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안에서는 코크도 펩시도 이긴 음료
달리다 보면 느낀다
뛰는 것보다 멈춘 후가 더 걱정이라고
부동산 사장님이 분명히 '정류장에서 3분 거리'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기록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집에서 버스 타기 3분 컷. 이건 우샤인 볼트형이 와도 안된다.
뛰다 보니 걱정이 더해간다. 아마 도착을 하더라도 나는 숨도 제대로 못 쉬겠지.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속도 울렁일 것이다. 뛰는 것보다 더 지옥 같은 순간이 기다린다. 그때 내 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말한다. "게토레이를 마시라고 거북아!"
그렇다. 달릴 때 생각나는 음료 '게토레이'가 있다. 기이한 맛에도 50년을 버텨온 녀석. 왜 우리는 땀을 흘리면 게토레이를 떠올리는 것일까?
1965년 플로리다, 무더위로 대학미식축구팀 '플로리다 게이터스'의 신입생이 일주일에 25명이나 입원을 한다. 원인은 탈수증. 모두가 물을 제때 마시면 된다고 말할 때, 의과대학의 '로버트 케이드(Robert Cade)' 박사는 생각한다. 그냥 물 말고 땀을 마시면 어떨까?
케이드 박사는 학교 지하실에서 음료 작업을 시작한다. 땀에 있는 각종 염류는 몸의 균형을 맞춰준다. 그렇다면 이 음료에 이 성분을 넣어 물보다 빠르게 흡수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게토레이가 태어났다. 완벽한 기능성 음료. 비록 변기 세정제 같은 맛이 났지만. 어떻게 레몬 좀 짜면 괜찮지 않을까?
괜찮지 않았다. 플로리다 게이터스 감독은 이 변기... 아니 음료를 마시고 말했다. "1학년 선수들에게 마시게 하는 건 괜찮소. 그런데 우리 대표선수들은 절대 건들지 마!"
끔찍한 더위와 더욱 끔찍한 음료를 견딘 1학년은 그해 10월에 2군 선배와 시합을 한다. 전반전은 13대 0으로 압도적인 선배들의 승리. 하지만 후반전에 1학년 선수들은 한 점도 내주지 않고 역전을 한다. 그제야 감독은 이 음료의 진가를 알아봤다. 그리고 내일 경기에 100리터 정도 음료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신이 난 케이드는 밤을 새워 음료를 만든다. 손으로 레몬 짜야하니까.
운명의 날이 왔다. 날씨는 완벽했다. 37도와 38도를 넘나드는 더위. 조금만 뛰어도 천국을 구경할 수 있는 날씨다. 후반전이 오자 케이드는 선수들에게 준비한 음료를 마시게 했다. 선수들은 오줌물 같다는 독설을 날렸지만 그 날 경기는 14대 7로 승리한다. 그 뒤로 이 음료는 선수들과 함께한다. 이름마저 악어(Gator)와 음료(Ade)를 합쳐 '게이터레이드(한국에서는 게토레이라고 상표등록)'라고 짓는다.
다음 해인 1966년 플로리다 게이터스는 역대급 성적을 낸다. 특히 뒷심을 내기로 유명했다. 선수들이 게토레이에 신체적, 심리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팀도 마찬가지여서 게토레이를 싣고 가던 트럭이 도난당하는 일도 생겼다.
플로리다 게이터스는 그 해 시즌을 8승 2패로 마쳤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승리한다. 이때 상대팀 감독 바비 다드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게토레이가 없었잖아. 그게 승부를 가른 거야(We didn't have Gatorade. That made the difference.)"
플로리다 게이터스의 활약으로 게토레이는 모든 미식축구팀에서 마시게 된다. 상업화가 된 것이다. 케이드 박사는 더 이상 레몬을 짜느라 근육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1985년, 뉴욕 자이언츠의 미들 가드 '짐 버트(Jim Burt)'는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 대상은 바로 자신의 팀 감독 '빌 파셀스(Bill Parcells)'. 짐 버트는 팀의 승리만을 기다리며 고된 훈련을 견뎠다. 그리고 경기가 이겨 모두가 기뻐하는 순간 감독의 머리 위에 게토레이를 부어버렸다.
그야말로 갑분싸의 상황. 하지만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도, 그다음 경기에서도 뉴욕 자이언츠가 이길 때마다 감독 머리 위에 게토레이가 부어졌다. 바로 '게토레이 샤워(Gatorade Shower)'다.
게토레이의 제작사 퀘이커 오츠는 이 기회에 무언가를 해야 했다. 퀘이커오츠는 '감독님의 옷이 손상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라는 쪽지와 함께 의류상품권을 보냈다. 빌 파셀스 감독은 "저는 올해 게토레이 샤워를 몇 번 더 맞기를 기다립니다"라고 답했다.
그 해 파셀스는 총 17번의 게토레이 샤워를 맞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300L의 게토레이를 피부에 양보한 격.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을 생각하면 나이키를 떠올린다. 하지만 게토레이는 조던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음료다. 그런 그가 게토레이와 계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게토레이는 마이클 조던이 코카콜라와 계약이 끝나는 날만 기다렸다. 그의 나이 28살. 게토레이는 드디어 원하는 광고모델을 찾았다.
광고기획자 '버니 핏젤(Bernie Pitzel)'은 곧바로 조던이 출연하는 TV광고를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주어진 기간이 4일이라는 것과. 촬영 소스가 마이클 조던의 덩크 영상 모음이라는 점이었다. 이렇게 만들다가는 광고가 게토레이인지 나이키인지 헷갈릴 것이 분명했다.
핏젤은 식탁보에서 가사를 써서 광고음악을 급조했다. 그리고 거리의 아이들에게 마이클 조던을 따라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만든 광고 영상이 'Be Like Mike'다. 광고는 조던의 영상과 아이의 영상을 교차하며, 누구나 마이클 조던이 되기를 꿈꾼다는 내용을 담았다. 여전히 게토레이 하면 회자되는 멋진 광고다.
안타깝게도 마이클 조던은 NBA를 은퇴한다. 하지만 게토레이는 조던과의 계약을 이어간다. 마이클 조던이 야구선수로 활동하며 죽을 쑤고 있을 때도 그를 모델로 세웠고, 그의 복귀에도, 그의 다시 은퇴에도(무한반복) 마이클 조던과 함께했다. 바로 의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3년 슈퍼볼 광고였다. 이름하야 '23 VS 39'. 23살의 조던과 39살의 조던이 일대일 농구대결을 하는 영상이다. 사실 이것은 게토레이에 대한 광고라기보다는 조던에 대한 찬사다. 물론 그때쯤에는 게토레이와 마이클 조던을 떼어서 생각하긴 어려웠지만.
의대 지하에서 가내수공업으로 만들던 게토레이는 미국 스포츠음료 시장의 83%까지 차지한다. 이쯤 되니 최종 보스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코카콜라와 펩시다. 코카콜라는 '파워에이드'로 펩시는 '마운틴 듀 스포츠'로 스포츠 음료 세계에 참전한다.
게토레이는 이들에게 어떻게 맞섰을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경쟁 음료수들이 게토레이보다 맛이 좋다고 말하자, 소비자들은 이게 당이 많이 들었구나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가격으로 승부를 보았는데, 값이 싸지자 브랜드의 가치도 싸졌다. 알아서 자멸이라고 할까.
결국 남은 것은 인수밖에 없었다. 코카콜라에서는 160억 달러에 게토레이 제작사 퀘이커 오츠를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대주주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의 반대로 무산. 결국 뒤를 이은 펩시가 게토레이를 인수했다. 결과는 모두가 알 것이다. 워렌 버핏의 이불킥 역사 중 하나가 게토레이를 찬 거란걸.
물 한 모금에도 선수들의 컨디션이 오고가는 시대는 지났다. 스포츠 음료시장의 90% 가까이를 차지했던 게토레이는 이제 라이벌 파워 에이드와 함께 시장을 7:3으로 양분하고 있다. 이제는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큰 이 때, 게토레이의 저력은 사람들이 땀 흘리는 현장에 가까이 있었다는 게 아닐까? 마치 스포츠 팀의 동료처럼. 함께 흘린 땀만큼 게토레이에 대한 믿음은 깊다.
참고문헌
1. 절대음료 게토레이, 대런 로벨 지음,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2. The history of an iconic sports beverage: Gatorade turns 50, fortune
3. Who invented sports drinks?, howstuff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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