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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29. 2020

홍콩에서 온 신사

코로나 바이러스가 막 유행하기 시작한 1월쯤으로 기억한다. 구정 때 예약된 고객의 명단을 천천히 살펴보았는데, 생가보다 많은 고객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얘 약을 했다. 그때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내부의 문제로 대두될 때였지만, 나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고민에 빠졌다.


'이들 중에 혹시나... '


다시 한번 예약된 고객 리스트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도 중화권 및 싱가포르에서 오는 분은 단 2팀이었다. 나머지분들은 국내 팀이거나,  미국 및 일본에서 오는 손님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비교적 안전했으니까 말이다. 예약된 날짜나 시간도 확인을 같이 했다. 천운이 도왔는지 국내 손님 촬영이 다 끝난 날짜인 연휴의 맨 마지막에 예약을 해주었다.!


솔직히 구정 당일까지만 해도 한국엔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신천지 사태 이후 급격히 늘어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고객의 예약을 그대로 받아야 할지 뭔가 핑계를 대서 환불을 해야 할지 한참 고민에 빠졌다. 주의의 같은 업계 지인들은 외국인이 오면 실제로 환불을 해 주는 사례로 있는 듯했다. 하지만 입국 시 철저히 검사도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고객과 트러블을 일으키가 제일 싫었고, 남편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했다. 물론 마스크에 손소독제로 중무장하면서 일을 했지만 사실 약간 불안한 것 사실이었다.


그리고 촬영 당일날, 고객과 나는 안국동 근처에서 만나로 했다.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은 시각에 도착한 그는 홍콩에서 온 분으로 중년 부부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한국에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의식한 지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국보다 먼저 영향을 받은 탓인지 매우 철저하게 봉인(?)을 한 것 같았다. 물론 사진을 촬영을 할 때는 착용을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 빈센트 씨를 보면서 매우 감사하게  느꼈는데, 그는 매우 조심스웠고, 만반의 준비를 해 온 듯 보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자신과 남에 대한 배려가 뭔지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몸에서 긴장감이 약간 풀렸다. 솔직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너무 긴장을 했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촬영을 해도 문제없겠다 싶었다.


안국동과 북촌 한옥마을을 일주하면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추천했던 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빈센트 씨는 부인과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 우리는 이동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마치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고객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내 임무(?)인데 말이다. 아마도 그의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홍콩의 구정 연휴는 4일 정도라고 한다. 중국 본토에 비하면 매우 짧은 기간이라는 것에 놀랐는데, 아마도 영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생각보다 짧게 쉬는 듯했다.


한 가지 약간 충격적인 언급이 있었는데, 그가 보기엔  한국사람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것 같다고.


"한국사람들은 생각보다 마스크를 안 쓰네요, 우리가 숙소에서 오는 동안 몇몇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어요."


이 때는 신천지 사태 이전이라서 그런지 마스크와 손세정제는 동이 났어도 내가 보기엔 몇몇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은 하지 않았다. 아마 구하기 힘들어서 착용을 못했으리라. 그는 매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하긴 홍콩 사람들은 사스와 이번 사태도 겪었을 테니...라고 생각을 했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빈센트 씨는 만족했다는 듯,  납품 날짜를 확인하고 해어졌다.

예정대로 납품을 하고, 그리고 얼마 후에 한국에서 신천지 사태가 터졌다.


2개월이 흘러 빈센트 씨에게 이메일이 왔다.

내가 보낸 사진을 잃어버려서 혹시나 백업본을 가지고 있으면 다시 보내줄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나는 서버에 백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다시 사진을 보낼 수 있었는데, 그에게 다시 답장이 왔다.


"내 이메일에 답장이 왔다는 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무사하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모두 건강하길 빌어요. "


사실 서울에서 사는 나로서는 방안에 갖혀 살았기 때문에 의식이 무뎌졌는지 몰라도, 그렇게 말해주니 매우 고마웠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감동을 느낄때는 바로 이때가 아닐까 한다. 서로 인생의 몇 시간을 만나지만, 가장 어려울 때 안부를 물어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성인이 되어 많은 인간관계를 맺어도 안부조차 나누기 힘든 사람들도 많은 것을 보면, 저 멀리 외국에 사는 다른 나라 사람이 묻는 안부를 보면 소소한 감동이 밀려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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