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기간 동안 흔들림 없는 평온한 마음을 동경해왔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커트 보네커트의 작품에서 평온을 위한 기도 구절을 발견했다.
The Serenity Prayer
평온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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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하느님,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를 주시고,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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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방황이 있었는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수용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부질없음을 집어 삼켰는가.
지금의 나는 어느새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며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원망은 점차 줄어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 나는 기분 좋은 업무적 성과가 있었고 내 남편에게 이를 알리고 딱 한마디를 했다.
"열심히 하니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정말 바뀌어지나봐."
때때로 세상은 내가 노력한만큼 되돌려주지 않았다.
그럴때마다 좌절감에 오히려 삐뚫어질테다 했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그런 나인데, 오늘만큼은 좌절 대신 희망을 보았다.
누군가에겐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구.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목표지향주의적인 나는 목표를, 성과를 얻지 못하면 남들에 배로 힘들어하는 사람인 나에겐
오늘의 이 성과가 정말로 뜻깊다.
그리고 진심으로 팀장님의 가르침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단 생각이다.
그냥 빈말이 아니라 그의 지향점과 업무 방향성이 모두 맞아떨어졌기에 이 성과가 나올수 있었다고 본다.
평온을 위한 기도를 하루에도 몇번씩 머리속으로 되뇌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정말 평온을 갈구하던 시기였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평온을 갈구하면 갈구할수록 그것은 내게서 멀어져만 갔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 기도를 머리속으로 되뇌이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크고 작은 성과가 있을 때면 한두번씩 그 문구를 떠올리곤 한다.
그 문구를 되뇌이는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