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건우 Jun 02. 2019

심해수

-오래된 이야기에 새로운 형식을 입히다

심해수

-오래된 이야기에 새로운 형식을 입히다     


아포칼립스는 현실이 되는 순간 세상의 종말이자 멸망이기 때문에, 그것이 미래의 언제라는 예측 불가능함과 미지의 확률이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인류에게 처음, 최초가 있었듯이, 최후, 종말, 멸망의 이야기가 발생하는 것은 필연이다. 다만 인류의 최초가 신화와 전설, 설화였다면 인류의 종말은 인류가 이룬 과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다르다. 즉 시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그것은 인류의 초기가 미개했기 때문이었고-종말은 인류의 지성으로 예측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 2천 년 전에도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 예언서는 존재했고,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고 불칼과 화염과 죽음이 땅 위에 가득할 거라고 했다. 고대 사람들에게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자연재해였다. 그들이 들판에서 야생동물과 사투를 벌이던 시기를 지나고, 집단으로 일정한 곳에 움막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야생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와 외부의 위협으로는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지만, 지진, 화산폭발, 용암분출, 비, 바람, 눈, 천둥과 번개 같은 자연재해는 자신들이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속했다. 인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떠올렸다.

고대의 아포칼립스와 현대의 아포칼립스는 그래서 근본에서 다르다. 고대에서 바라보는 종말이 이제는 낭만적인 동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대의 종말이 그리는 세계는 과학적 논리에 바탕한 추론 가능한 세계이기에, 낭만의 요소가 배제된 잔혹한 리얼리즘일 수밖에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처음 만든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에서도 인류의 종말로 세계는 바다 위에 겨우 떠다니는 섬만 남게 된다. ‘코난’에서 지구의 바다화는 인류의 전쟁이 원인이었다. 초자력무기는 대륙을 바다 아래로 가라앉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무기인데, 대륙이 가라앉으면서 발생한 해일로 땅 위에 있던 건물과 사람들도 모두 물속으로 쓸려 내려갔다.     

[심해수]는 [미래소년 코난]의 하드보일드 버전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라고 볼 수 있다. ‘코난’이 그림부터 이야기 전개가 동화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라면 ‘심해수’는 극사실 묘사를 통해 이 이야기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심해수’에서 죽음은 일상이다. ‘유니온’에 사는 ‘선민’(이 단어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는 ‘배에 탄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선택된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은 그나마 생존의 위협에서 안전한 편이지만, 난민-작은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언제 심해수에게 잡아먹힐지 알 수 없어 늘 공포에 시달린다.

‘심해수’에서 인간을 공격하는 심해수는 몸집이 매우 거대한데, 현재 심해에서 거대 생물을 발견하거나, 사체가 드물게 바다 위나 해안으로 떠오른 사진을 볼 때, 거대 심해어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과학적 상식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심해어들이 왜 바다 위로 올라와 인간을 공격하는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심해어는 여러 종이 보이는데, 게, 뱀, 아귀와 비슷하지만 몸집은 몇십, 몇백배 큰 생물이 인간을 공격한다. 만화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이들 거대 심해 생물의 등장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돌연변이 가능성과 외계에서 유입된 물질에서 돌연변이의 생성을 떠올릴 수 있다. 

비슷한 아포칼립스 만화인 [아들의 땅-지피]에서도 지구의 표면은 대부분 물에 잠긴다. 하지만 ‘아들의 땅’에서는 문명을 일으키려는 시도보다는, 인류의 지식과 문명의 발달이 결국 인류의 종말을 일으켰다는 자각으로, 인류가 미개의 단계에 놓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이 강한 내용이다. 생존하려면 동물의 수준으로 야생성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은, 인류가 문명을 잃어버렸을 때 당장 맞닥뜨리는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두 아들은 글자로 대표하는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과 우정, 연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괴물-봉준호]에서도 괴물의 출현은 미군이 버린 독극물에서 비롯한 것임을 암시한다. 인류의 종말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때, 외계의 간섭보다는 내재적 원인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는데, 핵폭탄, 핵발전소와 같은 불가역 반응은 물론이고, 지진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도미노 붕괴현상,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도 인류 종말의 가능성을 높이는 현상들이다.     

시간적으로, 심해어의 출현은 인류가 자연재해-만화에서 지구는 외계에서 날아온 얼음 유성으로 인해 멸망한다-로 지구가 물에 잠기게 되면서 나타나는데, 그 기간이 불과 100년이다. 그렇다면 100년 사이에 상상할 수 없는 진화적 돌연변이가 일어났다는 뜻인데, 그러려면 매우 극적인 물리적 환경변화가 발생해야 한다.

내재적 환경오염으로 인한 돌연변이는 지구가 물속에 잠기기 전까지 세계 여러나라에서 운용하고 있는 핵발전소와 핵무기, 플루토늄과 각종 독극물, 화학물질이 땅 위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대륙 전체가 물에 잠기면서, 그 위에 남아 있던 인류가 만든 모든 독극물과 화학물질, 방사능물질이 그대로 물속에 녹아들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물고기들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며 급격한 돌연변이를 일으켰다고 이해할 수 있다.

외부에서 유입된 돌연변이 가설은, 우주를 떠돌던 얼음 유성이 태양계 밖을 떠돌다 우연히 태양계 내부로 들어오면서 중력에 의해 태양 가까이 다가오다 달과 충돌하고, 그 파편이 지구로 떨어지면서 대기권으로 진입한 얼음 파편이 녹아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 속에 들어 있던 외계의 물질 속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두 가지 가설로 심해어의 돌연변이를 설명한다해도 왜 하필이면 심해어들만 극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가에 대한 설명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가능한 설명은, 유해물질과 외부의 바이러스가 바다의 가장 아래쪽,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심해 생물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다.     

‘심해수’는 고전적 의미에서 말하는 ‘영웅설화’의 구조와 서사를 답습한다. 영웅설화의 구조는 1)고귀한 혈통, 2)출생의 비밀, 3)비범한 능력, 4)어려서 고아, 5)죽을 고비를 넘기고 은인을 만남, 6)성장하여 다시 위험에 빠짐, 7)위기를 극복하고 영웅으로 거듭남이 핵심인데, ‘심해수’의 주인공 보타는 이 영웅설화 구조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인물이다.

‘심해수’가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는 미래의 이야기지만, 그 구조는 오래된 이야기에서 가져왔고, 우리가 만든 수많은 이야기의 서사 구조는 영웅 설화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야기’를 소비하는 대중-수천년 전과 지금의 대중 모두-의 심리적 기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영웅 서사는 대중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몇천년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현상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대중의 영웅 서사에 관한 욕망이 가장 극적이고, 격렬하게 투사된 것이 신의 존재다. 영웅은 신을 대신하거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존재로 투사되었으며, 대중의 욕망을 대리하는 존재로 작동한다.

‘심해수’에서 보타와 리타의 아빠는 작은배를 타고 바다 위를 떠돌며 두 아이를 돌보는 전천후 영웅이다. 적어도 보타와 리타의 입장에서는. 엄마에 관한 기억이 없는 두 아이는, 아버지가 엄마 역할까지 해야하는 한부모 가정에서도 결핍을 겪지 않고 자란다. 그 힘은 전적으로 아버지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보타의 가족이 탄 배가 심해어의 공격을 받고,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아버지는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위대한 전사, 작살꾼의 능력을 발휘한다. 보타는 아버지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본능으로 느끼지만, 정확한 실체를 알지 못한 상태로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고아가 된 보타와 리타는 바다 위로 솟은 작은 빌딩에서 살아가려 하지만, 심해어에게 끊임없이 공격당하면서 위험한 상황에 놓이고, 죽을 위기에서 갑자기 나타난 여자 작살꾼 카나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심해어’에서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카나의 외모인데, 이는 나중에 같은 여성 작살꾼인 소니아의 외모와도 일맥상통한다. 즉 여성의 외모를 선정적으로 그리고, 심해어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카나의 행동을 외설스럽게 표현하면서, 이 만화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에서 비껴가지 못한다. 

카나는 ‘유니온 부산’에서 가장 뛰어난 작살꾼인데, 작살꾼으로는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심해어와 싸우는 작살꾼은 고래를 잡는 포경선에서 고래의 급소에 작살을 던지는 전문 작살꾼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처럼 보이는데, 심해어의 크기가 가장 큰 것은 흰긴수염고래보다 큰 것으로 그려진다. 보타의 아빠가 마지막으로 잡은 심해어가 바로 심해어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포악한 놈으로 켄트라시라는 이름의 50미터짜리였다. 이런 심해어를 혼자 해치웠다는 것을 최고의 작살꾼이라는 카나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시 카나의 외모로 돌아가면, 카나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매우 선정적인 외모를 지녀야 한다는 건, 만화 속 세계가 아닌, 만화를 소비하는 독자의 욕망(주로 남성 독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예술이 독자에게 아부하는’ 방식이며, 작가가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의 신념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 근거로, 같은 작살꾼 가운데 남성의 외모는 철저하게 제복으로 감싸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면, 작살꾼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우연히 여성이고, 그 여성이 유일하며, 가장 선정적인 외모를 하고 있다는 설정은 작위적이다. 여성 작살꾼의 활약을 그린다면, 적어도 작살꾼들 가운데 일정 비율은 자연스럽게 여성이어야 한다. 여성을 뛰어난 전사로 그리는 것이 혹시라도 ‘페미니즘’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여지길 바라는 작가(들)의 의도였다면, 그것 역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외압에 굴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들)가 여성을 유일하게 최고 실력자 작살꾼으로 그려야 할 납득할만한 이유,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의 필연성을 만들지 않으면, 대중성을 염두에 둔 창작의 태만함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아포칼립스에서도 대중은 안전한 곳을 찾는데,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같은 존재로 ‘유니언’을 들 수 있다. 유니언은 거대한 배의 집합체이며 그 자체로 움직이는 도시이자 국가같은 존재다. 보타와 리타가 구조되어 간 곳도 ‘유니온 부산’으로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앞서 작살꾼들이 제복을 입고 있었다고 했는데, 이 유니온은 작은 국가여서 누군가 권력을 휘두르며, 계급이 존재한다. 보타와 리타가 ‘유니온 부산’에 승선하고, 곧 두 아이를 둘러싼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카나의 비밀도 함께 드러나는데, 카나 역시 영웅 서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 자신이 보타의 영웅 서사를 완성하는 멘토의 역할을 한다.

‘유니온 부산’에는 권력을 휘두르는 계급이 존재한다. 작살꾼은 봉건시대 일본에서 영주를 위해 일하던 ‘사무라이’와 매우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데, 작살꾼을 다스리는 계급은 누구인지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유니온 부산’에 살고 있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경찰이자 감시자이자 재판관 역할을 하는 작살꾼들의 폭력-모든 권력은 폭력이므로-에 순응한다. 작살꾼들이 입은 제복은 ‘권위’와 ‘계급’을 상징하며, 이는 국가주의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작살꾼들의 권력 관계와 보타의 아버지가 반역자로 몰리는 상황은 만화 [설국열차]에서 계급 관계를 보여주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설국열차’ 역시 아포칼립스 이후 지구 표면을 도는 열차가 독립한 국가처럼 작동하는데, 이는 ‘유니온 부산’이 놓인 상황과 같다. 게다가 기차에 매달린 객차는 수직적 관계를 드러내고, 기차의 앞쪽부터 높은 계급에서 낮은 계급으로 이동한다. ‘유니온 부산’에서도 거대한 선체의 상층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배 권력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타의 처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체의 가장 낮은 곳에서 배관공으로 일하게 되는 보타는 배관공 노동자들과 함께 낡은 파이프를 교체하는 작업을 하는데, 배의 밑바닥, 낡은 파이프, 더러운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는 이들이 피지배계급임을 상징한다.

이곳이 계급이 지배하는 상황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는 보타와 리타를 난민으로 받아준 관리자가 한 말에서 나타난다. 그는 난민일 때는 심해어에게 죽을 위험에 놓이지만, ‘유니온 부산’에서는 심해어의 위협보다는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돈은 물물거래의 수단이지만, 화폐 거래는 거래하는 물품이나 서비스에서 ‘이윤’ 즉 부가가치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아포칼립스 이후에도 여전히 ‘자본’의 힘은 인류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타와 리타가 레비아탄 슬레이어 마테온의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니온 부산’에서 있었던 10년 전 사건이 새롭게 떠오른다. 이와 함께 보타와 리타를 구한 카나의 과거도 오버랩되고, 이들이 서로 예사롭지 않은 인연으로 만났다는 걸 알게 된다. 

‘유니온 부산’의 작살꾼들은 마테온이 자신들 조직을 배반하고 ‘유니온 부산’에서 반란을 일으킨 반역자라고 말하며 보타와 리타를 살해하려 한다. 이 무렵에 이미 보타는 자신의 아버지 마테온이 ‘유니온 부산’에서 가장 뛰어난 작살꾼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전설로 알려진 6성 작살꾼임을 알게 된다. 현재 가장 뛰어난 작살꾼인 카나가 3성 작살꾼임을 볼 때, 6성 작살꾼은 믿기 어려운 기록이다. 혼자 600마리의 심해수를 해치웠는데, 그런 영웅이 ‘유니온 부산’에서 탈출할 때는 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비슷한 이유로 카나와 보타, 리타도 다시 ‘유니온 부산’에서 탈출한다.

이들의 탈출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폭력에 의해 축출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유니온 부산’은 하나의 국가로, 계급 사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보타와 리타는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자식들이고, 카나는 그런 반역자의 자식을 도와주는 사람이어서 체제에 위협이 되는 인물을 제거하는 집단의 폭력은 필연적 결과를 드러낸다.

체제-지구를 뒤덮은 바다는 단일한 시장으로 통합된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를 상징한다-위에서 존재하는 ‘유니온’은 국가를 은유하고, 작은배로 바다를 떠돌며 어떻게든 ‘유니온’으로 합류하려는 사람들은 난민이자 피지배계층이다. 이들은 ‘유니온’에 올라 입선 심사를 받고-이민 심사와 같다-합격한 사람만 ‘유니온’에 남을 수 있고, 불합격하면 다시 작은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은 보호해 줄 장치가 사라지고, 심해수에게 잡혀먹힐 확률이 높아진다. ‘심해수’는 현상적으로 바다의 돌연변이 괴물이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사회 체제의 구조 그 자체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바다(체제)에 사는 구조적 착취나 불평등이 괴물로 변해 난민을 잡아먹는 것은 이 만화가 의도했거나 하지 않았더라도 독자가 읽어낼 수 있는 메타포다.     

아포칼립스를 그리고, 심해수와 죽음의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많아도, 이 만화에서 ‘가족’은 등장인물들이 가진 상처이자 희망이다. 보타와 리타는 심해수에게 아버지를 잃었고, 카나 역시 부모가 심해수에 잡혀먹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고아가 된 카나를 돌봐준 것은 ‘유니온 부산’에서 작살꾼으로 활약하던 보타의 아버지 마테온이었고, 세월이 흘러 마테온의 아들과 딸을 구한 것은 카나였다. 카나는 ‘유니온 부산’을 포기하면서까지 두 아이를 지키고, 보타와 리타는 카나를 누나나 언니처럼 여긴다. 

가족의 부재는 그 자체로 공포다. 카나, 보타, 리타는 모두 어려서 부모를 잃는다. 생물학적 부모의 부재를 메우는 것은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어른들의 보살핌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나마 있던 울타리에서 쫓겨난다. 현실에서는 당장 죽음과 맞닥뜨리는 상황에 놓여 생존 본능이 앞서지만, 이들이 새로운 세계-세 명은 극적으로 살아나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에 도착해 심리적, 육체적 안정을 찾게 되면서, 각자의 내면에 가라앉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다스릴까도 중요한 과제다. 

이들의 트라우마는 심해수를 향한 증오와 복수로 드러나지만, 그것은 그들 내면의 현상만을 볼 뿐이다. 보다 근본에서 부모를 그리워하는 결핍의 문제는 이들을 끝까지 괴롭힐 것이다. 카나가 최고의 작살꾼이 될 수 있었던 것과 보타 역시 아버지와 같은 전설적 작살꾼의 재능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유전적 이유보다는 증오와 복수의 감정이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슬픔, 외로움, 그리움, 결핍의 감정이 마치 심해수처럼 주인공들의 내면을 할퀴게 될 것이다.     

‘심해수’는 스토리 작가, 그림 작가, 배경과 채색 작가가 모두 다른, 협업 구조로 제작하고 있다. 사물과 배경은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인물의 행동은 박진감 넘친다. 레이아웃의 제한을 두지 않는 자유로운 화면 연출로 웹툰의 장점을 살렸다. 캐릭터는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강하게 보인다. 특히 ‘카나’는 귀여운 얼굴에 무서운 전투력을 갖춘 여성으로 그려지는데, 그녀가 거의 나체나 다름없는 외모로 그려지는 것은 일본 만화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는 증거다. 다른 캐릭터 역시 한눈에 일본 만화의 캐릭터와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만화가 뛰어난 연출과 극사실 묘사, 진지한 서사를 다루면서도 그래픽 노블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만화의 핵심인 그림과 서사의 독창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그린 ‘아들의 땅’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과 함께 앞에서도 언급한 ‘독자에게 아부하는’ 카나의 존재-선정적인 외모와 유일하면서 최고의 실력자인 작살꾼의 위치-는 작가가 구축한 작품 세계의 일부를 허무는 행위로 보이고, 창작의 진지함을 훼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여성의 나체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몸을 드러내야 할 필연적인 이야기 구조가 아님에도, 선정성을 목적으로 그렸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형식은 내용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다. 작품의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캐릭터와 독창성이 부족하면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독자를 온전히 설득하지 못하게 된다. 만화에서 드러나는 형식과 내용의 문제는 작가에게 ‘작품에 관한 철학의 부재’로 귀결하게 되면서, 작품의 완성도에 흠집을 낸다. 만화가 예술 장르의 하나라는데 동의한다면,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작품에 작가의 철학이 중심으로 자리잡아야 하는건 작가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자존심이 아닐까. 그런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심해수’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시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