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사이다보다 잘 나갔다고!
초등학교에서 잘 나가는 녀석들의
음료는 어른들을 닮아있었다
전학을 가고 나는 녀석들을 만났다. 앞으로는 유승준 쥐꼬리 머리를 뒤로는 김병지 꽁지머리를 한 리틀 엄석대를 말이다. 녀석들은 입에 문 츄파춥스를 빼며 말했다. "반갑다" 녀석들은 내게 한 캔의 음료를 권했다. 맥콜이다. "이... 거 맥주 맛이 나는 거 아냐?"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맥콜을 마셨다. 이해할 수 없는 맛이 났다. 어른들은 이걸 왜 마시는 거지?(안 마신다)
보리탄산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빠진 나는 훌쩍 어른이 되었다. 친구들이 방역차를 열심히 쫓을 때, 나는 맥주를 마시듯 맥콜을 마시며 인생의 무상함에 빠졌다... 고 착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나의 넘버원 이불킥 시절이었다. 그깟 보리탄산음료가 뭐라고 어른인 척했을까, 아니 왜 아이들한테 보리탄산음료를 판 것일까?
1982년, 일화에서 최초의 보리탄산음료 맥콜이 탄생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의 것을 먹어야 한다는 신토불이 원칙과 소비자의 건강과 농민의 경제를 살리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 완벽한 계획에 한 가지 빠진 점이 있다면 바로 맛. 세상 본 적 없던 맛이 났다.
당시는 코카콜라와 칠성사이다 같은 기존의 강자와 환타, 오란씨, 써니텐 같은 향탄산음료가 신흥강자로 자리매김한 시기다. 맥콜의 맛은 80년대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쉽지 않았다. 맥콜은 중년 남성층을 대상으로 건강 드링크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보리차의 맛이 난다고(보리차를 마시면 된다)!
맥콜이 야심 차게 내세운 슬로건은 '고향의 맛' 하지만 출시 첫해의 판매액은 20억원에 그친다. 제품은 슬로건 따라간다고... 정말 짐 싸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맛이 났다.
출시와 함께 중년들의 건강드링크가 된 맥콜. 하지만 여성, 청년, 아이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일화에서는 고민 끝에 한 가지 결단을 내린다. '맛을 바꿀 수 없다면 사람들의 취향을 바꾸는 게 어떨까?' 그렇다. 애초에 맛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현질... 아니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한다. 1987년 조용필을 광고 모델로 삼은 것이다. 맥콜 광고를 위해 88 올림픽 경기장을 빌렸고, 팬클럽을 초대해 성대한 콘서트 영상을 찍었다. 광고는 무려 1분 동안 조용필의 뜨거운 콘서트 현장을 잘 담아냈다. 이를 본 임원들은 충격에 빠졌다. "음료 광고를 하랬더니 조용필 뮤직비디오를 찍어왔냐!"
하지만 효과는 엄청났다. 젊은 층이 맥콜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출시 첫 해 20억을 판매한 맥콜은 1987년에는 900억, 1988년에는 1,400억을 판매한다. 그야말로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 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자 다른 음료회사들이 나섰다. 롯데칠성은 '비비콜', 해태음료는 '보리텐', 코카콜라에서는 '보리보리'를 냈다. 갑자기 늘어난 보리탄산음료들은 맥콜의 길을 따라 걸었다. 누구는 이상은, 누구는 이치현과 벗님들처럼 당대 최고의 가수들을 출연시켰다. 이게 음원차트야 음료차트야.
보리탄산음료가 너무 많이 생겼다. 슈퍼마켓의 음료코너는 보리들의 강강술래가 열릴 지경이었다. 보리탄산음료들은 저마다 판매를 하기 위해 몸값을 낮췄다. 또한 유통망 경쟁이 심해지자, 보리탄산음료의 원조인 맥콜이 진귀해진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보리탄산음료의 인기는 반짝이었다. 1989년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주윤발의 한 마디에 탄산음료의 트렌드는 보리에서 우유로 넘어갔다. 밀키스와 암바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비콜, 보리텐, 보리보리는 각자의 본업으로 돌아갔다. 애초에 이 음료들을 만든 회사는 보리탄산음료가 부캐(보조 캐릭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길을 찾아갔다. 해태는 다시 써니텐을... 롯데칠성은 칠성사이다를... 코카콜라는 코카콜라가 있으니까.
결국 혼자 남은 것은 일화의 맥콜이었다. 경쟁자들의 도전으로 보리탄산음료의 수명이 떨어졌다.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맥콜은 IMF를 맞아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하는 듯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2001년 맥콜은 재출시되어 여전히 편의점 한편을 지키고 있다. 이제는 '청춘의 음료'가 아닌 '호불호 음료'로 독특한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맥콜을 좋아하는 이들은 맥콜이 왕년에 코카콜라와 칠성사이다를 위협한 음료'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출시 당시 '건강드링크'였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주목되었다. 시중에 파는 비타민음료보다 비타민이 더욱 많이 함유된 것이다. 250ml 용량에 비타민C가 75mg이 들어있으며, 같은 용량의 비타민음료의 비타민C 함유량 37.5mg보다 2배나 많은 용량이 보였다. 맛이 이상할 뿐 은근히 몸에 좋은 녀석이라고!
그사이 일본에도 진출했다. 인터넷에서는 일본의 한 매장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콜라'로 맥콜을 소개한다. 지난 마시즘의 맥콜 리뷰 사진을 사용한 외국 블로그에서는 '한국의 닥터페퍼'라고 맥콜을 소개한다. 따로 맥콜을 좋아하는 모임이 있을 정도로 작지만 컬트적인 인기를 누린다고 한다.
유행을 따라 우르르 따라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메타몽식 음료수의 운명은 보리탄산음료 이후에도 반복된다. 이토록 독특한 음료들이 인기를 끈 것은 대견한 일이지만, 또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 같다.
앞으로 나올 독특한 음료들이 잠깐의 반짝이는 인기를 누리기보다 오래가기를 원하며 맥콜을 마신다. 크... 여전히 독특한 맛. 나만 마시고 끝나기엔 아쉽잖아. 맛 좀 봐라! 후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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