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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Feb 25. 2023

몽롱함의 기억


안개처럼 몽롱함이 머리 속에 내려앉는다.

졸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테다.


결혼이 주는 안락함과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과

이직에 드디어 성공했다는 안도감이 맞물려서 찾아온 몽롱함이다.


남편과 함께하는 모든 활동은 혼자 할 때보다 훨씬 좋다.

혼자 내 방, 내 침대 위에 있을 때보다 남편과 함께 침대 위에 있을 때 훨씬 좋듯이.


부모님과 함께 살 땐 이런 몽롱함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불편했고 충분히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듣고 싶은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놓고 내 방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만큼 평화로운 행위가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몽롱함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대로 잠들어도 내일은 또 내일만의 아름다움과 빛이 있을게 분명한 나날이다.


불안감과 불행함 대신에 나를 맞이하는 따뜻함이 존재하는 세계다.


회사를 다니는 마지막 몇 달, 몇 주간은 어느 공간에서 숨을 쉬던 답답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은 현실로 인해 그렇게도 답답함을 느꼈지 않았을까.

고작 5주가 지났는데 이미 그 때 그 시절이 흐릿하다.


나에겐 이미 머나먼 과거일뿐인 것이다.

그 시절 힘듬을 나누거나 그저 일상을 공유하는 수준의 이야기를 나누던 직장 동료, 선배는 이제 없다.


합격을 했으니 그들과 소식을 나눌법도 한데, 지금의 나는 굳이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미 그 세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 뿐더러, 현재의 내 모습을 공유할 정도로 그들과 끈끈하게 연결되어있진 않았던 모양이다.


매직을 해서 머리카락이 두피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이대로 며칠간은 샴푸도 자유롭게 못하지만 상관없다.

어찌됐든 그 며칠만 지나면 머리 모양이 한결 차분하기 때문이다.


모든 단계에는 중간 과정이 존재한다.

무언가를 시작했다면 끝이 있어야 하고 그 끝과 새로운 시작 사이엔 쉼이 존재한다.


이번에 내가 경험한 쉼은 귀중한 시간이었다.

오로지 나 혼자 집이란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흔치 않은 시간이었다.

애완동물인 햄스터와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몸을 위한 식사를 직접 차려먹었던 시간이었다.


새로운 시작이 다가온다.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시작과 변화.


몽롱함으로 무장한 토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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