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우리가 이별한 이유다

우린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by 신하영


KakaoTalk_20200403_162550819_01.jpg 출처 : 봄날은 간다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린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건 암묵적인 것이었다. 암묵적인 건 무채색이다. 색이 없는 건 가치가 없고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화도 의미가 없는 거겠지.

나는 젓가락을 들고 널따란 김치 줄기를 반으로 잘랐다. 정확히 더치페이도 하고 길에선 보도블록을 반으로 나누어 걷기도 했다. 이렇게 모든 걸 반으로 나눈 건 이 관계에 더 이상 불순물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이것 또한 암묵적이었고 우린 그렇게 천천히 이별을 맞이하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수 십 번도 넘게 타액을 섞은 그 입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니 속이 안 좋아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한 어제의 나는 그녀의 앞에서 새빨간 가면을 쓴 게 분명했다. 이 이상 상처를 받는다면 화장실에서 방금 먹은 밥을 게워낼 수도 있을 거다. 탄산이 마시고 싶다. 그녀는 조심스레 립스틱을 고쳐 바른다. 예쁘지 않다. 예뻤지만 예쁘지 않았다. 아름다웠지만 별로였다.

사실, 무엇을 참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연애를 하며 생긴 선과 악의 감정들이 너무나 많이 얽혀 색을 잃은 것일까. 아랫입술을 깨물며 카페를 나섰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건 기분 탓일 테다. 지하철을 같이 타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일일 테니(겪기 싫은 일일 테니) 근처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여기서 헤어지자. 나는 잠깐 볼 일이 있어서.

그녀는 예쁘지 않은 얼굴로 그래.라고 대답한다.

잘 지내야 해.

너도.

조심해서 가.


장기가 꼬이는 기분이다. 뒤돌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편의점을 찾는다. 건너편에 간판이 보여 횡단보도 앞에 섰다. 이제 끝났구나. 고개를 돌리니 그녀 역시 사라지고 없어진 뒤였다.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 의자에 앉아 묵은 체증을 넘겼다. 괜히 서글프고 눈물이 맺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분명 방금 전에 이별을 했으니까. 태연하게 눈물을 닦고 핸드폰 배경화면에 있는 그녀를 바라본다. 이제 무얼 해야 할까. 마치 살인 현장을 없애는 범죄자처럼 꼼꼼하게 그녀의 조각을 지워야 할까. 그건 너무 이른데. 아니면 친구를 불러 술이라도 마셔야 하나. 이렇게 더 울면 되려나.

여러 생각들을 하다 이별을 하는 것도 어색하다는 걸 깨닫는 나다.


살랑인다. 바람에 곳곳에 핀 꽃들이 위태롭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예쁘지 않다. 나는 지하철 역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한 말과 그녀의 거짓말. 그 사이에 있던 암묵적인 감정의 주고받음이 얼마나 고묘하고 지능적이었는지,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 수 있다면 그녀에게 나를 사랑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물으면 오동나무색 머리를 살랑거리며 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벅차 하지 않고 곤충학자처럼 그녀의 표정을 아주 면밀히 살펴보겠지.

이것 또한 거짓말이 아닐까하며.


이것이 우리가 이별한 이유다.

나는 그녀를 믿지 못한다. 그녀 또한 진실을 토해내도 그것이 내게 통하지 않을 걸 아니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인 거겠지. 사랑하면 이 정도는 거뜬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는 약하고 처량하고 재미없는 놈이었다. 이미 두 번이나 놓친 지하철을 기다리며 그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이 두렵다. 무엇이 옳은 건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이별을 한 걸까.

아니면 다시 사랑을 깨닫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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