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깊이
아버지는 왜소하고 말랐었다.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이 앙상했다. 점잖은 사람 조용하고 나직한 말을 하고 조용히 ‘막내냐’ 그 부름에는 모든 표현이 녹아져 있었다. 밥은 먹었냐, 학교는 잘 갔다 왔냐, 배는 안 고프냐, 잘 자라고 있느냐, 말로 하지 않아도 아버지 목소리에는 그 많은 안부를 묻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절뚝거리며 걸을 때는 세상 젊잖은 양반이었고, 지팡이보다 발을 먼저 들어 올릴 때는 세상 안으로 파고들고 싶은 마음이 저만치 퍼져나갔고, 그러다 지팡이를 내팽개치고 뜀박질할라치면 아버지마음은 두 다리가 멀쩡한 정상인이 된다. 그러나 몇 발짝 가지 못하고 절퍼덕 넘어지고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아등바등 일어서기에 힘을 쏟는다. 잠시 어깨를 부축하려 하면 험악한 표정과 굳은 목소리로 ‘잡지 마라’ ‘혼자 인난다’ ‘잡지 마라’ 엄포를 놓으시곤 하셨다.
평소에는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조용한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제3의 인물이 되었다. 허공에 소리 지르고 혼잣말을 무대 위 연기자처럼 읊어 됐다. 타인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지만, 엄마와 자식들에게는 여과 없이 제3의 인물이 되어 낯설고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어릴 적 잘 오르던 뒤 뜰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며칠 지나 살구나무는 팔다리를 잃고 볼품없이 몸뚱이만 남겨졌다. 풍성한 살구나무 위에 올라 바라보던 고즈넉한 동네 풍경도, 석양의 노을도 엄마의 귀갓길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울적해하는 나를 보고 그제야 엄마는 아버지 사고 이야기를 해줬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불편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버지는 어릴 적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그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살구나무를 베어 버렸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이셨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후천적 장애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감정을 다스리고, 마음을 혼자 삭히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눈물을 참고 인내하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아이어른이란 별명이 저는 싫었습니다. 착한 아이라는 수식어가 싫었습니다. 그보다 싫은 건 '그래서그래' 처음부터 단정 짓고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었습니다. 매번 저는 저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며 살았습니다. 괜찮은 아이,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고독한 외로움이 저를 닮았습니다. 아버지와 천천히 잘 이별하고 싶습니다.
그늘
어린 동무들이 신나게 앞으로 뛰어가고 있습니다.
다친 한쪽 다리가 자꾸 말썽입니다.
이윽고 동무들 모습이 하나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사력을 다해 뛰어왔지만, 동무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동무들이 하나둘 학교에 갑니다.
엄마를 졸라 학교에 갔습니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친구들이 ‘빙신’이라며 놀립니다.
엄마를 졸라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혼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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