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새벽 3시다.
6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해야 하니까 지금 자도 3시간 밖에 못잔다.
3월 1일.
우리나라를 일제 강점기에서 구하기 위해 조상님들이 3.1운동을 하신 고마운 날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공휴일이 주는 즐거움이 큰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교사들에게만큼은 마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는 날이다.
보통 3월 1일이 지난 바로 다음날에 새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긴 휴가는 안그래도 후유증이 심해서 출근하기 어려운데,
새학기는 말그대로 모든 것이 새것인 만큼 다시 적응 해야 하는 어려움까지 있다.
새 교실, 새 학생, 새 학부모님들, 새 동료교사들까지...
마치 다시태어난 것 같은 적응기를 거쳐야 한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 없이 남편은 핸드폰을 하며 말한다.
"빨리 자, 지금 자도 세시간 밖에 못자."
자기도 이미 잠을 포기했으면서, 친절하게도 나의 피곤함을 예고해준다.
세시간밖에 못잔다는 것도, 그 세시간마저 깊은 잠에 들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내일 하루의 컨디션은 엉망일거라는 것도 알기에 더욱 신경이 곤두선다.
새학기 전날은 누구보다 예민하고 불안해서 잠도 잘 못자는 걸 신랑도 잘 알기에,
나의 뒤척임에 함께 잠을 못이룬다.
'띠리리리링'
살포시 잠이 든 것 같은데, 알람이 울렸다.
6.25전쟁은 전쟁도 아니라는 새학기. 3월 2일 첫날의 시작이다.
교직생활 10년차, 고경력교사가 되어가지만 이놈의 새학기 첫날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사실, 만반의 준비는 이미 마쳤다.
아이들의 이름이 든 명부를 정리할 때부터 책상, 가방장, 서랍장, 신발장
모든곳에 이름표를 붙여두었다.
'만.나.서.반.가.워.요'
글씨를 못읽는 아이들도 '와, 무지하게 반가운가부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안녕, 친구들', ' 만나서 반가워', ' 사랑하는 OO반' 같은 문구와
시선을 뺏는 알록달록한 그림들도 교실 곳곳에 잔뜩 붙여두었다.
오늘하루 무엇을 할지 하루일과도 완벽하게 계획 해놓았다.
울면서 오는 아이들, 교실에 들어오지 않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다해 버티는 아이들까지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까지 마쳤다.
첫날의 등원부터 하원까지 하루일과 흐름을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출근준비를 한다.
씻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데, 마음과 정신은 이미 유치원 교실 속에 있다.
몸과 정신이 분리되어, 텅빈 눈으로 몸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집을 나서기 전
운동화끈을 질끈 묶는다.
3층 연수실.
내가 업무를 보는 장소다. 컴퓨터 자리에 앉아 교사용 다이어리를 펴고
오늘하루 아이들과 할 활동과 해야 하는 업무들을 정리해본다.
가끔, 교사는 하루를 두번으로 나누어 사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오전에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는 교사로서 살고,
오후에는 연수실에서 각종 공문들과 서류에 치여사는 직장인으로 두번을 사는 것이다.
'하루를 두번 살다니, 좋...은...건가...?'
8시 40분
업무를 정리하며 문득 올려다본 모니터 속 시계가 아이들이 올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수업은 9시부터 시작이지만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이쯤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 이름이 든 명부와 오늘 할 활동자료들을 들고 교실로 향한다.
자...이제 그들이 온다.
시작이다!
아이들에게 밝은 인상을 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귀에 걸으며
빈 교실에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멀리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쿵쾅쿵쾅'
기대반 걱정반 섞인 내 심장소리도 함께 들리는 것 같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고 드디어 올해 첫 등원을 하는 아이를 만났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하이톤으로 목소리를 끌어올리며 밝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아이는 꽤나 당황스러워 보이지만, 나는 당황하면 안된다.
나는 선생님이니까!
낯선 교실의 낯선 여자가 태어날 때부터 자기를 알았던 것 처럼
반갑게 인사를 하니, 적잖이 놀란 모양이지만 다행히 울지는 않는다.
말간 눈을 말똥말똥 뜨며 알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이스~ 됐어. 오늘은 울지만 않으면 돼'
첫날, 첫만남의 느낌이 나쁘지 않다.
쨍쨍 해가떠고,
죽죽 비가와도,
쌩쌩 바람이 불어도,
펑펑 눈이와도
매일 유치원에 가는 올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