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재했을 뿐인데, 저작권은 그들 몫이었다.

십여 년 전, 창작자의 권리를 몰랐던 나에게

by 이소연 Teana Lee


십여 년 전, 나는 ‘소연이의 블렌딩 노트’라는 제목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다.


격월로 2년 가까이, 계절에 맞는 블렌딩 레시피와

찻잎에 담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잡지사에서 직접 촬영도 진행했고,

지면은 늘 정성스레 꾸며졌다.

레시피와 스토리는 모두 내 손으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당시 나는 따로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의미 있었고,

지면에 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기쁨과,

나눌 수 있다는 자부심이 전부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원고를 보내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느 날, 한 대학교 교수가 쓴

‘한국적인 티 블렌딩’ 관련 책을 우연히 인터넷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별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던 중,

눈에 익은 사진 한 장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 사진은 분명,

예전에 내가 연재할 때 잡지사에서 촬영한 컷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실린 문장.

익숙했다. 너무 익숙했다.

나의 레시피였다.


놀란 마음으로 출판사를 확인했다.

그 책을 낸 곳은 다름 아닌,

내가 칼럼을 연재했던 바로 그 잡지사의 출판부였다.


사진과 글, 레시피까지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지만,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고,

이내 불쾌함이 밀려왔다.

“내가 만든 차인데, 왜 내가 없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때 나는 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저작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억울했다.

창작을 했고, 나름대로 애써 만든 레시피였는데,

그 모든 결과물이 누군가의 책 속에서

마치 ‘공공재’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잠시 법적 대응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곧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계약서가 없었고,

당시 나는 원고료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구두로만 이루어진 약속들,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마음으로 넘긴 권리들.

그 모든 것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 일은 내게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다음부터는, 아무리 작은 글이라도

계약 없이 넘기지 말 것.”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저작권에 대해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이름, 로고, 블렌딩 레시피, 강의안, 프레젠테이션까지.

무형의 것들에도 ‘지켜야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하게 됐다.


이제 나는 어떤 작업을 할 때든

먼저 권리 관계를 명확히 한다.


작은 블로그 기고글이라도 사용 범위와 기간을 정하고,

레시피를 공유할 때도 출처 표기를 요청한다.


때로는 까다롭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그 까다로움이 내 창작물을 지키는 방패라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저작권은 어려운 법률 용어가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을 내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


그리고 그 권리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창작하는 순간부터 내게 있는 것이라는 사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레시피를 만든다.

하지만 이제는 내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방법들을 안다.


그 책에서 마주한 충격은 쓰라렸지만,

덕분에 나는 진짜 창작자가 되었다.


창작물을 지키는 것은

창작자 자신의 몫이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