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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천일 Aug 11. 2018

#2_천일야화_태도1_과하지욕(胯下之辱)

가랑이 사이로 기어서 지나가는 치욕

과하지욕(胯下之辱) : 사타구니 과(胯), 아래 하(下), 갈 지(之), 욕 욕(辱)

군 입대하던 날..터미널도 아닌 지하철 입구까지만 태워주시던 아버지의 무뚝뚝한 말투가 생각난다.

"야 임마..참을 인 세개면 살인을 면한다고 하더라.사고 치기 전에 부모생각해서 참을 인을 마음에 새겨라."

그렇게 툭하고 던지신 말에 나는 실제로 2번의 살인을 면하기도 했다.지나고 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직장생활을 할때는 매년마다 올해의 사자성어나 20xx 트렌드 용어처럼 나름 정했던 이미지가 있었다.예를 들면 올해는 경쟁회사를 물리치는 '트로이의 목마'라던지 살아남아야하는 '노아의 방주'라던지 멋진 이미지를 설정해 마음이 흔들리거나 목표가 티미해질때 마음을 다잡곤 했다.

작년 12월에 만 13년 동안 해왔던 직장의 업무와 경력을 내려놓으면서 이 천일야화를 써나가야지라고 생각했다.남들보다 가진 것,배운 것,매력적인 것 없는 흙수저가 작지만 사무실을 꾸미고 좌충우돌하는 것을 글로 쓰며 '나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같이 흘리는 선한 의도를 가진 사업을 하니 매출을 좀 주세요.'라고 읍소하면 그게 스타트업의 시작일줄 알았다.그런데 너무 다들 신파극 형태의 브랜딩을 잘하셔서 난 감히 엄두가 안나더라.존경스럽다.

솔직히 매출을 구걸하는 것도 싫지만 많은 선배님들이 하고 계시는 삼척동자(잘난척,배운척,가진척)하는 장사치(장사+양아치) 방법은 정말 하기 싫었다.물론 그 방법이 대한민국에서는 제일 잘 쓰이고 먹이는 듯하다.명함을 받으면 회사주소를 보고 직원수를 물어보며 매출을 짐작하고 대표의 차 껍데기를 보고 사람를 가늠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다 잘될줄 알았다.그런데 왼쪽 가슴에 13년간 달려있던 회사의 완장(브랜드)를 떼고나니 나는 말 그대로 잉여인간이었다.오히려 가진 것은 없는데 '자존심'만 남은 폐족의 일원이라는 낙인만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주변에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한다.누군가 첫 결혼식과 부모의 상이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보여준다고 했던가..첫 사업을 하려고하니 시련이 닥쳐왔고 살아온 궤적과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난 멈추지 못하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나락으로 떨어졌다.내 잘못이다.


어느 날 나는 나의 태도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한신의 일화를 보게되었다.

한신은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으로 유방의 천하통일의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위의 그림의 과하지욕은 동네의 불량배가 시비의 거는 것으로 시작한다.


"보검을 차고 다니는 놈이 사내로써 배짱은 있느냐?나를 죽여보아라 아니면 내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 보아라."


두 다리를 벌리고 선 불량배 앞에서 한신의 손에는 분명 칼이 주어져 있었다.벨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참은 것이다.

불량배 가랑이로 지나가는 한신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놈'이라고 부르며 비웃었다.훗날 한신은 유방의 오른팔로 한나라를 세우고 초왕이 되었다.한신은 과거의 사건을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그때 가랑이의 굴욕을 참았기 때문이다."


13년동안 살아왔던 '갑'에서 '을'로 시작한다.아직도 몸에 목에 혀에 힘이 덜빠져서 분명 어려움이 닥쳐올거라 생각한다.사실 요즘 그러하다.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도움을 준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이간질을 받을 때 내손에 보검이 있어 그 모가지를 능히 베어버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랑이 밑을 지나려한다.물론 빤히 쳐다볼것이다.그리고 묵묵히 놈의 가랑이 밑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웃으며 지나갈 것이다.20대 초반에 군입대를 앞둔 아들에게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덕분에 2번의 살인을 면한 나에게 내가 다시한번 부탁한다.

 

'참아라.참아라.큰 뜻을 품고 있다면 참아라'


나와 내가 시작하는 온전한 사업체 '장사코리아'의 첫번째 태도는 '과하지욕'으로 정했다.


"이 글은 보고 계시다면 이 글의 주인공이실수도 있습니다.언제든지 가랑이 허락해주시면 감사함으로 지나가겠습니다." 


P.S 알고보니 한신은 뒷끝남이더라..그 불량배를 기어이 찾아내서 목을 베지않고 작디 작은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최대의 모욕이고 복수인듯 싶다.자신의 과거를 산채로 박제했으니..나도 그럴날이 오겠지 소도를 갈아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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