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오후 6시
김장을 했다. 30포기. 손큰 경상도 울엄마가 스른포기라고 그래서 나는 진짜로 서른덩어리인줄 알았다. 고정도쯤이야 소매싹싹 걷고 잠깐 수그렸다 일어나면 곰방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배추는 사등분되어 절여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배추 서른포기를 김장하려면 30*4=120. 120쪽의 배추를 좌로 문지르고 우로 문지르고 해야하는 것이었다.
지금 아이폰을 쥐고 있는 손에서 김치냄새가 나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디스플레이에 찍히는 글자에도 또박또박 김치향이 찍히는것만 같다. 블랙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커피에서도 고추맛이난다.
김치 인간이 되었다고 징징거리고 있지만, 사실 김치 '담그기'만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무장갑을 야무지게 추켜낀 다음, 오른손에 양념을 쥐고서 소금에 절여서 맥아리없는 배춧잎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바르면 된다. 무채나 갓같은 김치속도 중간중간 끼워넣어주고, 맨 뒤의 이파리 두세장으로 곱게 동동 싸매주면 완성이다.
그러나 비극적 사실은 그러한 '담그기'를 하기 위해서는 양념과 절인배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새는 절여진 배추 한포기를 스벅 오늘의 커피 한잔 값으로 살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늘 천번까기와 생강 또 까기, 찹쌀풀 쑤기와 젓갈전쟁은 반드시 거쳐야만, 양념 다라이를 얻을 수 있다.
김장을 하고나면 내가 털이 많은 짐승임을 새삼 깨닫는다. 항시 신경쓰는 머리털은 물론이고, 잊고있었던 손가락털이나 인중털, 다리털, 보이지않는 얼굴의 솜털에까지 마늘고추냄새가 진득하다. 아까는 하도 김치냄새가 많이나길래 내 콧구멍에 양념이 묻었나 의심했는데, 아무데도 묻어있지 않았다. 어쩌면 내 콧구멍 내측 털에도 김치내가 스며든 것 같기도 하다.
오오 김치를 담그고 나니 김치맛이 달리 느껴진다. 원래 김치는 심심한 쌀밥이나 반찬에 짜거나 매운 자극을 더해주는 간장이나 와사비같은 서브였는데, 오늘따라 김치에서 풍부한 마늘향도 나고 달달한 배추맛도 느껴진다.
집에는 이미 김치냉장고가 두대이다. 손큰 울엄마는 세워서 쓰는 김치냉장고인 삼성 메탈그라운드를 또 사고싶다고 한다. 나는 냉큼 아서라 황여사님 하며 저놈 냉장고들 내가 세워드릴테니 더이상의 김치공간은 어렵소 한다.
척추 언저리가 종일 저릿하지만 냉장고에 줄맞춰 들어찬 김치통을 보니 거참 뿌듯하기도하다. 김치통들을 쌓아놓고 배긁으며 수육에 새김치를 척척 얹어먹으니 생각보다 김치데이를 보내는 것은 괜찮은 것 같다. 그렇지만 수육 접시가 비워지니, 이내 정신을 차린다. 김치데이는 생각보다 괜찮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더 괜찮다...
먹음직스런 김치사진을 찍어올리고 싶었으나, 고추전쟁을 모두 해치운 뒤에야 정신을 차렸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