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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핏줄을 타고

by 김수정

일재(逸齋) 신한평(申漢枰, 1735~1809)은 영조와 순조대에 활동한 화원입니다. 낯설디 낯선 이름이지요? 그럼 혜원(惠園) 신윤복(申潤福)의 아버지라고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맞습니다. 우리나라 풍속화의 섬세한 매력화가 신윤복의 아버지입니다. 공재 윤두서와 낙서 윤덕희처럼 신한평과 신윤복 부자도 부자(父子) 그림쟁이였습니다.

img1.daumcdn.jpg 「자모육아도(慈母育兒圖)」종이에 담채, 31cm x 23.5cm, 조선 시대, 간송미술관


신한평은 탁월한 실력으로 유명한 화원이었습니다. 영조와 정조 임금의 어진을 그렸고, 70을 넘어서까지 오래 도화서에 근무하여 오히려 아들인 신윤복이 도화서에 자리를 잡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능과 영향은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한평은 어미의 자애로움을 제목으로 붙여 자모육아도(慈母育兒圖)라 하였습니다. 실제 장녀, 장남인 신윤복, 차남을 두었던 신한평의 신상을 고려했을 때, 그림의 주인공은 신씨네 가족입니다. 갓난아기의 젖을 먹이려 집중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관심을 잃어 울고 있는 신윤복, 그리고 이미 성장해 소중한 복주머니를 꼭 쥐고 있는 누이. 그 모든 이의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각기 분주한 가운데 서로 끈끈한 가족. 그러나 아버지는 이 자리에 없습니다. 아니, 분명 있습니다.

그림의 왼쪽 여백에는 큰 글자로 ‘일재(逸齋)’라는 서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림 여백에 큼지막한 ‘혜원(惠園)’ 글자를 남기는 신윤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흰 글자로 파내어 붉게 찍은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사구인(詞句印, 아름다운 문장을 새긴 것)은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시에서 인용해 온 것입니다. ‘산 기운은 황혼녘이 아름답구나’라는 뜻입니다. 붉은 빛이 가득한 시간, 신한평의 눈에 가족들이 어떻게 보였을지 엿보입니다.

사대부 화가였던 윤두서에게서 시작된 풍속화가 화원인 신한평에게 와 닿았습니다. 아들인 신윤복이 풍속화의 꽃을 피웠으니 세상의 이치란 놀랍고 또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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