를 지나자 완만한 산길이 나왔고, 집이 드물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집이 보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우리는 작은 마을에 들어서 길 옆에 있는 카페 근처에 차를 세웠다. 아무래도 이 마을에 사는 주민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카페 앞에는 노인 셋이 탁자를 둘러싸고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봉주~'
내가 가볍게 웃으며 인사하자 노인들도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봉주~'
나는 영어로 물었다.
'혹시 영어 하시나요?'
그러자 한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금'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나는 웃었다.
'자동차 연료가 떨어졌어요. 기름이 필요해요.'
내가 말하자, 노인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고, 프랑스 말로 두 노인에게 통역을 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프랑스 말로 영어를 하는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영어를 하는 노인은 나를 보며 말했다.
'이 소년을 따라가' 노인은 친구인 노인을 '소년(boy)'이라고 했다. 그이의 애칭이거나, 오래된 친구이라서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닐까.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앞장 선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노인은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나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몰랐으므로 노인과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노인의 집이 있었다. 노인은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노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이 사는 집은 2층 건물로 외벽은 돌을 깎아 붙였거나 쌓은 집이었다. 내부는 목재였는데, 대들보와 서까래가 드러난 오래된 집이었다. 노인은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안으로 사라졌다. 거실에는 주방으로 통하는 아치 형태의 문이 왼쪽으로 있었고, 긴 소파 두 개가 ㄱ자 형태로 놓여 있었다. 벽에는 사진과 오래된 액자, 작은 책장, 구석에 낡은 피아노가 보였다. 그리고 바로 이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이 노인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다. 잠시 뒤에 노인이 작은 통을 들고 나왔고, 나는 한두마디 아는 프랑스어로 노인에게 물었다.
'무슈, 저 그림, 할아버지가 그린 거에요?'
나는 노인을 보며,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고, 노인에게 붓칠하는 흉내를 내보였다.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인은 내게 휘발유가 담긴 작은 통을 건네주었다. 나는 휘발유보다 벽에 걸린 그림 때문에 마음이 초조했다. 대체 누가 그린 그림이란 말인가.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없어 답답했으나 일단 휘발유 값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무슈, 이 휘발유 얼마에요?'
나는 지갑을 꺼내며 노인을 보고 영어로 물었다.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돈을 받지 않겠노라는 의사를 보였다. 나는 '메르시'를 연발하며 노인을 따라 카페로 돌아왔다. 그리고 영어를 하는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제가 술 한 잔 사도 되나요?'
노인들은 좋아했다. 노인은 카페 안쪽에 대고 소리를 질러 카페 주인에게 와인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잠시 뒤, 50대 후반의 머리가 벗겨진 카페 주인이 와인 한 병과 와인잔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27유로-노인들과 와인을 한 잔 마셨다. 아내와 아이는 마을을 걸어다니며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영어를 하는 노인에게 그림에 대해 물었다.
'저 할아버지 집에 있는 그림에 관해 알고 계신가요?'
그러자 노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 휘발유를 준 노인을 바라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그림, 히틀러, 저 노인, 독일사람, 히틀러 친구, 오스트리아 미술학교, 히틀러, 선물'
노인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나도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주로 단어를 중심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노인의 말을 내 의도대로 해석하면, 내게 휘발유를 준 노인은 독일사람인데, 지금은 프랑스에서 살고, 노인의 친구가 히틀러라는 말이었다. 히틀러가 미술학교에 시험을 쳐서 떨어진 건 알고 있지만, 노인은 오스트리아에서 미술학교에 다녔거나 그와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 그림이 히틀러가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 정말일까. 어떤 객관적 증거는 있는 걸까.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그 그림을 내가 구입하고 싶어요.'
노인은 그림의 주인인 노인에게 통역했다. 노인은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렇게 히틀러가 1930년대 그린 '붉은 눈'이라는 작품이 내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