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승리하지 않는다

승리하는 것이 정의가 된다

by 인간계 연구소

세상의 크고 작은 변화를 주장할 때 그 당위의 근거가 단지 더 정의롭거나 선하기 때문이라면, 궁극적으로 그 변화가 이루어질 확률은 0%에 수렴한다. 어떻게든 토론을 압도하거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긴 시간의 복잡한 과정, 즉 역사적으로 그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 우리는 더 영리해져야 한다.


역사는 철저히 거대한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던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같은 이념들, 자유와 복지 같은 흔히 그에 상반된 것들에 비해 '선'이라고 여겨지는 것들 그리고 현시대를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모든 개념들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 지위를 얻었을까?


세상이 바뀌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작동원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1. '시대의 요구'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근거도 없이 갖다 쓰면서 무게감을 1도 찾아볼 수 없는 문구가 되어 버렸지만 무언가가 시대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은 우주의 별보다 많은 조건들이 합쳐져 그것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의 길목에 서 있다는 뜻이다.


과학의 발전, 인권, 복지,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 지금의 지배적인 모든 개념들은 힘을 가진 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다. 일례로 구글 같은 일하기 좋은 회사는 직원들 일하기 좋으라고 '착한 회사'가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이 현시점에 생존에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이 돼서 '착한 회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유럽의 복지 역시 지배 계급이 최대한 반란 없이 피 지배계급의 노동을 이용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지, 지배계급의 인류애가 꽃피운 결과물이 아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래 왔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주 간단한 논리다.


세상에는 힘을 가진 자들과 갖지 못한 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쪽이 어느 쪽이든, 그것은 아직 그 사안에 대해 권리를 갖지 못한 쪽이다. 만일 그들이 없던 권리를 쟁취했다면 오직 두 개의 가능성만 존재한다.


권력자들이 그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거나 비 권력자들이 이미 그럴만한 힘을 갖게 된 시점에 온 것이다.


중요한 지점은 그 주장이 관철되어 힘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변화시킬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관철됐다는 것이다. 시대적 요구를 위한 치밀한 준비가 동반되지 않은 외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2. '강력한 사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예로 들어보자. '기생충'의 오스카 4개 부문의 수상에 '영화 자체의 탁월함'은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훌륭하지 않다던가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었어도 4개의 오스카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생충'은 그대로 '기생충'이었어도도 그런 엄청난 결과는 충분히 안 나올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결과가 그랬다고 해도 무슨 '빼앗긴 오스카'라던가 '동네잔치'를 운운할 만큼 이상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시아 최초로 상 하나만 받았어도 지금처럼 무지 기뻐하고 있었을 것 같다. 대한민국 영화사가 이어지는 동안 영화계가, 배우들이, 감독들이, 스태프들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고, 특히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배우들이 긴 시간 동안 치밀하게 '시대의 요구'를 만들어 낸 것이고 수많은 최초의 타이틀과 함께 아카데미 4개 부문을 휩쓴 것은 그야말로 일어나지 않았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마치 '사고'처럼 일어난 '강력한 사건'이 된 것이다. 강력한 사건은 변화의 신호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고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실재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역사는 철저하게 힘의 논리로 흘러간다. 인간은 늘 결과론적인 판단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좋은 말들을 마구 가져다 붙이지만, 그것은 역사지 사실은 아니다. 결국 그 말을 갖다 붙일 힘을 얻어다는 것은 '이겼다'라는 뜻이고, 승자가 되면 보통 '우리가 힘으로 상대를 짓밟고 이겼다.'라고 하기보다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라던지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약자들을 위한 혁명'따위의 말들을 그럴듯한 역사를 쓴다.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해뿐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써 나아가기 위해 '정의의 관점'보다는 '정세의 관점'을 갖는 것이 더 현명하다.






이미지 : https://pixabay.com/ko/photos/정의의-그림-뉴욕-시티-법원-23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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