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이직 뒤에 숨겨진 '생존'의 기록
나를 소개할 때면 사람들은 늘 고개를 갸웃거린다. 법대 나온 금융맨. 그런데 삼성 SDS 자회사(오픈타이드)에서 IT 컨설턴트를 했고, 다시 은행(우리은행, 전북은행)으로 돌아와 디지털 부장을 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클라우드(메가존)와 블록체인(블록오디세이) 기업의 임원을 거쳐, 지금은 생성형 AI를 전공한 공학 박사란다.
"박사님 커리어는 참 화려하시네요. 전략적으로 설계하신 건가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쓴웃음을 짓는다. 전략? 천만에. 내 이력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결과물일 뿐이다. 나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가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부족한 구멍을 메우려 애썼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금융회사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던 30대,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세상은 'IT'니 '디지털'이니 떠들썩한데, 문과 출신인 내 눈에는 그저 알 수 없는 외계어로만 보였다. IT 부서에서 올라온 기안을 검토하며 "이게 돈이 됩니까?"라고 묻지만, 속으로는 '이게 구현 가능한 기술인가?'조차 판단하지 못했다.
그 무지가 두려웠다. 그래서 스카웃 제의가 왔을 때, 주저 없이 삼성 그룹의 인하우스 컨설팅 회사인 오픈타이드(OpenTide)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이나 직함보다, 당장 내 눈앞의 안개를 걷어내고 싶었다. 'IT와 전략이 만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걸 막연히 알았기에, 그 접점에 서고 싶었다.
그렇게 IT를 배우고 나니, 다시 은행들이 나를 찾았다. 우리은행과 전북은행에서 디지털(플랫폼) 기획과 전략을 총괄하며 나는 소위 '잘나가는' 부서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또 다른 벽을 만났다. "부장님, 클라우드 전환은 보안 때문에 안 됩니다.", "블록체인은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실무진의 기술적 반대 앞에서 나는 논리적으로 설득할 '깊이(Deep)'가 부족했다. 겉핥기 지식으로는 진짜 전문가들을 이끌 수 없었다.
그래서 또다시 짐을 쌌다. 이번엔 진짜 기술 기업인 메가존디지털과 블록오디세이였다. 안정된 은행 부장 자리를 박차고 나갈 때 동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무늬만 디지털 전문가'로 남는 것이 더 무서웠다.
그렇게 현장에서 구르며 깨달은 것이 있다. 블록체인이든 클라우드든, 결국 모든 기술의 종착역은 '생성형 AI'라는 것. 이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금융과 비즈니스의 판 자체를 갈아엎을 거대한 쓰나미였다.
그걸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대학원에 등록하고, 밤낮으로 논문을 쓰며 '생성형 AI 산업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남들은 "그 나이에 굳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절박한 생존 본능이었다. AI를 모르면 내 지난 20년의 금융 경력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될 것 같았으니까.
돌고 돌아 박사가 되고 창업을 하고 나니, 이제야 보이는 게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을 끝까지 파고들어 보니 결국 남는 건 '사람'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AI도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기술은 도구일 뿐, 그것을 비즈니스 가치로 만드는 건 인간의 통찰(Insight)과 전략(Strategy)이다. 내가 법학을 하며 배운 논리, 금융에서 배운 돈의 흐름, IT 현장에서 배운 구현 능력이 이제야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다.
나는 이 브런치에 그 '연결의 기록'을 남기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단한 미래학자의 예언이 아니다. 나처럼 '기술 때문에 내 자리가 없어질까 봐 불안함'이 시대의 과장님, 부장님들에게 건네는 현실적인 조언을 기록하고 싶었다.
"생성형 AI, 우리 회사엔 어떻게 도입해야 하나요?"
"문과 출신인데 지금 코딩 배워야 합니까?"
"금융의 미래, 정말 은행원이 필요 없을까요?"
오는 1월 출간될 저서 <생성형 AI 시대, 기업이 살아남는 법>도 이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자, 이제 넥타이를 좀 풀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기술과 돈, 그리고 우리들의 생존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