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로얄, 오다 노부나가]

서문 : 생존을 원하는 자, 시공간의 의미를 읽어라

by 도을 임해성

[배틀 로얄, 오다 노부나가] 서문 : 생존을 원하는 자, 시공간의 의미를 읽어라


생존을 원하는 자, 시공간의 의미를 읽어라 ①

나고야(名古屋). 도요타 자동차의 도시. 이 도시와의 인연은 도요타 자동차가 열어주었다. 도요타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한국 기업들의 열의는 나고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채웠고, 나와 수많은 이들과의 만남을 엮었으며, 세계를 호령하는 우리 기업들, 예를 들면 삼성과 LG 그리고 포스코 혁신의 영감이 됐다.

그 역사의 한 가운데서 나는 도요타의 사상과 비즈니스 방법론을 한국 기업에 실어 나르는 지식 물류맨의 삶을 무척이나 즐기며 살았다. 또한 일본을 찾은 한국 연수생들에게 일부러 짬을 내서 일본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곤 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금도 나와 관계를 이어가는 고마운 분들은 도요타보다도 역사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는 고백을 소주잔에 담아 돌려주신다. 보람은 그렇게 물을 받으며 자라나는 것이리라.


일본인들 스스로가 ‘3대 로망’이라는 이름 하에 자신들의 역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라 부르는 기간이 있다. 첫 번째는 가마쿠라(鎌倉) 막부를 열어간 미나모토(源)와 다히라(平) 두 무장 집안의 3대에 걸친 싸움 이야기다. 두 번째는 오다 노부나가가 살았던 시기로, 두 번째 막부인 무로마치(室町) 막부가 몰락하고 전국의 무장들이 천하를 갈라 치기 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다. 세 번째는 마지막 막부인 에도(江戶)막부 말기 천황파와 막부파가 싸우는 이야기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Last Samurai)〉의 배경이 됐던 시대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이 빚어내는 다양한 인간성과 처절한 죽음의 검은 이미지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중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그렇듯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그런 시대의 한 가운데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기 위해 씨 줄은 자연스레 시간의 흐름을 따라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이 성취한 결과는 순수하게 그의 것이라기 보다는 시대와 환경과 사명이 뒤얽혀 연주해낸 합주곡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 줄은 내가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혁신의 일선에서 보고 느낀 내 생각들이 될 것이다. 튼튼한 씨 줄에 비해 날 줄의 빈약함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오다 노부나가라는 악기를 손에 들었다는 의미부여를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다.

이미 나선 길, 돌아봄 없이 나아가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동행이 필요하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아니면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이 질문에 나는 기꺼이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시대가 당대의 모든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 개인의 모습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선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난 무렵의 이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지만, 가급적 오다 노부나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인물이 아니면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책이 역사 책도 아니거니와,내가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과거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그 ‘무엇’에 대한 영감이기 때문이다.


지리(地利): 나고야에서 시작된 배덕의 꿈

첫 번째 막부인 가마쿠라 막부의 위세에서 벗어나 왕권을 되찾기 위해 손잡은 아시카가(足利) 쇼군(將軍, 장군)이 다시 왕을 배반하고 탄생시킨 정권이 바로 무로마치 막부다. 1185년부터 1333년까지 148년 동안 무사(武士)에게 빼앗겼던 권력을 되찾으려는 일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한 무사에서 다른 무사에게로 넘어가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1336년 새로운 무로마치 막부가 설치됐다. 그후 이에 저항하는 왕의 세력과 막부에서 옹립한 왕조가 대립하는 남북조시대를 거쳐 1392년 남북조가 하나로 통합됐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막부에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새로이 시작된 중국 명나라와의 무역에서 일본국왕을 자칭한 것은 막부의 쇼군이었다. 하지만 관료 파견에 의한 직접 통치로 대변되는 중앙 집권적 체제를 달성하지 못한 한계 때문에 어느덧 지방에서는 독자적인 세력들이 성장하게 되고, 결국 유명무실한 수호대명(守護大名, 슈고다이묘)을 몰아내고 스스로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이른바 ‘전국대명(戰國大名,센고쿠다이묘)’이 출현하는 하극상의 시대가 열린다.


하극상이 무엇인가.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예와 규율을 무시한 채 윗사람을 꺾고 오른다는 뜻이니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는 아닐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사전적 의미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는 듯하다. 계급과 신분이 없음을 대 전제로 운용되는 사회, 능력껏 일해 그 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사회, 더구나 무한 경쟁이라는 말이 넘쳐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명멸(明滅)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당연한 현상들이 500년 전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설명된다는 것이 시간과 의식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계층 이동과 신분 상승, 권력 관계 등의 유동성이 매우 활발했던 전국 시대의 한 가운데서 오다 노부나가는 태어났다. 1534년의 일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職田信秀)의 차남으로, 원래 오다 가문은 나고야 지역의 수호대명인 시바(斯波) 가문의 가신(家臣)이었다. 그러나 시바 가문이 쇠퇴하자 그 자리를 오다 가문이 차지하게 됐고, 그 오다 가문에서도 가장 말단이었던 오다 노부히데가 자신의 실력으로 가문의 우두머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1563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사(日本史, Historia de Japan)》를 쓴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