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행히 퇴근시간에 맞게 회사를 나올 수 있어서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집 냉장고에는 멸치볶음과 계란, 치즈 몇 장이 전부니까.
사실 퇴근만 일찍 했다면 일주일 내내 식당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골목길을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고 다시 골목길로.
하늘이 어스름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가게로 들어갔다. 5평 남짓한 작은 이 가게는 메뉴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식당이다. 그저 사장님이 내키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게 여기를 찾는 손님의 사명인 것이다.
우연히 들어온 가게였는데 사장님이 내놓은 오리고기 덮밥을 먹고 어느 누구보다 이 집의 단골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다행히 손님은 없다. 말끔히 비어진 그릇 두 개가 보이는 것 보니 방금까지 손님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네. 오셨네요."
사장님은 굉장히 무뚝뚝하시다. 생긴 건 나만의 비밀이니까 말해주지 않을 거야.
나는 자연스럽게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도마 옆에 서있는 사장님을 바라본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기분 좋은 음악과 맛 그리고 요리하는 사장님의 모습.
나는 턱을 괴고 자연스럽게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사장님은 먹기 좋게 자른 무화과를 밑 안주로 주셨는데 말랑말랑한 무화과 위에 레몬즙과 체다치즈를 올린 게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으음- 요즘 무화과가 유행인 건 또 어찌 아셨을까. 나는 혀에 맞닿는 과육의 부드러움을 음미하며 나희경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노래 제목이 뭐예요?"
파프리카를 보기 좋게 썰고 있는 사장님은 Acaso라고 말했다. Acaso는 스페인어로 우연이나 뜻밖의 사건을 뜻한다고 하는데 가사를 모르니 도통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어떤 노래예요?"
내가 젓가락을 톡톡 집으며 물으니 어떤 노래 같냐고 질문이 되돌아왔다.
"사랑?"
"네. 아마도 사랑이겠죠."
"아, 되게 좋네요."
무심한 사장님의 말투는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 같았다. 곡이 끝나고 무화과를 다시 입안에 넣었을 땐 정말 달콤한 맛이 났다. 음악 때문이라고 하면 재미없으려나..
나는 잔을 비우며 그려지지 않는 어느 연인을 마구 떠올렸다. 가게 문을 나서며 이어폰을 귀에 꼽고 Acaso를 들었다. 무화과가 입에서 부서지는 느낌이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이런 사랑을 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