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아들의 음료는 어떻게 미국의 차애음료가 되었나?
닥터페퍼, 펩시를 제치다
이번 달 '베버리지 다이제스트(Beverage Digest)'의 2023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청량음료 발표는 세계적인 충격을 안겼다. 그것은 1위인 '코카콜라' 때문이 아니다. 바로 2위에 오른 '닥터페퍼'때문이다. 아니 펩...시는 어디 가고 '닥터페퍼'가 왜 나와?
그렇다. 이것은 음료계는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하는 사건이었다. 심지어 미국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이어서 CNN을 비롯한 뉴스에 보도가 되었다. 매니아들의 음료였던 닥터페퍼는 어떻게 미국에서 두 번째로 사랑받는 음료가 되었을까?
닥터페퍼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매니아들의 음료였다. 모든 사람들이 마시기에는 낯선 음료.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이유를 준다고 할까? 닥터페퍼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생긴 것은 콜라지만 독특한 맛이 난다는 것
2. 모두에게 맛있는 게 아닌, 취향을 타는 맛이 난다는 것
3.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는데, 이름부터 왜 지어졌는지 모른다는 것
4. 대중매체를 통해 종종 (아는 사람만 알 수 있게)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
이렇게 닥터페퍼에 빠진 사람들은 닥터페퍼를 '선택받은 자의 지적 음료수'라고 부를 정도로 닥터페퍼를 음료 이상으로 숭배하였다. 그런데 이 음료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마스크 품절이 일어나던 그때, 미국 마트에서는 화장지... 그리고 '닥터페퍼'가 동이 나기 시작했거든.
그렇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닥터페퍼 매니아들이 전례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전문용어로 '집콕')를 맞아 눈에 보이는 족족 닥터페퍼를 사재기를 하였고 이것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는 닥터페퍼 매니아들의 열정에 기름을 부었다. 공공연하게 온라인에 자신의 닥터페퍼 부심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닥터페퍼는 하나의 음료 선택지가 아닌 내 취향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물론 전국적인 움직임과는 거리가 먼 서브컬처였을 뿐이다. 닥터페퍼는 물 들어오는 이 기회에서 어떻게 노를 저을 수 있을까?
사람도, 제품도, 음료도 장점을 나열하자면 할머니의 손주자랑처럼 끝이 없는 법이다. 닥터페퍼가 잘한 것이 있다면 메시지의 포인트를 2개로 줄였다는 것이고, 기존의 음료 광고를 벗어나 팬들과 어울릴 법한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먼저 닥터페퍼는 체리 탄산음료가 아닌 '23 Flavors'를 강조하며 이 음료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며, 대체할 수 없음을 밝힌다. 동시에 닥터페퍼의 고유한 맛을 기반으로 여러 재미있는 맛의 닥터페퍼를 출시한다. 시즌 한정판부터, 돈주고도 못 사는 진짜 팬들만 살 수 있는 버전까지 포켓몬스터 게임을 하듯 닥터페퍼에 수집의 재미를 주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다른 음료들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닥터페퍼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자신들의 고유한 맛을 기반으로 음료를 넘어 다른 제품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닥터페퍼맛 마시멜로우, 닥터페퍼맛 아이스크림 등 재미있는 콜라보를 선보이면서도 '닥터페퍼의 맛'을 놓치지 않았다.
다음은 '독특한 캐릭터'다. 일반적으로 음료 광고에는 유명한 연예인이 홍보모델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닥터페퍼는 자신들의 캐릭터를 구상하고 홍보모델에게 연기를 시킨다. 그런데 그 캐릭터가 독특한 나머지 연기를 한 본체인 모델들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아니 아메리칸 아이돌 준우승자를 80년대 락스타처럼 분장시키고 병맛광고를 찍는 것은 정말 닥터페퍼스럽다를 그대로 보여준다.
매니아들도 완성, 마케팅 포인트도 완성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더 남았다. 바로 다른 관심사의 사람들을 끌어올 방법이다.
닥터페퍼가 선택한 장르는 '미식축구'다. 닥터페퍼는 대학 미식축구 리그 '칼리지 풋볼 플레이오프'의 공식음료가 된다. 미국에서(특히 남부지역에서) 대학 미식축구의 인기란 어지간한 메이저 스포츠들을 압도할 정도다. 그 파이널 무대에 닥터페퍼가 함께하는 것이다. 닥터페퍼스러운 방법으로.
우선 닥터페퍼는 칼리지 풋볼 플레이오프 시즌에 광고가 아닌 TV 시리즈를 제작한다. '펜스빌(Fansville)'이라고 불리는 이 시리즈는 2019년부터 최근까지 시즌을 거듭하며 계속 진행되는데, 펜스빌이라는 미식축구와 닥터페퍼에 미쳐있는 동네에 벌어진 사건들을 다룬다. 익숙한 배우와(그중에는 유명 미식축구 선수들도 등장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미식축구에 대한 열기를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다음은 칼리지 풋볼 플레이오프의 하프타임을 닥터페퍼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 경기장에서는 '닥터페퍼 장학금'을 건 대학생들의 콘테스트가 열린다. 온라인 비디오 콘테스트를 통해 뽑힌 대학생 2명이 경기장에 등장한다. 그리고 30초 동안 거대한 닥터페퍼 통에 얼마나 많은 미식축구공을 넣느냐로 장학금을 전달하는데 무려 우승 상금이 10만 달러다. 공 넣기 대회에 1억 3천만 원을... 태운다고?
사연 있고 꿈 있는 청년들의 대회는 매년 이슈가 되었다. 올해 같은 경우는 우승자가 나왔지만, 시간계산상 오류가 있음이 보도되었고, 결국 2명의 결승자 모두에게 10만 달러를 지급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나왔다. 과거에 미식축구 하면 게토레이가 생각났듯이, 이제는 닥터페퍼가 미식축구의 팬덤을 가져가는 것이다.
'고유한 맛'과 '독특함을 살린 도전'이 키워드인 닥터페퍼는 10대들의 인기플랫폼 '틱톡'에서 절정의 사랑을 받았다. 여기야 말로 독특함에 목숨을 건 어린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5월에는 닥터페퍼에 피클을 넣은 '닥터페퍼 피클'이 인기를 끌며 너도 나도 닥터페퍼에 피클을 넣어 마시는 도전을 하기도 했다. 닥터페퍼 역시 여기에 호응하여 해당 영상을 자신의 채널에도 미러링을 하여, 도전에 불을 붙이게 했다.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닥터페퍼는 이름 있는 음료 중에 가장 젊어 보이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사실 얘가 제일 나이가 많은데 말이지.
남들과는 다름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코카콜라를 고르냐 펩시를 고르냐'의 문제가 이제 큰 차이가 없어 보이게 되었다. 차라리 다름을 보여주는 '닥터페퍼'를 고르는 것이 나의 개성을 더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그렇게... 닥터페퍼의 선호도가 오르고, 올라 결국 '코카콜라 클래식' 다음의 음료가 된 것이다. 보고 있나요 후추박사님...
그리고 이제 2위라는 큰 사건을 일으켰다. 닥터페페에게도, 닥터페퍼를 좋아하는 매니아에게도 하나의 큰 사건이 될 법한 일이다. 아마도 닥터페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 음료를 키웠다는 생각에 더욱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앞으로 얼마간은 닥터페퍼의 진격을 막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위기도 함께 찾아왔다. 팬덤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제품에는 항상 '눈에 보이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닥터페퍼가 넘사벽의 점유율을 가진 코카콜라 클래식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사실 공동 2위인 닥터페퍼와 펩시의 점유율을 합쳐야 근접하는 정도거든.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긴 과정 동안 닥터페퍼 매니아들이 이 음료를 좋아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역사상 처음 미국 2위 음료가 되었다'는 자극을 맛본 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닥터페퍼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조금 더 기대해 본다. 세계로 뻗어나갈 닥터페퍼의 시작을(닥터페퍼는 글로벌 음료로 치면 7위 정도 되는 브랜드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한국에도 닥터페퍼 신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참고문헌
닥터페퍼, ‘틱톡 비주류’ 타고 140년 만에 역주행…펩시와 동률 [뉴스+], 홍주형, 세계일보, 2024.6.2
Why Dr Pepper Is Doing Better Than Coca-Cola And PepsiCo, Trefis Team, Forbes, 2015.11.10
Dr Pepper experiencing shortage amid COVID-19 pandemic, Ahmed Sharma, NBC, 2020.8.12
How Coke and Pepsi’s rivalry shaped marketing — and where it goes next, Peter Adams, Marketing Dive, 2022. 5.3
Dr Pepper finally ties with Pepsi for the No. 2 soda spot as Coke still reigns supreme, Lauren Elkies Schram, NYPOST, 2024.6.1
Dr Pepper just passed Pepsi as the second biggest soda brand, Danielle Wiener-Bronner, CNN, 2024. 6. 3
How Dr Pepper passed Pepsi by marketing around football, flavor innovation, Chris Kelly, Marketing Dive,2024.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