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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by 윤근태 Nov 13. 2016

<낭만닥터 김사부> '오해영'의 눈물이 돌아왔다.

오인의 서사 속에 고통받는 여성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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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배우가 특정한 이미지를 통해 하나의 캐릭터를 반복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차태현. 그는 스스로 자신의 연기가 '엽기적인 그녀' 속 '견우'의 반복이라고 말한다.) 이전 드라마의 캐릭터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는 혹은 이전 드라마가 끝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만족스러운 일 일 것이다. 새로 시작한 '낭만닥터 김사부' 속 '서정'(서현진)은 분명 '또 오해영' 속 오해영의 반복이다. 나 역시 '또 오해영' 속 '오해영'을 사랑했기 때문에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서정' 에게서 반가움을 느꼈다. 하지만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오해영'을 보는 불편함과 '서정'을 보는 불편함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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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은 명확히 '오해영'의 '눈물'로 이루어진 드라마이다. 그녀는 끝임 없이 울었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사랑하는 남자에게 결혼 전날 차여서 울었고, 그 사실을 뒤늦게 엄마에게 말하면서도 울었고, 그 이별이 그녀를 평생 따라다니던 '이쁜' 오해영 때문이라는 진실을 알았을 때도 울었다. 마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라는 듯이 그녀는 울었다. 저러다 죽을까 봐 걱정이라는 해영의 엄마가 하는 걱정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드라마 속 네 남녀가 겪었던 시련은 한 노인(강남길)의 외부적 개입 때문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네 남녀 각자의 내부적 결함이 더 중요한 원인이었다. 한태진(이재윤)은 자신의 실패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에게 모진 말로 이별을 고하고, 박도경(에릭)은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오해영(전혜빈)은 평생 사랑받지 못했다는 열패감에 자신을 숨기려 하고, 다른 오해영(서현진)은 자신과 같은 이름의 '이쁜' 오해영의 그늘 아래로 자신을 가둔다. 사건은 정확히 남자들의 '자존심'을 지켜려고 숨겨야 했던 진실들, 그리고 '자존감'을 가지지 못해 흘려야 했던 눈물들과 함께한다. 남자들의 거짓말은 너무도 쉽게 그녀에게 오인을 가지게 하고, 자존감을 가지지 못한 오해영은 남자가 만들어낸 오인에 울고, 오인 뒤에 밖혀진 진실에 또 한 번 운다.


분명 '또 오해영'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은 박도경(에릭)의 예견된 죽음이다. 그러나 그는 죽기에 너무 건강해 보인다. 그리고 적장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침대에 파묻혀 혼자 눈물 흘리는 오해영(서현진)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도경이 마주한 죽음의 운명을 극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극복은 자신의 내부적 결함이었던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그녀에게 달려가는 것으로 정확히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존감을 찾지 못했다. 밥을 먹다 울면서 남자에게 가야겠다는 여자는 끝끝내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나에게 둘의 결혼식으로 끝나는 이 드라마는 결코 해피엔딩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 입으로 '더 이상 남자 때문에 승패가 나뉘지 않을 거다.'라고 말하지만, 스스로의 어떠한 변화 없이 사랑하는 남자를 꼭 껴안고 있는 그녀는 여전히 위태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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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가 새로운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속 의사, 윤서정(서현진)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시작한 지 한 주를 방영한 이 드라마 속 그녀가 '오해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단순히 '서현진'이라는 배우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하자 카리스마 넘치게 응급환자를 살리는 그녀의 모습은 이젠 더 이상 나약한 그녀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하지만 연이어 벌어진 강동주(유연석)의 고백과 (유연석은 그녀에게 고백하며 자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뒤늦게 설렜다고 되뇐다. 언제부터 '자고 싶다'가 낭만적 고백이 되었나.) 자동차 사고에 의한 애인의 죽음은 다시 그녀를 오인의 굴레로 빠트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서사가 동시에 흘러간다. 하나, 서정(서현진)만 아는 서사. 자동차에서 애인은 그녀에게 반지를 건네며 프러포즈한다. 그녀는 방금 다른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고 설렜다고 대답한다. 그 말에 충격받은 남자는 운전 실수를 했고 사고가 났다. 자신이 다친 것도 모른 채 여자만 걱정하던 남자는 안타깝게 죽고 만다. 여자가 프러포즈를 거절한 것이 로맨틱한 남자를 죽음으로 몰았다. 둘, 서정(서현진)만 모르는 서사. 남자가 여자를 태우고 가던 중 사고가 났다. 남자는 술을 마신 상태였고, 그녀 외에도 병원 내 간호사와 사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잘못이 있는 남자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이 엇갈린 서사를 모르는 그녀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자신의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처벌이 지나치며, 과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불쌍하게 여길 수 있다. (심지어 그녀는 의지할 가족조차 가지지 못했다.) 또다시 그녀는 오인 속에 빠져 한 없이 스스로를 비판하고, 우리는 그런 그녀를 가엽게 여길 것이며, 멋진 남자의 구원을 응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에게 닥친 재앙은 명백히 두 남자와 조금의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 사실을 모르는 그녀는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처벌할 테니, 그녀를 구원할 남자의 손길은 더 값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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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해영을 떠올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 명의 여성 캐릭터를 서사적으로 몰락시키는 방식은 '또 오해영' 속 그것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녀의 야리야리한 신체. 당당하지만 이내 부서질 거 같은 영혼. '오해영'과 '서정' 모두 남자들이 만들어 낸 사건으로 인해 자신을 비난하고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사실 그녀가 아는 것은 사건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염치도 없이 마치 자신이 그녀를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듯이 군다. 왜 그녀가 두 번 연속해서 '자신만이 모르는 오인 속에 빠지는 불쌍한 여성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변형이다. 하지만 그보다 잔혹한 것은 이전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가여운 상황에 처한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문제를 다뤘다면, 이 이야기는 시청자와 극 중 인물들이 연루된 채 그녀만 홀로 오인 속에 스스로를 저주하도록 떨어뜨려 놓는다. 그녀가 비극에 빠진 것이 그녀 스스로의 오인이었으며 시청자는 알고 그녀 스스로는 모르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불쌍하게 여길 것이다.


세상의 여성은 빠른 속도로 변하는 데,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더 뻔뻔해지고 있다. 어쩜 그녀는 꽉 낀 코르셋을 입은 중세 동화 속 공주보다 더 잔혹하게 이야기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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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맘대로 안되는 세상, 겁먹지 않고 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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