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폐허가 있다.
나조차도 존재를 알지 못하는 폐허가 있다.
바람이 부는 날 간신히 서늘한 소리가 들릴 뿐
번개가 치는 날 간간히 모습을 드러낼 뿐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유기된 곳에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폐허가 있다.
내 마음에 폐허가 있다.
나조차도 알고 싶지 않은 폐허가 있다.
바람이 사라지면 웅웅 거리는 공허가 가득한 곳
빛이 사라지면 다시 어둠 속에 존재를 숨기는 곳
누구라도 인기척을 내면 깡그리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폐허가 있다.
내 마음에 폐허가 있다.
누구에게라도 알리고 싶지 않은 폐허가 있다.
누군가 들어와 놀라기라고 하면 나는 더 크게 놀라 소리 지를지도 모르기에
누군가 들어와 울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더 크게 자책할지도 모르기에
누군가 들어와 못 본 척한다면 나는 더 크게 절망할지도 모르기에
슬픔을 감당할 수 없는 이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폐허가 있다.
내 마음에 폐허가 있다.
아무나 들어오게 할 수 없는 폐허가 있다.
누군가 들어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할까 봐 두려운 곳
누군가 들어와 힘든 얼굴을 보게 될까 봐 두려운 곳
그렇게 함께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곳
나를 위해 아파하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은 폐허가 있다.
내 마음에 폐허가 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폐허가 있다.
가시나무 사이를 헤치고 들어와야 하는 험한 곳
상처 입음을 감수해야 하는 곳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미지의 곳
고통을 감당하려는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폐허가 있다.
내 마음에 폐허가 있다.
아무나 존재를 알 수 없는 폐허가 있다.
오직 사랑하는 이에게만 보이는
오직 사랑하는 이만이 머물 수 있는
오직 사랑하는 이만이 보살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있다.
내 마음에는 폐허가 있다.
쇠락할 줄 알면서도 재건하고 싶은 폐허가 있다.
존재를 안다면 보살펴 주고 싶은
존재를 안다면 포기하고 싶지 않은
존재를 안다면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다.