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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Oct 31. 2020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 마녀사냥의 비밀

대 피터 브뤼헬(Pieter Bruegel the Elder, 1525추정~1569)의 겨울 풍경은 종종 크리스마스 카드의 앞면으로 등장한다. 작품 속 사람들은 얼어붙은 강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막대기와 돌들로 초창기 아이스하키를 하거나, 새를 잡으려 한다.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눈 앞에 펼쳐진 삭막한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모습이다. 마치 겨울 축제와도 같은 풍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잔혹한 삶의 기록이다. 


17세기 플랑드르 미술을 대표하는 <눈 위의 사냥꾼 (Hunters in the Snow, 1565)>에는 사냥감을 들고 귀가하는 지친 세 남자와 개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이 언덕 가장자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고, 골짜기 아래로는 겨울 왕국이 펼쳐진다. 브뤼헬은 사냥꾼들의 시선을 통해 풍경을 확장하며 보여준다. 관람자의 시선은 작품의 좌측에서 시작하여 사냥꾼들의 발자국을 따라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화가 자신과 작품 속에 그려진 당시 사람들에게 이 이미지들은 그저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지던 당시는, 이른바 “소빙기(Little Ice Age)”라고 불렸던 극심한 기후 변화의 시기였다.


소빙기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던 1939년에는 4,000년의 기간으로 보았지만, 이후 과학자들은 약 130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있었던 혹한기로 좁혀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결실을 보았던 기간이기도 하다. 1560년대를 극심한 혹한기의 첫 10년이었고, 1564~65은 16세기에서 가장 추웠던 시절로 꼽히고 있다. <눈 위의 사냥꾼>을 포함한 브뤼헬의 다른 겨울 풍경 작품들인 <Winter Landscape with Skaters and Bird Trap (1565)>, <The Census at Bethlehem (1566)> 등의 작품들이 이 시기에 그려졌다.


이 시기 동안, 꽁꽁 얼어붙은 강물 위에서 농부들이 임대료 없는 시장을 열었다. 이 시기의 나무들은 특별히 단단해졌고, 그 덕분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vari)는 이러한 나무로 세상에 다시없는 악기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식량 부족으로 유럽 전역에 폭동과 전염병이 돌았다. 자살률이 급증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흉작과 기근을 신의 내리는 형벌로 여기면서, 이러한 불행의 원인을 마녀들의 탓으로 돌렸다. 그 결과, 수천 명의 여성들이 죽어야 했다.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5세기였다. 1487년 출판된 한 편의 책은 이후 200여 년 동안 마녀사냥의 광풍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던 책이 있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의 칙령으로 북부 독일을 관할하고 있던 두 명의 이단 재판관이 썼다는 <마녀들의 망치(Malleus Maleficarum)>는 마녀들이 마술을 행하는 방법들과 그 대응책, 마녀를 색출하여 고문하고 판결하는 모든 과정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담고 있다.

<마녀들의 망치> 1669년 에디션


유럽에서 마녀사냥은 약 3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교황권에 대한 저항, 종교적 갈등, 여성에 대한 증오 등이 뒤엉켜 있지만 가장 큰 배경은 소빙기 기후 변동으로 볼 수 있다. 마녀사냥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후반으로 소빙기의 추위가 절정에 달했던 때였다.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포도, 밀 등의 과일 및 작물 생산에도 타격을 주었다. 포도의 수확량이 좋지 않았을 때마다 마녀사냥은 늘어났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사회적 갈등을 가져왔고, 이러한 불가사의한 자연재해를 당시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불안과 공포를 잠재울 그 무엇이 필요했다. 그들에게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마치 정겨운 크리스마스 축제의 현장처럼 보이는 브뤼헬의 설경은 어찌할 도리 없는 자연 앞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삶의 기록이라는 반전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당시 일부 여성들의 눈물이 눈처럼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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