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 잠시 돌아온 유묵 한 점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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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례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본 도쿄도(東京都)가 보관해 온 안중근 의사의 유묵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를 우리 정부에 대여한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인 1910년 3월에 남긴 이 글씨는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논어』 학이편의 구절입니다.


개인이 아닌 일본의 공공기관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대여한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 유묵은 순국 116주기에 맞춰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전시됩니다. 유묵은 단순한 글씨가 아닙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태도와 생각의 정수입니다. 그래서 이 한 줄의 글씨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마지막을 가장 직접적이고 정직하게 보여주는 기록이 됩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 유묵의 귀환을 국민과 함께 환영한다"며,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끊임없는 기록과 예우를 강조했습니다. 이번 유묵의 대여는 개인이 아닌 일본 공공기관(도쿄도)이 결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며, 이는 순국 116주기를 맞는 우리에게 단순한 전시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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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순국하기까지 약 다섯 달 동안 감옥에서 200여 점의 유묵을 남겼습니다.


대부분은 사형 선고일인 1910년 2월 14일 이후, 불과 40여 일 사이에 쓰였습니다. 감옥을 드나들 수 있었던 일본인 간수, 검찰관, 기자 등이 그의 고결한 인품에 감화되어 다투어 글씨를 받아갔습니다. 그의 유묵에는 항상 “大韓國人 安重根(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서명이 남아 있고, 단지된 무명지의 흔적과 함께 찍힌 왼손 도장이 선명합니다. 글씨는 단정하지만 힘이 있고, 문장은 짧지만 그가 지향하는 인생의 방향이 분명합니다. 총을 쏜 뒤의 찰나가 아니라, 총을 내려놓은 뒤의 시간이 오히려 후대에게 더 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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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장 김창수>는 2017년 10월 개봉한 작품입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 영화를 본 뒤 강남 교보문고에서 안중근 평전을 한 권 샀습니다.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와 한겨레출판이 공동 기획한 책이었습니다. 그 평전의 머리말에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세밀한 시선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모순적이다. 선택을 놓고 갈등하고 실행에 앞서 고뇌한다. 신념이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개인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이 완전히 통일되고 일관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약하고 갈등하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 나라가 망해 자결을 결심한 후 절명시를 써놓고도 입에서 약 떼기를 세 번이나 했다고 고백한 매천 황현의 일화는 그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인간인 이상 누구에게나 죽음은 쉽지 않은 일이며, 따라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안중근 평전 17쪽


이 문장은 안중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꿉니다. 흔들리지 않는 박제된 영웅이 아니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고뇌하는 인간으로 보게 만듭니다. 매천 황현이 죽음을 앞두고도 세 번이나 약을 떼어냈듯이, 인간에게 죽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안중근 의사 역시 인간으로서 두려움과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끝내 흔들리지 않았고, 그 모든 인간적 고뇌를 이겨낸 채 당당하게 교수대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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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향년 32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일본 검찰관 미조부치와 감옥장 구리하라가 참관한 가운데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유해는 감옥 인근에 암매장되었고, 정확한 위치는 지금까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형 직전까지도 자신의 행위를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정에서 그는 스스로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당당히 규정했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개인적 범죄가 아니라 독립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쟁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숨결까지 동양의 평화를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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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거는 단순한 암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이자 대한제국 침탈의 핵심 설계자였습니다. 그를 하얼빈에서 처단한 사건은 국제사회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조선이 아무 저항 없이 무너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동시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강제로 박탈되고 식민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극적 현실을 외부에 드러낸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물론 이 사건이 곧바로 독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1910년 한일병합은 예정된 흐름처럼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모든 사건은 결과로만 평가되지 않습니다. 안중근 의거는 이후 독립운동의 정당성과 방향을 분명히 남겼습니다. 무장투쟁의 명분, 국권 회복의 의지, 그리고 동양 평화라는 거대한 문제의식이 그의 이름과 함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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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행사는 해마다 열립니다. 순국일에는 추모식이 있고, 기념관에는 발길이 이어지며,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그의 이름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한가를 묻게 됩니다. 그의 유해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고, 효창공원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빈 무덤만 남아 있습니다.


이름은 가장 크게 남아 있는데, 몸은 아직 모시지 못했습니다. 이보다 더 선명한 미완(未完)이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의 숙제는 분명합니다. 안중근을 기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안중근을 모시는 일까지 가야 합니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에 흩어진 자료를 더 정밀하게 대조하고, 외교적 협조와 발굴 노력을 끈기 있게 이어가야 합니다. 유해 봉환은 단지 한 독립운동가를 찾는 사업이 아닙니다. 국가가 누구를 끝까지 책임지고 기억하는지를 증명하는 일입니다.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을 끝내 고국으로 모시는 일, 그 일은 추모보다 무겁고, 기념보다 현실적이며, 그래서 더 중요합니다.


이번에 돌아온 「빈이무첨 부이무교」는 글씨 두 구절이지만, 실은 한 시대의 품격을 묻는 문장입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말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말 것. 개인의 수양을 말하는 듯하지만, 결국 한 나라가 지켜야 할 자존과 품격을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낮추지 않고, 어떤 위치에서도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당당한 태도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총을 든 투사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글을 남겼고, 생각을 남겼고, 품격 있는 태도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의 유묵은 유물이 아니라 질문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태도로 살고 있습니까? 무엇 앞에서 비굴해지고, 무엇을 가졌다고 쉽게 교만해집니까? 순국 116주년, 잠시 돌아온 유묵 한 점은 과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우리를 매섭게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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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언급한 "특별한 보상과 예우"는 결국 필자가 강조한 '유해 봉환'이라는 종착지로 향해야 합니다. 6개월간의 짧은 대여 기간이 끝나면 유묵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겠지만, 안 의사의 유해만큼은 영원히 돌아와 효창공원의 빈 무덤을 채워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예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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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이미 교과서 속 인물이지만, 그의 죽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유해는 돌아오지 못했고, 집필 중이던 『동양평화론』은 끝내 미완으로 남았으며, 그가 꿈꾸었던 진정한 동양의 질서 역시 아직 요원합니다. 그래서 안중근을 기리는 일은 미완으로 남은 그의 뜻을 지금 여기서 다시 읽어내는 일이어야 합니다.


일본 도쿄도가 보관하던 유묵 한 점이 한국에 잠시 왔다가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귀환이 남기는 울림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총을 내려놓은 뒤 붓을 들었던 사람, 죽음을 앞두고도 품격을 잃지 않았던 사람, 나라의 독립을 넘어 동양의 평화를 끝까지 붙들었던 사람.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안중근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합니다.


효창공원의 빈 무덤을 더 오래 빈 채로 두지 않는 일입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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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중근의사 순국 115주기 추모②] 그의 의거는 일본에 충격을, 독립운동의 방향을 바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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