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을 만들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몸이 어는지도 몰랐다.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며 행복했다.
모자도 씌워주고 목도리도 둘러주었다.
내가 지켜줄게.
눈사람이 녹았다.
큰 눈사람이니까
그늘에 두었으니까
쉽게 무너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속으론 마음을 조리며 학교에 다녀왔다.
다행이다. 많이 녹지 않았네
눈사람이 녹았다.
다음 날에도 다음날에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내 마음도 그만큼씩 허물어졌다.
눈이 오는 것도 햇살이 비추는 것도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지켜내지 못했어.
눈사람이 사라졌다.
내 마음도 함께 삭아버렸다
삭아버린 그 자리엔 새로운 각오가 새겨졌다.
다시는 눈사람을 만들지 않겠어.
지킬 수 없는 것을 사랑하지 않겠어.
사라지는 것에 마음을 주지 않겠어.
눈이 내린다
그날처럼 큰 눈이 내린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눈싸움을 한다.
겨울 동상이 걸린 발가락이 간질거린다.
나가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
어차피 녹을 거잖아.
눈이 내린다
그날처럼 큰 눈이 내린다.
뛰어다니는 한 아이가 내게 눈을 던진다.
차갑고 찝찌름한 눈이 빰에 닿는다.
눈사람과의 기억이 떠오른다.
행복했던 그 시간의 나를 기억한다.
눈이 내린다.
그날처럼 큰 눈이 내린다.
다시 눈사람을 만든다.
눈밭을 뒹굴며 온몸으로 눈을 느낀다.
지나갈 겨울이기에 소중하게 여길 거야.
변할 것을 알기에 사랑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