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짧은 OST
어제는 4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의 기일을 앞두고 성묘를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조치원으로 내려가는 길은 예상대로 고속도로 곳곳이 정체였습니다. 북천안 IC를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자 비로소 마음의 속도도 조금씩 늦춰지기 시작했습니다.
길가에는 연둣빛 싹을 틔우는 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 어느 집 앞마당 매화꽃이 하나둘 눈에 들어옵니다. 그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뿐인데도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설렙니다. 아마 계절이 바뀌는 찰나를 몸이 먼저 알아챈 모양입니다. 조금 더 지나면 노란 개나리가 먼저 길을 열고, 이어 벚꽃과 진달래가 그 뒤를 따르겠지요. 매년 반복되는 순서임을 알면서도 매번 처음인 듯 기대하게 되는 것이 봄인가 봅니다.
‘한 해’라는 거대한 생명이 움트고, 그 변화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간지럽히는 계절. 햇볕은 눈이 부실 만큼 투명했고, 선글라스를 끼고 바라본 들판은 평소보다 더 또렷하게 빛났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루의 풍경이 아니라, 하나의 계절이 비로소 시작되는 장엄한 장면이었습니다.
동생이 누워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도 이름 모를 작은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햇볕이 닿는 곳마다 어김없이 생명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14대 조상님부터 6년 전 먼저 길을 떠나신 아버님께 차례로 인사를 드리고, 마침내 동생 곁에 앉았습니다. 정원처럼 아늑한 선산 묘역에 머문 한 시간 남짓, 나무 위에서는 새들이 다정하게 지저귀고 가끔은 고라니 한 마리가 숲 사이로 기척을 냅니다. 고복저수지에서 불어온 바람은 전나무 숲을 지나며 가지들을 부드럽게 흔들었습니다.
그 시간을 억지로 특별하게 만들려 하지 않았으나, 봄볕이 너무 좋아 마음은 절로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음복으로 올린 술기운이 가라앉을 때쯤, 조상님과 아버님 그리고 동생에게 작별을 고하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아래편 고복저수지의 물은 깊고 잔잔했습니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과 도로를 달리는 차들 속에서 완연한 봄의 활기를 읽습니다. 벚꽃 가지 끝을 보니 아마 다음 주말이면 꽃망울을 터뜨리고, 다다음 주면 이곳은 눈부신 꽃터널을 이룰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 문득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2005년 4월 17일, 서울 길상사 법회에서 스님은 이렇게 당부하셨지요.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니 봄입니다. 집안이든 사회든 꽃이 피어야 봄이 오는 것입니다. 스스로 꽃을 피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아름다운 봄을 넉넉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지긋지긋한 가난이나 슬픔이 저절로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다해 노력했기에 얻어낸 넉넉함이라 믿습니다. 스님은 무엇보다 ‘용심(用心)’, 즉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진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속도와 돈에 이끌리는 시대일수록 내 안의 마음가짐을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뜻일 테지요.
그래서인지 이 좋은 봄날에 멀리서 무언가를 찾기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느껴지는 이 온기와 평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음속에 잠든 부처를 깨우는 일은 결국 내 안의 꽃을 피워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봄의 생명력이 움트는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음악들을 소개합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유를 향해 나아갔던 한 가족의 이야기는, 마치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봄꽃과도 닮아 있습니다.
[영화 소개]
개봉: 1965년 (한국 개봉 1969년)
감독: 로버트 와이즈 (Robert Wise)
주연: 줄리 앤드류스(마리아 역), 크리스토퍼 플러머(폰 트랩 대령 역)
주요 수상: 제3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등 5개 부문 석권
[줄거리]
1938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수녀 지망생이었던 마리아는 엄격한 퇴역 해군 장교 폰 트랩 대령의 일곱 아이들을 위한 가정교사로 파견됩니다. 마리아는 음악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대령과의 사랑도 키워가지만,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위기가 찾아옵니다. 나치의 압박 속에서 가족은 음악 경연 대회를 틈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자유의 땅으로 탈출을 감행합니다.
[영화 관련 일화 및 에피소드]
실화의 힘: 이 영화는 실제 인물인 '마리아 폰 트랩'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실제 폰 트랩 가족은 영화처럼 산을 넘은 것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합니다.
에델바이스의 오해: 극 중 대령이 부르는 '에델바이스(Edelweiss)'는 오스트리아 민요로 자주 오해받지만, 사실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창작곡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 노래를 몰랐으나 영화의 흥행 이후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줄리 앤드류스의 캐스팅: 제작진은 <메리 포핀스>를 찍고 있던 줄리 앤드류스를 보고 단번에 마리아 역으로 낙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직전 작품과 역할이 너무 비슷할까 봐 처음에는 출연을 망설였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힘든 오프닝 촬영: 그 유명한 알프스 언덕 오프닝 장면을 촬영할 때, 헬리콥터가 일으키는 강한 바람 때문에 줄리 앤드류스가 자꾸 넘어져서 수십 번의 테이크를 거쳐야 했다고 합니다.
The Hills Are Alive (The Sound of Music)
이 곡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가장 상징적인 테마곡입니다.
https://youtu.be/97US4daK9G0?si=9V0kOL8VVO9sj4h4
웅장한 오케스트라 서주와 함께 광활한 알프스 산맥을 비추는 카메라 워킹이 일품입니다. 줄리 앤드류스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산울림처럼 퍼져나가는 도입부는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줍니다.
"언덕이 음악 소리로 살아있네(The hills are alive with the sound of music)"라는 가사처럼, 자연의 모든 소리가 곧 노래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슬플 때 마음이 노래를 찾으면 다시 평안을 얻는다는 긍정의 메시지가 봄의 생동감과 잘 어우러집니다.
위에 영상은 폰 트랩 대령과 아이들이 함께 노래하는 소중한 장면을 담고 있어 더욱 정겹게 다가옵니다.
The Sound Of Music - André Rieu
'현대의 요한 슈트라우스'라 불리는 안드레 류의 연주 버전입니다.
https://youtu.be/2vkNSO8me8c?si=jo-WHcruDBafKVGn
원곡의 서정성에 안드레 류 특유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더해졌습니다. 소프라노 수잔 에런스(Suzan Erens)의 풍부한 성량과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연주가 빈의 야외무대와 어우러져 한 편의 축제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영화 속 원곡이 '자연'의 순수함을 강조한다면, 안드레 류의 버전은 '음악'가진 품격과 환희를 극대화하여 봄날의 찬란함을 시각적으로도 느끼게 해 줍니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지평선에 내려앉은 노을은 유독 붉고 따스했습니다. 삶과 죽음은 계절의 순환처럼 길게 이어져 있고, 먼저 떠난 이들은 이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매해 봄마다 우리를 마중 나오는 것 같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시 <단계(Stufen)>에서 “모든 시작에는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도록 돕는 신비한 마법이 깃들어 있다(Jedem Anfang wohnt ein Zauber inne, der uns beschützt und der uns hilft, zu leben.)”고 노래했습니다. 차가운 대지를 뚫고 올라온 저 여린 들풀의 생명력에도, 동생의 묘역을 가만히 감싸던 따스한 봄볕에도 그 신비로운 시작의 마법은 이미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도 알프스의 푸른 언덕을 향해 당당히 발을 내디뎠던 폰 트랩 가족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이라는 전장에서 자유와 평화를 향해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선율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잠자던 희망을 일깨우는 기분 좋은 시작이길 기대해 봅니다.
창밖의 공기가 제법 달콤해졌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꽃봉오리가 기지개를 켜겠지요.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각자의 '용심(用心)'으로 피워낸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나길, 그래서 슬픔보다 평온이 더 깊게 머무는 봄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 안의 부처를 찾는 일은, 어쩌면 오늘 같은 날 곁에 있는 이의 안부를 묻고 활짝 핀 매화 한 송이에 감탄하는 그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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