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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교사K Oct 04. 2024

교사의 회복일기(3)

1회기 상담

과연 이 심리 상담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학교에서 동료 교사는 마치 전쟁터의 동료와 같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학교에서 동료 교사는 가장 잘 공감해 줄 수 있는 서로의 상담사이자,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고 제시해 줄 수 있는 멘토이다.

(물론 이 또한 학교의 조직문화가 좋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다. )

감사하게도 나는 좋은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하고 있기에,

사안이 발생한 이후 동료 선생님들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구체적인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주신 선생님들 또한 많았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일단은 해결된 문제였다.


그런데 내 마음이 이전과 같지 않았다.

학생들을 사랑하기 위한 나의 마음속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었다.

어쩔 때에는 학생들을 사랑해 주기는커녕 학교에 존재하기 위한 에너지조차 모자란 느낌이었다.

그래서 상담을 신청했다.




1회기 상담 내용

Q. 이 상담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A. 사안 발생 이후 뭔가 혼란스럽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스스로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왔습니다.


Q. 사안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사안에 대한 설명)


Q. 그 사건 전후로 선생님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A.  학교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항상 있는데, 이전에는 제게 10점 만점에 3~4점의 데미지를 주었던 사건들이, 해당 사건 이후 8~9 만큼의 데미지를 주는 것 같아요.

학교에는 힘들고 어려운 사건도 많지만 그만큼 좋은 순간들도 많아서, 이전에는 학생들과 함께하며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이제는 회복하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하루 8시간을 학교에 있는다고 하면, 예전엔 하루를 잘 버텼는데 이제는 오후만 되어도 에너지가 다 소진된 느낌이에요. 이전엔 50분 수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뜬히 했는데 이제는 30분만 지나도 숨이 가쁘고 힘들어요. 수업 중간에 학생들이 문제행동을 하면 이전엔 잘 대처하고 넘어갔는데, 이제는 그 순간 지치고 무기력해져요.


Q.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고자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선생님 자신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시나요?

A. 별다른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올해 들어 제 자신에게 힐링이 되는 게 무엇인지 고민을 해보았는데,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일을 하는 순간이 저에게 힐링이었던 것 같아요.

 학생들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학생들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어주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과 재미를 느꼈어요. 수업을 할 때 수업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도, 잘 듣고 있는 한두 명의 학생들이라도 있으면 수업을 하면 뿌듯하고 보람찼어요. 그런 순간들이 저한테 가장 큰 기쁨이고 힐링이었던 것 같은데,, 사건 이후로 이런 기쁨이 무너진 느낌이에요.


Q. 학교에서 즐거움이 크다고 하시고, 학교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학교가 왜 그렇게 좋으세요?

A. 재밌으니까요!(함께 웃음) (상담사 선생님 웃기기를 성공했다. ) 어른들의 사회와 다르게, 교실에서 학생들을 보면 미숙하고 불완전하긴 해도, 때로는 영악한 아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순수해요.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그런 아이들과 소소하게 소통하며 생활하는 게 재밌어요.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수업이 잘 되는 날이면 마치 연예인이 된 것 같아요. 연예인들이 소위 ‘무대를 찢었다!’라고 하잖아요. 약간 이런 느낌일까? 싶었던 때도 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신나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


Q. 학교에서 일을 하며 기쁨을 얻었었는데, 사안 이후 소진된 상태에서 회복하기에 학교에서 얻는 기쁨이 더 이상 크지 않게 되셨군요. 요즘 학교생활은 어떠세요?

A. 수학교사라는 정체성이 사라진 기분이에요. 이건 사실 사안 발생 이전부터 느껴오던 것들인데,,,

(... 교과지도와 생활지도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 )

이제는 학교에서 교사가  스승과 제자에서 스승의 개념과 멀어진 지는 오래된 것 같아요. 단지 사회에서 학생들을 맡아주어야 하니까, 보육의 개념의 공간이 된 것 같아요.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안전하고 불편하지 않도록 학생과 학부모에게 맞춘 보육원.

동료 선생님들과 씁쓸한 우스갯소리로 학생들을 고객님들이라고 해요. 고객님들이 불만스럽지 않도록 해드려야 하는,,, 그래서 사실 교과지도도 생활지도도 하기 어려운데, 그러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교사의 탓으로 돌아가죠. 학교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항상 생기는데 그러한 사건들 뒤처리만 해주는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종료되어 상담이 마무리되었다.



상담을 마무리하며 느낀 점


    사안 발생 이후 ‘괜찮아요~’라고 하고 다녀서 얼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상담 선생님의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아직 내가 그렇게 괜찮지는 않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나 자신의 힐링을 위해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없구나라는 깨달음. 무언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나의 과제가 될 듯하다.   


    나는 참 학교를, 학생들을 좋아하긴 하나보다. 학교가 왜 좋냐는 상담사님의 질문에 어느새 신이 나있는 나를 보고 느꼈다.   


    요즘의 학교는 참으로 무기력하구나. 이런 무기력함을 자조적으로 대화하며 위로하고 버텨내고 있는 지금의 동료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심리  상담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상담의 기술에 대해 내담자로서의 경험.  
‘정말 힘드실만했네요.’, ‘그때의 감정이 정말 ~ 하셨겠네요.’와 같이 공감해 주시고, 내가 한 말을 경청하고 되풀이하여 재진술해 주시고, 감정을 읽어 반영해 주시고, 막연하게 표현한 것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분명히 머리로는 배웠던 것들이고 어쩌면 나도 학생들에게 적용했던 것들인데, 이렇게 내담자로서 경험해 보니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임에도 내 마음이 이해받는 기분에 위로를 받았다. 상담 전략을 직접 경험해 보니 이해가 더 잘되고, 중요성을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과연 이 상담의 끝엔 어떤 답이 나올까?’라는 의문은 아직 남아있다. 어쩌면 명확한 답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8회차의 상담을 모두 참여해 볼 거라는 다짐과 함께, 나의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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